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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은 제일 처음에, 中庸은 가장 나중에 읽을 것”
“大學은 제일 처음에, 中庸은 가장 나중에 읽을 것”
  • 이기동 성균관대
  • 승인 2005.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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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언_대학·중용,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대학’과 ‘중용’은 ‘논어’, ‘맹자’와 더불어 유교의 핵심 경전인 四書에 속한다. 유교의 경전을 사서와 三經으로 분류할 때, 사서는 공자 이후에 성립된 경전이고 삼경은 공자 이전에 성립된 경전이다. 삼경이 구약에 해당한다면 사서는 신약에 해당한다.

‘대학’과 ‘중용’은 원래 ‘예기’라는 책에 들어 있었다. ‘예기’의 여러 편 가운데, 대학편과 중용편이 있었던 것을 중국 남송 때의 주자가 독립시킴으로써, 논어, 맹자와 더불어 사서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대학’은 유교의 전체 내용을 소개한 입문서이고, ‘중용’은 유교의 심오한 진리를 집중적으로 서술한 고급 철학서이다. 그러므로 사서를 읽을 때는 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으로 읽는 것이 좋다. 그런데 대체로 ‘대학’과 ‘중용’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는 까닭은 독서의 순서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양 때문이다. ‘대학’과 ‘중용’이 모두 양이 적어 각각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합본했을 뿐이다.

‘대학’의 작자는 누군지 분명치 않다. ‘예기’ 자체가 한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동시에 각 편의 작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져 있지 않다. 주자는 ‘대학’의 내용을 經一章과 傳十章으로 나누어 경일장은 공자의 뜻을 제자인 曾子가 기술한 것이고, 전십장은 증자의 뜻을 증자의 제자들이 찬술한 것이라 하였으나 확실한 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의 작자를 증자로 봄으로써 ‘논어’, ‘대학’, ‘중용’, 맹자‘의 작자가 공자, 증자, 자사, 맹자로 이어지는 유교의 학통이 체계화되기 때문에 주자의 설은 후대에 큰 영향력을 남겼다.

‘대학’은 ‘小學’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소학’이 어린이들이 배우는 학문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대학’은 성인이 되어서 배우는 학문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소학’에는 예의범절에 관한 내용이 많고, ‘대학’에는 철학과 정치에 관한 내용이 많다. ‘대학’의 주요 내용은 三綱領 八條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강령은 성인이 되어서 배워야 할 유학의 전체 내용을 세 가지로 분류한 것이고, 팔조목은 그 세 가지를 다시 여덟 가지로 세분한 것이다. 삼강령의 내용은 明明德, 親民, 至於至善이다. 명명덕은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고, 친민은 남을 완성시키는 것이며, 지어지선은 자기와 남이 모두 완성되어 낙원으로 바뀐 세상에서 다함께 사는 것이다. 팔조목은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인데,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명명덕에 해당하고, 제가, 치국은 친민에 해당하며, 평천하는 지어지선에 해당한다. ‘대학’을 읽으면 유교철학 전체를 개관할 수 있지만, 세밀하게 다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먼저 ‘대학’을 읽어 유교철학 전체의 내용을 개관한 뒤 ‘논어’, ‘맹자’ 등의 다른 경전을 읽어 세밀하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용’의 작자는 공자의 손자인 子思이다. 이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학’의 경우와는 달리 작자 문제에 있어서는 자사의 저작이라는 것이 통설로 되어 내려왔다. ‘중용’이란 이름은 ‘중용’의 내용 중에 있는 ‘중용’이란 말에서 따온 것이다. ‘중용’은 유교철학의 심오한 형이상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초심자가 읽으면 난해하다. 그러므로 ‘중용’은 ‘대학’, ‘논어’, ‘맹자’를 차분히 읽어 철학적 소양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읽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심오한 철학적 진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북송 시대 때의 명재상 范仲淹이 당시 불교에 몰두해 있던 張載에게 ‘중용’ 한 권을 주어 유교로 복귀하도록 훈계하였다는 말은 유명한 이야기다.

‘대학’의 내용이 정치적인 특색이 강한 반면, ‘중용’의 내용은 매우 철학적이다. 다시 말하면 ‘대학’은 유교의 실천목표인 이상사회의 건설을 현실의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적인 방법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라면, ‘중용’은 개인의 내면세계의 해석을 통한 철학적 접근법을 서술한 것이다. 따라서 ‘대학’과 ‘중용’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시작과 끝이고, 알파와 오메가다.

이기동 / 성균관대·유교철학

필자는 일본 筑波大에서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주자학의 지역적 전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늘의 뜻을 묻다’ 등의 저서와, ‘시경강설’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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