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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기원전’으로 떠나야한다
철학의 ‘기원전’으로 떠나야한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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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刊┃ 2005┃ 958쪽

그리스 철학의 근원은 보통 플라톤 아니면 소크라테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의 시대는 뮈토스의 시대이며, 이들에 이르러서야 ‘철학’이라 할만한 합리적인 사유체계가 정립되어 나갔다는 것이 철학사의 통설이다. 하지만 철학은 로고스만의 역사는 아니다. 인간 사유의 역사는 넓게 보면 로고스와 뮈토스의 정신이 서로 만나고 길항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적이면서 문학적인 사유의 씨앗 없이 로고스는 앙상한 논리의 뼈대만을 거느릴 뿐이다.

뮈토스에서 자라나온 로고스의 역사

그런 점에서 철학의 역사를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한껏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요즘 연구자들의 생각인 것 같다. 그런 흐름을 방증이라도 하듯 국내 희랍철학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걸출한 작업성과물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제목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이다.

이 책은 희랍철학의 여명기를 연 오르페우스, 에피메니데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등을 거쳐 데모크리토스까지 철학의 ‘기원전’을 다루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 이전 소피스트들이 남긴 어록, 그들이 서로의 사상, 삶에 대해서 남긴 말, 서로간에 가했던 학문적인 비판과 반론들의 얽힌 지도를 사람별로 해체재구성해서, 각 사상가별로 장을 꾸민 공들인 작업인 것. 지난 10년간 국내 소장학자 8명이 꾸준히 강독하고 토론을 거쳐 이뤄냈다.

저본으로 삼은 텍스트는 딜스가 편집하고 크란츠가 보완한 ‘소크라테스 이전 사람들의 단편들’(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제17판이며, 주요 초기 희랍철학자들의 단편들에 대해 충실한 해설과 주석을 달아놓은 커크 레이븐 스코필드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The Presocratic Philosophers)을 참고로 했다.

희랍철학의 여명기(김재흥), 탈레스·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메네스·아낙사고라스(김인곤), 크세노파네스·제논·멜리소스(김주일), 헤라클레이토스(양호영), 파르메니데스(강철웅), 엠페도클레스(주은영), 피타고라스·필롤라오스·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기백), 레우키포스·데모크리토스(이정호·김인곤) 등 총 14개의 장을 분담해서 번역을 진행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적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아포리즘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보면 점점 귀가 열린다. 피타고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리는 인간이 사악하다는 것”

“가장 이지적인 것은 무엇인가. 수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조화이다.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인가. 앎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행복이다. 가장 참된 것은 무엇인가. 인간들이 사악하다는 것이다”(184~185쪽).

수많은 피타고니스트를 거느린 교주다운 발언임이 한눈에 인식될 정도로 단언적이다. 소피스트들의 삶과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라 알록달록한 맛도 느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말년에 숲에 기거하면서 풀과 나무뿌리를 먹고 지내다가 ‘수종’에 걸리자 세상에 내려왔다.

그는 의사들에게 “폭우로부터 가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졌는데, 의사들이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쇠똥에 자신의 몸을 붇고 그 열기로 몸이 마르기를 바랐으나, 효험을 얻지 못해 죽었다고 한다. 철학적 사고의 연원은 애초에 이런 극단적인 삶의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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