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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70] 스톤헨지에서 컴퓨터 칩으로, 60년대 이후 영국의 아나키즘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70] 스톤헨지에서 컴퓨터 칩으로, 60년대 이후 영국의 아나키즘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12.20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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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리드
우드코크
콜린 워드
알란 실라토
마이클 테일
섹스 피스톨스. 사진=위키미디어
섹스 피스톨스. 사진=위키미디어

제2차 대전 이후에 허버트 리드나 우드코크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지식인이 아나키즘에 유입됐다. 우드코크는 전후에 프리덤 출판사와 관련되었고 문학 저널 <놈>(Nom)을 편집했으며, 생디칼리즘적 대안인 『아나키 또는 혼돈』(Anarchy or Chaos, 1944)을 썼다. 이후 그는 캐나다로 건너가 존경받는 문필가가 되었으며 계속해서 아나키즘 전기와 역사를 집필했다. 

신좌파가 부상하기 전 50년대 영국에서는 아나키즘이 점진적으로 부활했다. 아나키스트들은 핵군축 캠페인, 특히 100인 위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아나키즘 운동의 성격이 바뀌었다. 1960년 프리덤 출판사의 설문조사에서 그 독자의 대다수는 전문가였으며 15%만이 노동자였다. 

Freedom 출판사. 사진=위키미디어
Freedom 출판사. 사진=위키미디어

1960년대에 콜린 워드(Colin Ward)는 알란 실리토(Alan Sillitoe)를 비롯한 다양한 작가들과 저널 <아나키>(Anarchy)를 편집했다. 워드는 도시 계획, 주택, 교육과 같은 다양한 분야를 다룬 『행동하는 아나키』(Anarchy in Action, 1973)를 냈다. 란다우어(Landauer)와 마찬가지로 그는 낡은 사회의 껍질에서 새로운 관계와 제도를 만들고 싶어했다. 니콜라스 월터(Nicolas Walter)는 설득력 있는 『아나키즘에 대하여』(About Anarchism, 1969)를 저술했으며 많은 아나키스트 고전을 편집하고 반군사주의 및 인본주의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수십 년 동안 영국의 아나키즘의 중심은 1세기 전에 크로포트킨과 그의 친구들이 설립한 프리덤 출판사로 였으며, 이 언론은 저널과 출판물을 통해 아나키스트 교육을 이어나갔다. 

대학에서는  마이클 테일러(Michael Taylor)가 현대의 논리학과 정치 이론에서 가져온 주장을 사용하여 자유주의 국가에 대한 아나키적 비판을 했다. 『아나키와 협력』(Anarchy and Co-operation, 1976)에서 그는 사회 질서는 국가의 발전에 반비례하여 존재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고, 『콤뮤니티, 아나키, 자유』(Community, Anarchy, and Liberty, 1982)에서는 물질적 조건이 거의 평등한 안정된 사회에서는 무국적 사회 질서로서 아나키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혁명적 이념을 가진 영국 아나키즘의 소수파는 스튜어트 크리스티(Stuart Christie)와 앨버트 멜처(Albert Meltzer)와 같은 이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이들은 블렉 플레그(Black Flag)라는 신문과 관련되어 있으며 『아나키의 수문』(The Floodgates of narchy, 1970)에서 계급투쟁 형태의 아나키즘을 채택했다. 1970년대 초기 앵그리 브리게이드(Angry Brigade)와 주변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아나키스트가 아니었지만, 이들은 과거 아나키즘의 테러리스트 이미지를 부활시켰다.

 

펑크, 히피로 폭발한 아나키즘 정신과 문화

1985년 스톤헨지 근체어서는 뉴에이지 트레블러와 경찰이 무력으로 총돌했다. 매년 하지마다 개최된 스톤헨지 프리 페스티벌에 진입하는 것을 경찰이 막으면서 생긴 충돌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영국 아나키는 학생 연좌농성의 시대인 1960년대 말 청년문화에 스며들었을 뿐만 아니라 코뮌과 협동조합의 대안적 운동으로 1970년대에 나타났다.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을 단순한 신념 체계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보고 반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옷차림과 태도를 자신들의 정치에 맞게 조정하고 새로운 자유제도를 만들려고 했다. 자신의 삶을 위해 혼자 남겨지기를 원하는 이른바 '히피'와 '여행자'들은 대안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다. 국가에 대한 저항을 인식할 수 있는 문화는 무료 축제, 도시 공연, 팬진, 스쿼트 및 식품 협동조합의 세계와 스톤헨지(stonehenge)와 같은 고대 유적지 주변에서 나타났다. 1985년 경찰이 <피스콘보이>('Peace Convoy')가 하지를 기념하는 것을 막았던 스톤헨지 전투에서는 사유재산에 대한 당국과 아나키즘 성향을 갖고 있는 이들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 운동의 생태적 경향은 산업화가 지구를 파괴하고 도시화가 범죄와 절망을 조장한다고 주장하고 자율적인 자급자족 마을의 창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말에 도시 젊은이들 사이에는 펑크의 형태로 아나키즘적 태도와 상징의 폭발했다. 1977년 영국에서 섹스피스톨즈(The Sex Pistols)의 <아나키>(Anarchy)가 차트를 휩쓸었을 때, 아나키와 펑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조니 로튼(Johnny Rotten)은 “나는 아나키스트다”고 외치고 “미래가 없다”고 선언했다. 혁명적인 평화주의자 밴드인 크래스(Crass)와 함께 아나코 펑크는 1979년에 더욱 발전했다. 에핑 포레스트(Epping Forest)에 있는 그들의 공동체는 60년대와 80년대에 그러한 시도들을 연결했다. 클래시(Clash)는 현대 영국의 소외를 노래했고 많은 음악가들이 음악적 전복을 계속했다. 젊은이들이 레이브를 위해 일시적으로 비어 있는 건물을 인수하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운동은 정치적이지는 않았지만 기성세대에게 충격을 주었다. 

상황주의자와 아나키스트 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또 다른 포스트 펑크 반권위주의 경향은 1980년대 후반 스코틀랜드의 ‘자유대학’(Free University) 집단과 학술적인 <에든버러 리뷰>(Edinburgh Review)와 같은 저널로 나타났다. 새로운 아나키즘적 글쓰기는 시적 선언이라는 란터스(Ranter)와 다다이스트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사실과 허구, 역사와 신화를 융합하고, 원시인과 문명인을 대립시킨 그들은 선동에 의존하기 보다는 문화를 정치화하고 일상을 변화시키려 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의 전투, 그리고 그 지금의 아나키즘

인두세 폭동 동안 '트라팔가 광장 전투'라고 부르는 것으로도 유명한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연맹(Anarchist Communist Federation)은 '위계체제의 철폐와 세계적인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을 요구했다. 사진=위키미디어

1980년대에 아나키즘 경향을 주도한 단체는 계급투쟁연맹(Class War Federation)이었다. 펑크의 충격적인 전술과 그래픽을 공유하지만 유사성은 거기에서 멈춘다. 계급투쟁은 광범위한 공격문화를 만들면서도 여전히 '노동계급에 의한 지배계급의 파괴'를 추구했다. 중산층 조직가들이 개발한 그것의 주요 노선은 추종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부자를 박살내고 권력을 잡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계급투쟁 회원(및 동료 여행자)은 1984년 런던 캠페인의 ‘스톱, 시티’(Stop City)와 1990년 3월의 트라팔가 광장에서의 인두세 폭동에서 두드러졌다. 영국 언론이 이 두 사건을 모두 '아나키스트의 위협'이라며 보도했다. 가장 포퓰리즘적이고 폭력적인 아니키스트 그룹도 이에 포함 돼 있었고, 이들은 자유 제도의 창설보다 싸움에 더 관심이 있는 파시스트적 요소까지 끌어들였다. 영국 아나키즘 내의 다른 가닥들은 생디칼리스트인 ‘직접행동’에 의해 유지되었다. 1979년에 재건된 그것은 작업장에서 독립적인 조직과 '노동자가 산업과 지역사회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추구한다.

인두세 폭동 동안 '트라팔가 광장 전투'라고 부르는 것으로도 유명한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연맹(Anarchist Communist Federation)은 '위계체제의 철폐와 세계적인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을 요구했다.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산업노조 정치와 거의 관련이 없지만 아나키스트 전통을 알고 있다. ‘연대’(Solidarity와 ‘평화 뉴스’(Peace News)는 각각 아나키 사회주의와 비폭력 반란을 요구했다.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자유가 단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동물 해방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다른 선진 산업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국 아나키즘에서도 컴퓨터에 내재 된 아나키즘의 가능성은 생겼다. 여기에는 컴퓨터 해킹(컴퓨터에 침입하여 데이터를 훔치거나 변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체 정보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런던의 세련된 웨스트엔드에서 고대 스톤헨지 언덕까지. 새로운 검은색 칩이 도시의 가장 자동화된 사무실에서 멀어진 아나키스트들은, 반전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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