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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파시즘은 ‘오르가즘 능력’ 상실 탓”
“역사적 파시즘은 ‘오르가즘 능력’ 상실 탓”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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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정신분석학을 말하는 두권의 책

최근 외신보도는 우울증에 걸린 태국의 우울증 정신분석의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는 아주 쓸쓸한 내용을 전했다. 그 의사는 “내가 우울증 환자로 이렇게 씩씩하게 사는데, 당신들도 힘내야지”라는 말로 환자들에게 힘을 북돋아줬던 인물이라고 한다.

인간의 정신은 과학의 자존심을 있는대로 건드리는 거의 유일한 망아지다. 그 만큼 인간의 정신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호기심과 의지는 아직 충분하게 동기가 부여되는 상황. 이해할 수 없는 테러와 폭력에 둘러싸인 오늘날의 인간은 그것을 발생시킨 동료들의 상황을 여전히 이해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최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의 저서 ‘오르가즘의 기능’(그린비 刊)이 번역되었다. 라이히에 대한 국내소개를 도맡아온 윤수종 전남대 교수가 이번에도 번역을 맡았다.

라이히는 푸코 이전에 미시권력의 작동방식을 분석한 ‘파시즘의 대중심리’로 잘 알려졌는데, 이 책 덕분에 그는 자유주의적 성해방가로 오해를 받아오기도 했다. ‘오르가즘의 기능’은 이런 오해를 바로잡아줄 뿐만 아니라, 라이히의 삶과 사상 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라이히에 따르면 ‘신경증적 성격’은 ‘오르가즘 능력’을 상실할 때 생겨난다. ‘오르가즘 능력’이란 단순히 성적 흥분의 절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장애 없이 생체 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성격을 모두 드러내지는 않는다. 바로 그것을 은폐하는 것인데, 라이히는 이것을 ‘무장’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무장이 ‘비합리성의 합리성’(비합리적인 것이 자주 일어나서 현실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파악하는 열쇠가 된다는 게 그의 주장. 겉으로 보기엔 얌전해도 그것을 믿으면 곤란하다.

라이히 주장의 핵심은 신경증적 성격이 심리적 전염병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파시즘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당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대중에게 심어놓은 정치적 무력감, 쓰라린 현세적 고통과 대결하도록 만들었던 대공황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력에 기름을 부었고, 이런 위기 속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신경증적 성격을 발전시켰던 독일 대중들이 파시즘을 추종하게 되었다는 설명. 파시즘은 하나의 정신적 병이었던 것이다.

‘환상의 정신분석’(임진수 지음, 현대문학 刊)은 라이히와 같은 독특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책은 아니다. 라캉을 전공해 프랑스에서 박사를 받은 임진수 계명대 교수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핵심이 되는 인간의 욕망, 공포, 환상의 순환이론과 극복과정을 문학적 방법론과 병행하여 쉽게 풀어쓴 정신분석 입문서이다. 저자는 “환상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변형”이며 현실을 변형시키는 “욕망”을 환상이 이끌어간다는 독특한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라이히에게 ‘무장’이 ‘얌전함’으로 파악됐다면, 임 교수에게 그와 유사한 인간심리는 바로 ‘환상’으로 파악된 듯하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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