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8-16 09:57 (화)
불신에 기초한 ‘교수업적평가제도’…학술 생태계 망가진다
불신에 기초한 ‘교수업적평가제도’…학술 생태계 망가진다
  • 임의영
  • 승인 2021.12.20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문사회 오늘을 말하다 ⑩ 학술연구 평가 제도

최대 7배 평가점수 차등하는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해외 대학원·박사 출신 선호하며 국내 학술연구 외면

시대가 학문 분야 간 소통과 협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소통과 협업의 선결요건은 학문의 균형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는 여전히 심각한 소외와 격차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학술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기관이나 심의 자문기구는 물론이요,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전문법령조차 전무한 것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실상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스스로의 본령을 지키고 학술연구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기반 확립이 시급하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앞으로 11회에 걸친 기고를 통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연구와 교육의 현황과 전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국회의 가시적 조치를 촉구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대학들이 세계의 유수한 대학평가기관의 평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대학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사들도 평가기관들의 평가 결과를 호들갑스럽게 기사화하고, 심지어는 직접 대학을 평가하겠다고 나서기도 하면서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최대 7배까지 차등을 두는 국제학술지와 국내학술지에 대한 교수업적평가는 학술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진=픽사베이

요즘 국제적인 평가기관들의 평가순위표에 우리나라 대학의 이름들이 상위권에 포함된 것을 보는 일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우리나라 대학의 역량이 과거에 비해 많이 성장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대학의 역량이 강화되고 있다는 청신호라고 하면서 더욱 분발하여 평가 순위를 높이자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평가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평가 순위가 바로 대학의 역량을 대변하는 것인지 의심한다.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평가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지표는 연구 역량이다. 다시 말해서 대학교수들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지표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마다 국제적인 평가기관의 기준에 맞추어 교수업적평가기준을 만들고, 그 평가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가 보편화되고 있다.

 

평가와 성과급은 연구자 착취로 이어져

평가와 성과급을 연계하는 제도가 갖는 특징은 외적인 강제 없이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제로섬 게임 방식으로 경쟁의 논리를 개입시키면 자발적인 노력의 강도는 더욱더 강해져서, 심지어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제도는 사람들의 행동을 규율한다. 제도에 적합한 행동은 보상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처벌한다. 이를 통해서 제도는 취지에 맞는 행태를 강화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평가지표에 적합한 연구 성과들이 양적으로 늘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에 학장업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대학의 교수업적평가 지표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연구업적평가지표가 눈에 들어왔다. 보려고 해서 본 것이 아니라 눈에 띈 것이다. 계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지표가 제도의 취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강원대 인문사회계열의 연구업적평가지표를 보면, 국제전문학술지 가운데 JCR 상위 10% 이내 학술지 게재논문은 편당 700점, SSCI, A&HCI, SCIE, CS분야 저명 콘퍼런스 발표논문은 편당 500점, SCOPUS의 경우는 편당 300점, 국내전문학술지 가운데 KCI 등재지에 게재된 논문은 편당 230점, KCI 등재후보지의 경우는 편당 100점을 부여한다.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경우 국내학술지에 비해 2배에서 7배에 이르는 평가점수를 받도록 되어있다. 다른 대학들의 경우도 배점 상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지표들은 제도의 취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라! 영향력지수가 높은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라!”

 

정책적 보상·논문의 질적 우수성은 공정한가

필자는 제도의 취지에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 대해 국내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보다 몇 배의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가? 배점의 차이를 두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제도의 취지를 반영하는 정책적 보상이고, 다른 하나는 논문의 질적 우수성이다. 전자의 경우는 논문의 내용 이외의 기준으로 논문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 후자의 경우는 질적 차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

영향력 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질적으로 우수한 논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영향력 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라도 피인용 횟수가 낮은 경우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 논문의 질적 수준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심사의 엄밀성은 어떤가? 국내학술지의 경우도 논문의 심사과정이 매우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평가영역에서 질을 양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상식이 통용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둘째, 국제학술지와 국내학술지를 차등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국내 학술지들의 경쟁력이 더욱더 약화된다. 학자들이 국내 학술지보다는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려 함으로써 국내 학술지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더 떨어지게 된다. 이는 내가 몇 년 전에 전국 수준의 학술지 편집위원장을 하면서 느낀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면에서 국내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보다는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유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국내박사보다는 해외박사가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도 그랬지만 교수채용에 있어서 해외박사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당연히 교수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국내 대학원보다는 해외 대학원을 선호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내 대학원들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는 미래의 예측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연구업적평가지표 하나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학문적 역량을 키워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방법에 있다. 현행의 제도에서 볼 수 있듯이 평가방식의 타당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국제학술지와 국내학술지 간의 차등화가 우리 학계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교수연구업적평가 제도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학자들이 평가와 무관하게 학자적 양심을 바탕으로 학문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불신에 기초한 업적평가제도가 아니라 신뢰에 기초한 업적평가제도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임의영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현재 강원대 사회과학대학장을 맡고 있다. 강원대 사회과학연구원장을 역임했다. 『관료제의 이론적 기초』(2020) 등을 집필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