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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26] 조화에 대한 오해
[한민의 문화등반 26] 조화에 대한 오해
  • 한민
  • 승인 2021.12.2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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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26

한국 사회는 언제나 시끄럽다. 시끄럽고 무질서해 보인다. 학창시절 한 선생님은 ‘한국어에는 조화(harmony)란 말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씀을 하셨다. 과연 그럴까. 조화의 개념이 없는 문화는 없다. 다만 그 의미가 다를 뿐이다.

영어의 harmony는 음악 용어에서 왔다. 예전 음악 시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음악의 3요소는 리듬(Rhythm), 가락(Melody), 화성(Harmony)인데 그중 화성이 harmony다. 화성(Harmony)은 그리스어 Harmonia에서 유래된 말로 음악에서는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리는 화음의 결합을 뜻한다.

다시 말해, 서구문화에서 ‘조화’란 서로 다른 음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듯이, 서로 다른 개인들이 저마다 맡은 역할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내는 단일한 질서를 의미하는 듯하다. 서구문화는 개인이 모든 판단과 행동의 주체가 되는 개인주의 문화다. 따라서 저마다 개별적인 개인들에게서 조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화음과도 같은 엄격한 역할 분담과 역할에 따른 책임을 요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집단주의 문화는 어떨까? 옆 나라 일본에는 사회의 통합과 조화에 관한 ‘와(和)’라는 개념이 있다. 와(和)는 전체가 우선하는 조화다. 개인은 전체 속에서 전체의 부속처럼 기능할 것을 요구받는다. 예를 들어, 회사 내에서의 와(和)란 같은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연대 의식 하에 동일한 목표와 가치관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같은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의 Harmony가 각자의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어떤 목표를 위해 집단을 구성하고 일시적으로 정해진 역할에 따르는 것이라면 일본의 와(和)는 이미 존재하는 집단의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개인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성격이 짙다.

그러면 한국의 조화는 어떤 의미일까? 아무리 한국이 분열되고 조각나 보여도 조화에 대한 인식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울림’이다. Harmony가 그렇듯 어울림도 음악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국악계에서는 한국음악의 조화는 소리의 어울림에 있다고 본다.

국악은 다양한 박자 체계(Rhythm)를 바탕으로 가락(Melody)이 진행되는 음악이다. 사진=픽사베이

국악에는 화성이 없다. (그래서 리듬, 가락, 화성이 음악의 3요소라는 것도 웃기는 얘기다) 국악은 다양한 박자 체계(Rhythm)를 바탕으로 가락(Melody)이 진행되는 음악이다. 그러나 음색의 차이와 연주법의 차이, 악기 간의 소통 등이 우리 음악만의 독특한 어울림을 이룬다.

어울림은 전체성과 개별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harmony나 와(和)가 전체성을 위해 개별성이 소멸되는 방식이라면 어울림은 개별성과 전체성이 함께 간다. 이 내용은 사회심리학의 몰개성화(deindividuation)와 탈개성화(depersonaliization)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몰개성화란 집단 상황에서 개인은 개별성을 잃고 집단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경우다. 물론 서양음악을 몰개성화로 보기는 어렵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에서 나타났던 전체주의적 모습이 이와 가깝다고 여겨진다. 반면, 탈개성화란 몰개성화와는 달리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속에 상실되지 않으며, 집단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자기 정체성과 개별성의 확인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어울림의 모습은 후자에 가깝다. ‘탈개성의 조화’, 개개의 주체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지만 전체적으로는 어우러지는 조화다. 이 때문에 잘 모르는 이들은 국악을 듣기 싫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울림에는 분명 나름의 법칙과 흐름이 존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비빔밥은 이러한 어울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나물과 고기, 계란, 밥, 참기름, 고추장 등 모든 재료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지만, 그들이 섞여 또 다른 하나로 완성되는 방식이다. 잘 모르는 이는 죄 뒤섞어 놓은 것이 무슨 요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비빔밥은 문화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며 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긴 잘 모르는 이들이 국악은 귀에 거슬리고 듣기 싫은 소음이라고만 여기며, 잘 모르는 이들이 한국은 분열되고 시끄러운 사회라고만 생각한다. 문제는 잘 모르는 이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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