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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라는데…대학의 목표와 의지는 한 구절도 없다
선진국이라는데…대학의 목표와 의지는 한 구절도 없다
  • 유원준
  • 승인 2021.12.21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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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법과 대학의 미래 ② 고등교육법이 있는데, 왜 대학법이 필요한가

"고등교육법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으로서 대학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법률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자율적으로 키워내고,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산업 수요에 맞게 
대학이 적극적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적 요청에 맞게 새로운 형식의 ‘대학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유원준 경희대 교수(사학과)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대학의 자율성을 천명하고(제31조 제4항)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인정한다.(제22조 제1항) 나아가 교원 지위 법정주의를 채택하여(제31조 제6항) 교육 담당 주체가 외적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앞선 연재에서 지적되었듯이, 교육 당국은 이런 정신을 구현할 헌법이 위임한 법률의 제정을 게을리 하였고, 오히려 시행령 혹은 특별법으로 대체하면서 고등교육 법체계를 난마처럼 얽어놓았다.

대학의 설치·운영에 관한 사항을 전반적으로 규율하여 대학교육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법률은 1997년에 「교육법」(1949년)이 「교육기본법」으로 대체되면서 탄생한 「고등교육법」이다. 영문명이 ‘Higher Education Act’라고 표기되고 있으니 대학에 관한 본격적인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을 온전한 대학법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모든 법률은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과 취지를 천명한다. 그 말 많고 탈도 많은 「사립학교법」도 제1조에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법은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높임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고등교육법」은 그 명칭과 달리 고등교육이 무엇인지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제1조(목적)에 “「교육기본법」 제9조에 따라 고등교육에 관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법률 제정의 적극적인 의지와 목적이 없다. 근거로 제시된 「교육기본법」의 해당 조항을 보자. “제9조(학교교육) ① 유아교육·초등교육·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을 하기 위하여 학교를 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다. ‘「교육기본법」에 고등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학교를 두기로 했으니 그에 관한 법률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등교육법이 있는 것이다.’

고등교육법의 핵심 기능은 대학 통제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법 제정을 위하여 ‘고등교육의 정의’ ‘고등교육의 목표’ ‘학문정책의 목표와 전략’ 등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대학이 구현하려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목표와 의지가 고등교육법에 담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단 한 조항도, 아니 단 한 구절도 없다.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에서 고등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어쩌면 이다지도 완벽하게 인간의 의지와 국가적 의지를 삭제할 수 있는가. 

그럼 「고등교육법」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제2조(학교의 종류), 제3조(학교의 구분), 제4조(학교의 설립 등), 제6조(학교규칙), 제7조(교육재정) 및 다수의 등록금 관련 조항 등등. 그리고 교수의 구분과 신분, 학칙 제정과 그 내용, 신입생 선발과 입학사정관 운영, 입시전형료의 징수와 사용, 수업 시간과 학점 부여의 기준, 졸업 사정 등 학사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이 깨알같이 나열되어 있다. 요컨대 상세하고 촘촘하게 규칙을 정한 일종의 실무지침서와 다름없다.

교육부의 실무지침 이행을 강제하는 동시에, 「고등교육법」의 핵심 기능은 대학의 통제이다. 제2조에 나열된 어떤 종류의 학교든 국가의 개입으로 설치된다. 국가는 스스로 설립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그 외의 자가 학교를 설립할 때는 인·허가권을 행사한다. 나아가 어떤 경우에도 관련 법령의 제정이나 정관 변경은 교육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쳐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물론 모든 학교에 대한 설립 인·허가권과 관리 감독권을 내세울 뿐, 교육에 관한 국가의 공적 책임에 관해서는 회피한다. 즉 국립대이든 사립대이든 설치하고 감독하되, 교육의 보편성과 수월성에 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러한 관리감독과 무관한 대학의 설립 목적은 한참 뒤인 제28조에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제37조는 산업대학의 목적, 제41조는 교육대학의 목적, 제47조는 전문대학의 목적, 제52조는 원격대학의 목적, 제55조는 기술대학의 목적을 각각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28조의 ‘대학’은 동법 제2조에 규정된 ‘학교’의 한 종류에 불과하며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말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대학’이 아닌 셈이니 헌법에서 보장한 대학의 자율성은 아무런 법률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대학의 자율성을 실현하기 위한 대학 자치, 교수의 교권에 대한 보호, 직원의 권리 등도 이 법에서는 마땅한 근거를 마련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동법 제6조(학교규칙)에 근거한 시행령 제4조 제16항에는 “교수회가 있는 경우에는 그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기재해야 한다고 밝혔을 뿐 대학의 자율성 향상을 위한 조항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총장이 주관하는 전체 교수회와 통상 ‘교수협의회’라고 하는 평교수의 자율기구인 교수회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아서 제16항의 구체적 적용 대상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국립대·사립대, 특성에 맞게 길 열어줘야

2017년 11월 28일에 삽입된 동법 제19조의2에 명기된 대학평의원회의 설치와 운영도 본래의 입법 취지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대학평의원회의 구성·운영을 해당 학교법인의 정관 및 학칙으로 정하게 함으로써 정상적인 운영을 원천 차단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어느 하나의 구성단위에 속하는 평의원의 수가 전체 평의원 정수(定數)의 1/2을 초과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은 ‘대학’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특성을 가진 조직인지에 대한 입법자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법」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으로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리 책임으로 대학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대학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법률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발전했고 시대도 변했다. 산업화 시대에 필요했던 ‘산업대학’들은 국공립대학으로 편입되거나 일반 사립대학으로 전환되어 현재는 사립대학 딱 2곳(청운대, 호원대)만 남아 있다. 기술대학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대학’을 줄여야 하거나 줄어들 처지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자율적으로 키워내고,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산업 수요에 맞게 대학이 적극적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적 요청에 맞게 새로운 형식의 「대학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국립대는 국립대의 특성과 기능에 맞게, 사립대는 사립대의 특성과 기능에 맞게, 또한 지역적 특색과 결부 지어 대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자발적인 노력을 게을리 하고 부실과 비리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대학은 영원히 퇴출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미 발의된 국립대학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사립대학법(안)이 조속한 시일 내에 모습을 드러내어 사립대의 미래를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유원준 경희대 교수·사학과
대만 중국문화대학에서 송대사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대외협력처장과 문과대학장, 서울캠퍼스 교수의회 의장을 지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대학교수노동조합연맹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 Ⅰ,Ⅱ』를 썼다.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 기획연재는 ‘삼각지 연구팀’의 집단지성으로 마련이 되었고, 연재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음은 ‘삼각지 연구팀’ 참여 교수입니다. △김용석 대학정책학회장·한국기술교육대 교양학부 △김유경 전 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사무총장·전 경북대 사학과 △박순준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고등교육연구원장·동의대 역사인문교양학부 △방효원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위원장·중앙대 의대 생리학교실 △안상준 국가중심 국공립대 교수회연합회장·안동대 사학과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전 광주대 환경공학과&간호학과 △유원준 한국교수노조연맹 수석부위원장·경희대 사학과 △임상혁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법무위원장·숭실대 법과대학 △장민수 전 선문대 국제경제통상학과

이번 기획연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반론이나 또 다른 제안도 좋습니다. editor@kyosu.net 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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