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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란 누구인가
교수란 누구인가
  • 최재목
  • 승인 2021.12.21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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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최재목 논설위원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논설위원

시간이 지날수록 교수라는 존재를 다시 묻게 된다. 교수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머리맡에 두고 대부분의 교수는 현재를 번민하며 살아간다. 교수란 ‘진리를 전파하는 전도사인가? 아니면 학생들의 취업에 신경을 쓰는 취업전문가인가? 아니면 단순한 월급쟁이의 직업인인가?’ 전통적 의미에서 교수란 “진리를 전하고, 직업을 만들어주며, 세상의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현대라 해서 이런 고전적인 정의가 퇴색될 리는 없다. 

문제는 교수가 전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진리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나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사실 ‘과학’의 영역에서나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인문사회?예술의 영역에서는, 누구든지 승인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개개인의 경험과 표현 속에 개방되어 있고, 어느 한 사람이나 특정 영역이 독점할 수는 없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처럼, 진리는 오히려 ‘모르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는 노력 속에서 스스로 열려오는 것이다. 여기서 ‘교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물어보면, 우선 다음과 같은 내용을 떠올린다.  

첫째, 교수는 스킬과 소피아 사이에서 고민하여야 한다. 스킬은 기술을 의미한다. 이른바 기술은 ‘어떤 일을 솜씨 있게 할 수 있는 재간이나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누구나 노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교수가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들은 노력만하면 스스로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기술은 미적 작품을 만드는 인간의 창조활동인 예술을 뜻하기도 한다. 기술이든 예술이든 교수 없이도 학생 개개인 누구나 어느 정도 성취 가능하다.

그러나 소피아는 다르다. 이것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잘 처리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노력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내적 덕성을 펼쳐가는 과정에서 실현된다. 이 소피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대학에서는 보통 구조조정 0순위에 철학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지옥 같은 삶을 헤쳐 나가고 밝은 지구적 미래를 전망하고자 할 경우 삶의 기술인 철학에서 지혜를 구하기 마련이다. 디테일의 기(器)를 바라보며 보편적 도(道)를 살피는 안목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둘째, 교수는 희망(가능성)과 절망(한계성) 사이에서 고민하여야 한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학문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중요한 질문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어떤 대답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학문은 학생들이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하며, 또 그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솔직하게 고백해줄 수 있을까. 베버는 구약성서 이사야서의 “파수꾼아 얼마나 있으면 밤이 새겠느냐? 파수꾼이 대답한다. 아침이 오면 무엇 하랴. 밤이 또 오는데”의 대목을 인용하여, 우리가 시대의 요구를 따르되 행동의 제한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학자는 진리의 파수꾼이어야 하나 할 수 있는 점과 하지 못하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인지시키는 존재이어야 한다. 이렇게 지성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르치는 이유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그 ‘희망과 절망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알려주기 위함인 것이다.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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