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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 학부제 어디로 가고 있나
[집중진단] 학부제 어디로 가고 있나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1.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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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8 10:38:05
정책적 단견이 낳은 기형아 … 학생들까지 등돌려

학부제와 모집단위 광역화로 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학교육이 개혁돼야 하고,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라고 하기엔 현재 대학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증상은 심상치 않다. 학부제와 모집단위 광역화를 놓고 교육부는 쉼 없이 밀어 부치고, 대학들은 무원칙한 행정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그 부작용을 고스란히 떠 안고 있다.

현재 대학가에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학생들의 전공편식현상. 모집단위 광역화의 본래 취지에 따라 학생들의 전공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는 대학은 기존의 교수들만으로는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다.

서강대는 인문계, 사회과학계, 법학계, 경제학부에 속한 학생들에게 2차 전공은 인문사회학 15개 전공 가운데 희망에 따라 선택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 결과 1천명이 넘는 학생들 대부분은 2차 전공으로 경영학, 신문방송학 등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2백명 남짓하던 학생들이 1천명으로 늘어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교수와 강의실을 5배로 늘릴 수는 없는 일. 시간강사로 강의를 분반해 운영하고 있지만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조차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다.

사회대에 파묻힌 간호학의 고민

연세대가 지난해 2000년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희망전공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생들의 전공편중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인문계열 심리학, 사회학, 영어영문학의 경우 정원의 346%, 320%, 257%가 지원한 반면, 철학, 독어독문학, 교육학전공은 9%, 14%, 14%로 극심한 대비를 보였다. 이학계열에서도 수학, 생화학전공은 정원의 217%, 195%의 지원율을 보인 반면, 식품영양, 지구시스템 전공에는 각각 정원의 13%와 21%가 지원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전공 편중현상에는 무분별한 모집단위 광역화도 한몫 했다. 연세대는 모집단위 광역화를 하면서 간호학과를 인문, 사회, 이학계열 3개 모집단위에 배분했다. 그러나 인문, 사회계열을 지원하면서 간호학을 기대했던 학생들이 있을리 만무하다. 지난해 학생들의 전공 지원율은 각 모집단위에서 7%. 0%. 10%로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편 학생들의 편중현상을 심화시키는데는 모집단위광역화를 통해 신입생들의 지원점수를 높이고자하는 대학당국의 얄팍한 계산도 한몫하고 있다. 소위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모집단위를 한데 묶음으로써 인기학과 수준으로 신입생들이 지원점수를 높여보자는 것. 많은 대학들이 영어영문학과 철학, 사학을 한데 묶어놓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학부제의 본래 취지인 학문간 연계를 통한 학문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결과 비인기학문들이 폐지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신학전공의 폐지를 놓의하기도 했던 배재대의 경우 신학을 국어국문학과 한데 묶어놓고 있었으며, 철학과를 폐지하기로 한 호서대의 경우 영어영문학전공과 묶었다.

대학가에서 이처럼 벌어지고 있는 혼란은 모집단위 광역화와 학부제를 도입하면서 이미 수차례 지적됐던 사항이다. 전수용 이화여대 교수(영어영문학)는 “전문대학원과의 연계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학과 선택의 전권을 위임하고 있어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대학서열화에 더해 학과간 서열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험대상이 된 학생들

그러나 이러한 대학의 문제에 대해 교육부가 바라보는 인식은 전혀 다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수들의 불만은 학과 테두리 안에서 복지부동하다가 경쟁에 노출되고, 신분이 불안해 지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학생들의 반대도 “학생운동이나 정서적인 측면 등 교육외적인 동기 때문”이라는 파악이다. 학부제와 모집단위 광역화 자체는 좋은데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따라서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교육부다운 발상이다.

결국 학부제의 부작용은 학생과 교수들이 온몸으로 떠 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성균관대에서 열린 학사구조조정 공청회에서 학교당국자가 “해마다 조금씩 시행착오를 거쳐 모범답안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답변하자 참가한 한 학생이 “우리가 실험용 쥐냐”며 울분을 토하던 광경이 예사롭지 않다.

학부제와 모집단위광역화

최근 대학마다 벌어지고 있는 학부제 난맥상에 대해 교육과정 전문가들은 학부제에 대한 이해부족이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정책도입을 추진한 교육부에서부터 시작한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 교육부는 학부를 미국의 연구 중심대학의 학부를 의미하는 ‘유니버시티 칼리지’로 정의한 반면, 각 대학에 학부제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두 개 이상의 유사학과를 통합한 大科’로 규정했다. 또 최근에 교육부 관계자는 “모집단위 광역화가 학과를 통합한 학부제뿐만 아니라 학부제를 포함하는 더 큰 개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부제는 교육과정의 구조에 대한 개념인 반면 모집단위광역화는 학생들의 모집을 위한 기술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모집단위광역화는 학과제에서도 운영할 수 있다. 실제로 고려대와 성균관대는 2002년부터 일부 단과대를 학과제로 환원했다. 따라서 학생들의 전공선택권에 대한 논란은 모집단위광역화로부터 생긴 부작용으로, 전공이수학점 축소로 인한 학부교육의 부실화는 학부제로 인한 부작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올바르다.

손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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