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7:30 (금)
대학의 겨울
대학의 겨울
  • 박혜영
  • 승인 2021.12.14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논설위원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겨울은 나무와 동물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다음 해의 창조적인 삶을 준비하는 역동적인 휴지기라고 할 수 있다. 겨울이란 어떤 시간인가?  

겨울은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들녘에 나가보면 겨울에도 땅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비닐하우스가 지천에 덮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겨울에도 딸기를 찾다보니 비닐하우스의 땅은 올곧은 겨울을 경험하지 못한다. 밑도 끝도 없이 지력을 이용하다보니 땅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온전히 내팽개쳐지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내실을 다질 기회를 놓치게 된다. 비닐하우스 농사를 연속해서 짓다보면 결국 지력이 상실되고 만다는 것을 농부들은 잘 알고 있다. 

어디 땅만 이와 같으랴. 대학에도 농사에서처럼 겨울이 필요하다. 이모작, 삼모작도 계절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을 때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며, 대량생산, 대량수확도 화학비료가 아닌 땅의 드센 정기로 이루어질 때 우리 몸에 이롭다.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을 때 벼를 벨 수 없듯이 어떤 일이든 내부에 조용히 들끓는 열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옹골차게 영근 낟알을 토해낼 수 없다. 기껏 한 해 농사가 쭉정이로 끝나 실제로 사람들의 배를 불리지 못하게 되면 그런 농사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한 알의 낟알이 영그는 데는 물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해와 달과 별과 바람의 힘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농부의 지난한 애정이 필요하다. 대학도 이와 같다. 좋은 벗과 스승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진정한 농부는 자신의 농사가 한결같을 수 없음을 안다. 그 중에는 더 키가 큰 놈도 있고, 약해서 다른 벼에 의지한 놈도 있다. 또 어떤 해는 가뭄이나 흉작으로 반타작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작물을 천편일률적으로 가름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리라. 약한 것,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있기에 실상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가을 들녘이 다채롭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 각종 구조조정과 평가사업, 그리고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대학에도 겨울이 다가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재촉해도 농부는 수확량이 해마다 늘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과학과 기술의 힘을 아무리 빌려와도 제한된 땅에서는 제한된 양만 나올 뿐이다. 땅을 무한히 늘릴 수 없기에 같은 이치로 수확도 무한히 늘릴 수 없다. 어떤 신비한 힘이 땅에서 싹을 돋게 하고, 자라게 하며, 결국 우리의 배를 불리는 낟알로 만들어주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밥이 다시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다시 밥이 됨을 알 뿐이다. 결국 자연에서는 무한한 성장이나 끝없는 발전이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그저 순환할 뿐이며, 순환이야말로 우리에게 무한을 약속한다. 누구도 일생 내내 수직적인 성장과 발전을 경험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는 진실한 내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며, 그것이 다시 거름이 되어 학문의 다음 세대가 싹트는 드센 땅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겨울이라는 시간은 결국 자신을 거름삼아 다른 싹을 틔울 때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우리대학도 그런 겨울을 맞이하게 되길 기원한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