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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귀와 입을 열어주기
나의 강의시간: 귀와 입을 열어주기
  • 정상국 인제대
  • 승인 2005.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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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국 인제대 교수 ©

정상국(인제대·국제경상학부)

인제대에 몸담은 지 기껏 만 6년하고도 6개월 정도 지났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가치 있는 일 하나 이룬 것 없이 그저 바쁘게만 지나온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교수가 되기 전에 두 가지를 자신과 약속했다. 열심히 공부하기, 더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기.

첫 사랑처럼 처음 학생들과 만나던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초점 잃은 학생들의 눈빛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강의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한 주 두 주 지나면서 학생들이 빠져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수업시간 중에 조는 학생, 담소(?)를 즐기는 학생 등등으로 그 때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첫 학기 내내 마음속으로 학생들을 질타하며, 그야말로 고행의 나날이었다. 학기가 끝날 즈음 가슴속에 담아왔던 자신과의 약속이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그러나 참으로 한심한 것은 나에게 그리고 내 강의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나는 강의에 앞서 얼마나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아마도 그들을 내 지식을 담아야하는 비닐봉지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비닐봉지 속에 있는 나의 보잘것없는 지식의 흔적을 볼 때마다 괴로워해야했다.

그리고 나의 강의는 어떠했는가. 미국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마치 자랑하듯이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지껄여대지 않았는지. 그야말로 수업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마치 막다른 골목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어지러웠을까. 불과 한 학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적어도 강의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그들의 귀를 열어줄 수 있는 강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의가 훌륭하고, 그럴듯하더라도 그들의 귀가 열리지 않으면 나의 강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입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지식의 창고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않으면, 어떠한 해답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후 두 번째 학기부터 지금까지 나는 모든 강의를 그들의 귀를 열리게 하고, 그들의 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선 과목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학생들을 7명 정도로 한 팀을 구성해서 전체 10개 팀 정도를 만들고, 두 번째 주쯤에서 각 팀당 이슈가 되는 주제를 할당받게 된다.

그런 다음, 수업시간에도 같은 팀원끼리 자리할 수 있도록 하여, 기본적인 이론이나 상황을 설명하고 나머지 현실적인 문제나 정책적인 함의는 학생들이 스스로 팀별로 토론을 거쳐서 해결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팀원 중에 한 명을 지정하여 발표하도록 했다. 또한 매 주 팀 퀴즈를 통해서 한 주 동안 배웠던 핵심적인 문제는 반드시 리뷰하고, 이것 역시 팀별로 지정되는 학생이 발표하도록 했다.

끝으로 한 학기의 1/3 정도는 학기 초에 할당받았던 주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팀 전원이 발표하고 나머지 학생들과 토론하도록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매 시간마다 나의 소리보다는 그들의 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느끼었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팀원들과의 조정을 통한 결론을 이끌어가면서 그들의 귀도 열리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또한 팀, 리더가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학생을 지정하기 때문에 팀 전원이 해답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방적인 수업에 비해서 너무도 힘든 학기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얼마나 큰 보람인가.

그렇다고 이러한 수업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업이 너무 빡빡하다는 잔인한 소문으로 수강인원은 들쭉날쭉하고, 수업 진도가 부족한 경우 등등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듯하다. 연구실 창문 틈에 끼여 있는 햇빛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아쉬움보다, 내일 연구실에 가득한 햇빛을 부끄럽지 않게 안아볼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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