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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릴 땐 ‘월야산수도’를 감상하세요
마음 시릴 땐 ‘월야산수도’를 감상하세요
  • 김재호
  • 승인 2021.12.17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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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옛 그림을 본다는 것』 김남희 지음 | 빛을여는책방 | 248쪽

8월의 만월과 잎이 진 12월의 나목이 만나
모든 것이 사그라지는 인생무상을 담고 있다

「인왕제색도」(1751)는 인왕산의 산세가 빼어나게 드러난다. 이 그림은 겸재 정선(1676∼1759)이 일흔여섯 살이라는 만년에, 아픈 친구 이병연(1671∼1751)의 쾌유를 기원하며 그린 진경산수다. 하지만 정선이 그림을 다 그린 후 얼마 안 돼 이병연은 세상을 떠났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의 저자 김남희는 「인왕제색도」를 “비가 온 뒤 맑게 갠 인왕산을 그린 대작”이라고 평했다. 인왕산은 물기를 머금으며 묵직하게 서 있다. 「인왕제색도」에는 동양화의 삼원법 시점이 담겨 있다. 삼원법은 고원(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 평원(이 언덕에서 저 언덕을 수평으로 바라보는 시점), 심원(산의 앞면과 옆면까지 보이게 하는 시점)을 뜻한다. 「인왕제색도」를 보자면, 여러 시점이 함께 보이듯 입체적이다. 

옛 그림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관념산수에서 진경산수로, 양반 중심의 사실화에서 민간 생활사를 다룬 풍속화로 말이다. 김남희는 “삶이 애잔할수록 그림은 풍성해진다”라고 적었다. 한 붓 한 붓 칠한 화가의 속내가 나의 이야기가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남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화가를 만나고, 시대를 만나고, 작품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지만 결국 조우하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자기 자신이다.”

 

돌아보고 위로받고 일어서다

이 책은 1장 ‘돌아보다’, 2장 ‘위로받다’, 3장 ‘일어서다’로 구성돼 있다. 현재 원하는 마음 상태에 따라 책장을 펼치면 반가운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2장의 그림들 중 남리 김두량(1696∼1763)의 「월야산수도」(1744)는 이 시린 밤들을 달래줄 것 같다. 책에선 ‘온열기 같은 달빛으로 시린 마음을 달래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월야산수도」의 나무는 겨울나무들이다. 이 그림을 보자니, 안치환의 「겨울나무」(4집, 1995)가 떠오른다. 이 노래는 “지나버린 가을엔 난 너무나 슬펐네”라고 읊조린다. 황량한 마음을 나눌 친구조차 없는데, 「월야산수도」에는 저 멀리 달이보인다. 김남희는 “옅은 먹으로 언덕을 처리한, 오른쪽 숲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운치를 더하고, 둥글게 번지는 달빛이 나무를 감산다. 치밀하면서도 섬세하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김남희는 「월야산수도」에 대해 “8월의 만월과 잎이 진 12월의 나목을 한 화면에 조합해선 그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떨어진 싱싱한 잎과 언제나 기우는 달을 대비시켜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낸 것 같다는 평이다. 모든 이치가 그러하지 않은가. 꽃이 피면 언젠가 지듯이. 「월야산수도」는 시린 겨울에 만난 따뜻한 달과 같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에는 각 그림들에 대한 설명과 감상글들뿐만 아니라 ‘덧글’인 「자화상과 초상화로 본 시대의 얼굴」, 「야외와 정자와 실내에서 대면수업을 하다」, 「붓으로 그린 화가들의 웃음소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책에는 옛날 동양화뿐만 아니라 근·현대 서양화 작품도 담겨 있어 더욱 풍성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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