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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여전히 불평등·불공정하다
현실은 여전히 불평등·불공정하다
  • 최재목
  • 승인 2021.12.12 0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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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서동처를 추천하며_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

2021년은 심리적으로 참 힘든 한 해였다. 코로나19로 나라 전체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끊이질 않았던 OO사태, 정치판의 갈등과 다툼, 연이어 터져 나오는 부동산 문제, 수시로 터지는 고발, 고소…. 이런 저런 어둡고 불쾌하며, 앞날을 가늠하기 힘든 뉴스를 듣고 있노라면 한마디로 살맛이 안 났다. 이것은 비록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었으리라. 

그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말은 ‘비리, 부정, 부패, 적폐, 위법, 탈법, 불법, 허위, 사기, 뇌물, 청탁, 배임…’, 그리고 ‘아사리판, 내로남불, 적반하장, 제 식구 봐주기(감싸기), 악취 진동…’ 등등. 도대체 ‘이게 나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나는 몇 번 공무원들 대상으로 청렴에 대한 강의도 했지만, 솔직히 나라가 이 꼴인데 ‘이런 강의를 한들 뭣 하겠냐?’는 자괴감도 들었다. 우리의 현실은,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에서 보듯이, 생존을 위해 혼란스럽고 두렵고 불안한 길을 안간힘을 쓰면서 걸어가고 있다. 국민적 기대를 안고 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의 슬로건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였다.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이 슬로건이 이상(理想)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현실은 여전히 불평등·불공정·부정의하다고 느낀다.

사실 올해의 사자성어 추천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었다. 주로 정치와 정치판, 사회 분위기에 대한 것이었다. 변화무쌍함을 뜻하는 파란만장(波瀾萬丈), 갈피 못 잡고 허둥댄다는 천방지축(天方地軸), 하지 못할 일이 없는 듯 거만한 무소불위(無所不爲),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라는 난칠팔조(亂七八糟), 도둑과 도둑을 막을 사람이 한통속이 되었다는 묘서동처(猫鼠同處) 등등이었다. 이 가운데 나는 ‘난칠팔조’와 ‘묘서동처’를 추천하였다. 결국 묘서동처가 설문조사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묘서동처(猫鼠同處)’란, 고양이 ‘묘’, 쥐 ‘서’, 함께 또는 함께할 ‘동’, 있을 또는 곳 ‘처’라는 네 자로 조어되어 있다. 풀이하면 ‘고양이와 쥐가 자리(處)를 함께 한다(同)’, 또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同) 있다(處)’는 뜻이 된다. 

당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중국의 『구당서(舊唐書)』(후진(後晉) 때 지음)와 『신당서(新唐書)』(북송 때 지음. 구당서를 수정)에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빤다’는 묘서동유(猫鼠同乳)라는 말과 함께 나온다. 보통 쥐는 굴을 파고 들어와 곡식을 훔쳐 먹는 놈이고 고양이는 쥐를 잡는 놈이다. 이렇게 사이가 원수이어도 위아래 벼슬아치들이 부정 결탁하여 나쁜 짓을 함께 저지르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구당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더 적혀 있다: ‘낙주(洛州)의 조귀(趙貴)라는 사람 집에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빨고 서로 해치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의 상관이 쥐와 고양이를 임금에게 바쳤다. 그러자 정부의 관리들이 상서로운 일이라며 난리였다. 오직 최우보(崔佑甫)란 사람만이 “이것들이 실성(失性)하였다.” 즉 ’제 본성을 잃었다(=미쳤다)‘고 바른 소리를 하였다.’ 도둑을 잡는 자가 도둑과 한통속이 되었다는 것을 직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쥐를 잡는 동물이라 쥐와 함께 살 수 없다. 서로 원수 같은 사이인데, 어찌된 탓인지 이 둘이 서로 한패거리(=한통속)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르게 보면, 원수와 같이 있으니 포용력이 있고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아니다. 묘서동처를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해보면 뜻이 분명해진다. ‘고양이’는 나쁜 짓을 못하도록 감시·감독할 사람(공무원, 감사자, 검경, 법관 등)을, ‘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범법(위법, 탈법, 배임)을 저지르는 자를 은유한다.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거리가 되어 있는 것, 공직자가 위아래 혹은 민간과 짜고 공사 구분 없이 범법을 도모하는 것은 국가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 아닌가. 결코 용서 안 된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묘서동처 격이라면, 한 마디로 막나가는 이판사판의 나라이다.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케이크도 자르고 취하기도 하는 꼴, 묘서동처의 현실을 올 한해 사회 곳곳 여러 사태에서 목도하고 말았다. 슬프다.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동양철학(양명학), 넓게는 동아시아철학사상문화비교다. 한국양명학회장과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내 마음이 등불이다: 왕양명의 삶과 사상』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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