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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이 묘서동처·이전투구하니 사회는 피곤하다
정치판이 묘서동처·이전투구하니 사회는 피곤하다
  • 윤정민
  • 승인 2021.12.12 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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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를 통해 본 2021년
일러스트(왼쪽)=김상돈 경민대 교수. ‘묘서동처(猫鼠同處)’ 휘호(오른쪽)=정상옥 전 동방문화대학원대 총장. 서체는 ‘행서(行書)’.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만 2년을 앞두고 있다. 힘든 여건 속에 2021년을 맞은 국민은 사회 지도층의 현명한 대처와 빠른 일상 회복을 기대했다. 교수사회도 지난해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를 ‘아시타비(我是他非)’로 선정하는 등 정치권의 반성을 바랐다. 하지만, 최근 오미크론 변이 유행 등 코로나 공포가 여전한 상황에 정치권에서는 반성은커녕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큰 부정부패 사건들이 나타났다.

교수사회도 이를 의식한 듯, <교수신문>이 진행한 ‘2021 올해의 사자성어’의 최종 후보는 정치권 비판과 연관됐다. 묘서동처가 1천760표 중 514표(29.2%)로 1위를 차지했고, 인곤마핍(371표·21.1%), 이전투구(299표·17%), 각주구검(251표·14.3%), 백척간두(166표·9.4%), 유자입정(159표·9%)이 뒤를 이었다.

한 60대 인문학 교수는 묘서동처 선정 이유에 대해 “국가나 공공의 법과 재산, 이익을 챙기고 관리해야 할 처지에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불법과 배임, 반칙을 태연히 저지른다”라며, “감시자, 관리자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나 기관이 호시탐탐 불법, 배임, 반칙을 일삼는 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일들이 속출한 양태”였다고 밝혔다. 한 60대 사회계열 교수는 “정치판에 여야 모두 도둑놈들이면서 '도둑놈은 나쁜 놈'이라고 떠들어대는 해”였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모두 피해 다니느라 모두가 지친 한해

어지러운 정치권과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니 국민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2위를 차지한 인곤마핍(人困馬乏)은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라는 뜻으로, 유비가 기나긴 피난길에 ‘날마다 도망치다 보니 사람이나 말이나 기진맥진했다’라는 삼국지의 한 이야기에서 따온 사자성어다. 인곤마핍을 추천한 서혁 이화여대 교수(국어교육과)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비의 피난길에 비유하며, 올해를 “코로나19를 피해 다니느라 온 국민도 나라도 피곤한 한 해”로 정의했다. 인곤마핍은 30·40대 교수들로부터 많은 표를 받았다. 특히 40대 교수 270표 중 묘서동처와 인곤마핍이 67표(24.8%)씩을 받아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인곤마핍을 뽑은 교수들은 “코로나로 힘든 시국에 정치판도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인다(40대·인문)”, “덕과 인을 상실한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을 본 많은 국민이 깊은 피로감과 실망감을 느끼며 살아간다(60대·인문)” 등 지친 국민을 위로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비판했다.

내년에는 국민 모두 지친 형국을 벗어나길 기원하며 인곤마핍을 고른 교수들도 있었다. 이들은 “유비가 역경을 이겨내고 ‘촉한’을 세운 것처럼 포기하지 말고 서로 믿고 의지하자(40대·인문)”, “모두 지쳐있음을 말함과 동시에 서로 노력을 통해 극복하자는 염원을 담아 선정했다(40대·자연)”라고 밝혔다.

 

2021년 올해의 사자성어 '묘서동처'를 뽑은 교수 257명의 의견을 종합해 많이 나온 단어들을 워드 클라우드로 추렸다. 디자인=윤정민

자기 잇속 챙기는 데 급급해 각주구검한 정치권

3·4위도 모두 정치권을 비판하는 사자성어로 이뤄졌다. 3위를 차지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툰다는 말이다. 정태연 중앙대 교수(심리학과)는 “국민은 코로나19, 높은 물가와 집값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저속한 욕설로 서로 비방하면서 싸우고 있다”라며, “그 비열한 모습이 우리 국민 눈에는 한심하고 혐오스럽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현 사회를 비판했다.

이전투구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한 40대 인문학 교수는 “‘정치’란 천재와 인재를 극복해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 정치인들은 그저 당의 이익과 선거 승리라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멀어서 국민의 삶에는 안중도 없다. 말 그대로 ‘진흙탕 속 싸움’으로,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이 형국이 답답하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4위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로,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뜻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는 “부동산, 청년 문제 등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현실 정치권을 빗대어 표현”하기 위해 이 사자성어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백척간두···“21세기 한국의 명운이 걸렸다”

백척간두(百尺竿頭)와 유자입정(孺子入井)은 내년에는 밝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추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백척간두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라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이라는 말이다. 송혁기 고려대 교수(한문학과)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혜를 모아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도 숨 가쁜 현실인데, 대선을 둘러싼 정치판을 보면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다”라며, “하지만,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진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의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듯, 우리가 다시 내딛는 한 발에 21세기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있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한다’라는 뜻의 유자입정을 추천한 전호근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치권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서민들의 삶을 보살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 50대 공학 교수는 “유자입정은 맹자의 성선설에 기인한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우선한다는 순수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며, “작금의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순수하게 나의 이익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최종 후보에는 들지 못했으나, 한상덕 경상국립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빠른 일상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소망을 담아 ‘운예지망(雲霓之望)’을 추천했다. ‘가뭄 때 구름과 무지개를 바란다’라는 뜻으로, 한 교수는 올해를 “정치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코로나19를 조속히 극복해 내고 일상의 도래를 갈망하는 국민의 바람이 강렬한 한해”였다고 평가했다.

 

윤정민 기자 luca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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