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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명과 팬데믹 못 품은 ‘학술진흥법’…소통·기여는 왜 없나
디지털 혁명과 팬데믹 못 품은 ‘학술진흥법’…소통·기여는 왜 없나
  • 김재호
  • 승인 2021.12.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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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등 학술 둘러싼 환경 변화 포괄해야
7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2021 학술정책 제4차 포럼’ 열려

”현재 ‘학술진흥법’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하연섭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7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삼익홀에서 열린 2021 학술정책 제4차 포럼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국회의원 유기홍, 정청래, 김철민, 박찬대, 윤영덕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에서 주관했다.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이기도 한 하 교수는 「뉴노멀 시대의 중장기 학술정책 재정립 방안」 발표를 통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혁명, 팬데믹과 기후변화, 인구 감소 등 학술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 변화를 학술정책이 담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학술진흥법’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인 ‘융합’과 ‘실천’의 요소가 반영돼 있지 않다”라며 “그 정의와 범위가 추상적이며 제 분야의 융합과 사회적 기여를 위한 실천성을 담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서 하연섭 연세대 교수는 학술의 의미를 되짚으며, 미래 학술정책을 위해 ‘(가칭)학술정책혁신위원회(이하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사진=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포럼 영상 캡처

하 교수는 현재 「학술진흥법」 제2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학술의 의미가 매우 폐쇄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학술과 사회의 관계, 학술활동 결과의 응용, 사회적·경제적 가치 등은 모두 무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정의에 따르면, 학술은 “학문의 이론과 방법을 탐구하여 지식을 생산·발전된 지식을 발표하며 전달하는 학문의 모든 분야 및 과정”이다. 새로운 학술의 정의에는 사회적 적용과 개방성·융합성·실천성 등 인문·사회·기초과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포함돼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하 교수는 지식생산의 방법으로 두 가지를 구분했다. 첫째, 전통적인 학문체계로서 스몰 사이언스(small science)를 가정한다. 여기서 사이언스는 ‘학’을 뜻한다. 이 방법은 대학을 비롯한 학술기관들에서 생산한 지식이 단선적으로 유통-분배-소비된다. 하 교수는 이를 ‘모드 1(Mode 1)’이라고 지칭했다. 둘째, 지식의 생산-유통-분배-소비의 주체가 다양화되며 거대과학(Big science)을 추구한다. 이 지식생산의 방법에서는 거의 모든 학술활동이 사회경제적 응용이라는 맥락 하에서 이뤄진다. 지식생산은 초학문성과 이질성을 띤다. 특히 대학을 비롯한 학술연구 기관들의 통상적 기능을 초월하는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으로 지식은 생산된다. 하 교수는 이 방법을 ‘모드 2(Mode 2)’로 불렀다. 모드 2는 모드 1월 포괄하며, 새로운 학술은 모드 2를 추구해야 한다. 

연구 자율성·독립성 확보하는 거버넌스

아울러, 하 교수는 학술정책의 방향에서 △고등교육정책과 학술정책의 연계 강화 △연구행정의 관료화 억제와 연구자의 지위와 활동 보장 △학술활동 공간의 확장 및 재창출을 강조했다. 해외 사례로는 영국의 이중지원시스템이 소개됐다.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학술정책과 거버넌스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인문사회가 연구방향을 제시하며 과학기술은 지원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은 학술적 성과 평가지표를 영향력 위주로 혁신했다. 이에 따라 과학적·사회적·경제적 영향으로 구분해 학술연구를 평가한다. 

학술정책 재정립을 위한 추진전략으로 하 교수는 ‘(가칭)학술정책혁신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제시했다. 이 위원회를 구성해 학술정책 관련 어젠다 설명, 사회적 대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위원회는 학술정책과 관련해 독립성·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구성·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위원 구성은 학문 분야, 경력 등을 고려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위원회 구성과 사회적 대회가 이뤄지면 다음이 가능하다는 게 하 교수의 제언이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현안 과제 의견 수렴 △중장기적 해결책 모색 △연구자에 대한 자율성 부여와 동시에 연구자의 책무성 확보 방안 △문화와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학계와 대학의 동참 방법 △융합과 사회적 유용성을 가진 새로운 학술연구지원사업의 기획 방안. 하 교수는 학술정책의 새로운 비전으로 창의와 도전, 융합과 실천, 공유와 확산을 제안했다.

 

이번 포럼에선 선도적인 학술정책을 위해 학술생태계와 예산 마련, 관련 법 등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사진=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포럼 영상 캡처

주제 발표에 이어 토론이 이어졌다.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인 윤 비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미래의 학술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지역간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학술 생태계가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학술의 정의를 보다 개방적·융합적·실천적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수년간의 장기 연구과제 발굴 및 지원이 필요하고, 국가·정책적 요구와 연구자의 자율성·창의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학술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인문사회과학 학술 연찬이 가능한 ‘국가학술센터’ 건립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문사회과학 학술분야는 회의나 학술행사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인 이재영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기존 「학술진흥법」을 개정하는 것보단 「기초학술기본법」(가칭)을 새로 제정하는 게 더 확실하고 능률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이날 포럼에서 제기된 사안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지적돼 온 것이기에 이제는 연구분석 차원을 넘어 실천해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기초연구연합회 부회장인 최은영 서울대 교수(의과학과)는 “우리나라 연구지원 시스템이 목적 지향적이며 대학에 지원하는 건 미흡하다”라며 “OECD 국가들 중 4곳을 제외하면, 일반대학연구진흥금으로 기초연구·인문사회 연구에 지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독일대학은 자연과학·공학·인문학 분야 연구비 중 일반대학연구진흥금이 포함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 교수는 “대학은 인력양성만이 아니라 연구를 하는 곳이다”라며 “기초연구와 인문사회 연구를 통해 선도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하유경 교육부 학술진흥과장은 “학술혁신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공감한다”라며 “연구 자율성과 더불어 연구윤리 차원의 책무성이 학술정책의 중요한 두 축”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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