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1:20 (수)
동향: 故 홍이섭 교수의 한국사 연구 재조명
동향: 故 홍이섭 교수의 한국사 연구 재조명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09.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학연구의 지평 넓혀...70년대 근대화론과 변별 어려워

민족주의 사학자 홍이섭의 역사인식에 대한 연구가 그의 후학들에 의해 재조명 됐다.

지난 6월 30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원장 설성경)에서 발행된 ‘동방학지’(제130집)는 ‘홍이섭의 한국사 연구’를 특집으로 다뤘다. 총 네 편의 논문이 실린 이번 특집은, 홍이섭 타개 30주기로 작년 10월 연세대 광복관에서 열린 ‘홍이섭의 한국사 연구’에서 발표된 논문을 보완해 엮은 것이다.

김도형 연세대 교수(한국근대사)의 ‘홍이섭의 현실인식과 역사연구’는 홍이섭의 학문적 생애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기조논문의 성격을 가진다. 김 교수는 홍이섭이 기독교적이면서도 민족적인 배재고보와 연희전문에서 수학한 점과 함께 1930년대 국학을 일으켰던 정인보, 최현배, 백낙준, 백남운 등에게 문학과 교육 속에 내재된 조선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배웠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서양사와 유물사관의 섭렵이 홍이섭의 역사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홍이섭의 조선후기 실학이 개혁성을 은폐하는 바람에 봉건사회의 쇠락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가 보기에 홍이섭의 실학은 중세체제의 근대적 개혁성 규명까지 이어지지 못한 점과  근대 한국의 역사적 산물인 봉건성과 식민성, 그리고 후진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민족의식을 내세우지만, 이런 논리는 박정희 정권이 제기한 민족근대화론의 주장을 비판할 수 없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문중양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의 ‘홍이섭 과학사 연구를 넘어서’는 홍이섭의 맑스주의와 과학사관에 집중한다. 문 교수는 1931년 러시아 헤센의 맑스주의 과학관이 동양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보고, 원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회민중의 시각에서 규명한 홍이섭의 ‘朝鮮科學史’를 분석한다. 문 교수는 홍이섭의 역사관을 찬란했던 세종조의 성과가 ‘宮庭性’에 한정돼 민중에 의한 자발적 참여와 생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고 소개하고, 이를 보편적이고 목적론적 과학관에 입각한 잘못된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과학사가들이 현재까지 보편론·목적론적 과학관에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호훈 연세대 교수(사상사)는 유형원을 이어 이익에서 나눠지는 5개의 유파를 구분하여 실학의 구조를 살핀 초기연구와 이후 외래문화 추수와 내화시켜가는 과정에서 중화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홍이섭의 주장을 소개하며, 이는 실학을 현실성과 과학성으로 연구한 천관우 전 한국사상사협회 회장, 시기별 성격을 구분한 한우근 전 서울대 교수과 더불어 실학연구의 지형도를 넓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보 연세대 교수(현대사)는 홍이섭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개방적이며 경제사회적 토대를 중요시 했다는데 중시했다. 남북 두 정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민족통일론을 펼쳤다는 점과 식민사관인 숙명적 후진성과 구분되는 민족의 정체성을 모색했다는 데 민족적 역사학의 선구자라고 위치지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