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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들은 왜 재임용 심사를 스스로 포기했을까
강사들은 왜 재임용 심사를 스스로 포기했을까
  • 박중렬
  • 승인 2021.12.06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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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오늘을 말하다 ⑧ 대학 강사제도

시대가 학문 분야 간 소통과 협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소통과 협업의 선결요건은 학문의 균형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는 여전히 심각한 소외와 격차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학술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기관이나 심의자문기구는 물론이요,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전문법령조차 전무한 것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실상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스스로의 본령을 지키고 학술연구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기반 확립이 시급하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앞으로 11회에 걸친 기고를 통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연구와 교육의 현황과 전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국회의 가시적 조치를 촉구하고자 한다.

등록금 동결과 학령 인구 감소 등으로 대량 해고 위기 몰린 강사들
연구활동만으로 연구자 생계가 가능해야 지속가능한 학문생태계다

대학 강사제도는 2019년 8월 이른바 ‘강사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법」 제14조2(강사)의 개정과 함께 시작됐다. 그 이전까지 강사는 이른바 ‘보따리장수’로 불렸던 시간강사였다. 이들의 삶은 척박했다. 한 학기 단위로 위촉과 해촉이 반복됐다. 불완전고용 그 자체였다. 임금은 연 30주 강의료, 7백만 원~1천5백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강의가 없는 방학 22주에는 이마저도 없었다. 어쩌다 연구비를 수주하면 조금 형편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 고단한 삶에 지친 분들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사립대 강사 처우 개선을 촉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해왔다. 사진=강일구

시간강사의 암울한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픈 속내를 다들 애써 못 본 척했고,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종기처럼’ 외면하기 일쑤였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천형(天刑)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곳으로부터 분리된 중간적 존재처럼 살아왔다. 이들의 교육연구환경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촛불 정국이었다. 촛불이 켜지면서 그동안 온존해왔던 대학 내의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기에 힘입어 대학과 강사 단체가 사회적 기구인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하였고, 오랜 대화 끝에 현재의 강사법에 합의한 것이다.

강사법에서는 강사에게 고등교육법상 교원의 지위를 인정하고, ‘교육 및 지도, 학문연구’가 그 임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외에 공개 채용과 1년 이상 계약 임용, 신규 임용을 포함하여 3년간 재임용 절차 보장, 교원소청심사권 부여 그리고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적어도 이 기간만이라도 ‘교육연구노동자’인 강사가 고용 불안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대학 재정난에 강사 ‘대량 해고’ 위기

그러나 강사제도가 시행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강사의 고용 안정에서부터 근간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2021년 국정감사를 계기로 대학의 재임용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242개 대학의 재임용 심사 대상자 5만7천375명 중 14.7%인 8천443명이 재임용 심사 제외자였다.

이 가운데 교과목 개편, 신임교원 채용 면직, 강의평가 미달 등의 사유로 심사에서 탈락한 인원이 16.5%인 반면, 스스로 재임용을 포기한 인원이 83.5%인 7천57명이었다. 재임용 신청을 포기한 개별적인 사유를 알기는 어렵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정도의 수치이다. 혹 과거 시간강사 제도하에서처럼 학과에서 재임용 신청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지는 않았는지 우려스럽다. 대학이 강사법을 자의적으로 악용하지는 않았는지, 재임용 절차를 규정한 강사법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하지는 않는지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강사 처우개선 제도 중의 하나인 방학 중 임금도 강사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등교육법」에서는 강사에게 방학 중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사는 전임교원이나 초중등교사와 마찬가지로 방학 중에도 강의를 준비하고 연구 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9년 강사법 시행 당시 대학이 재정난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강사를 대량 해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교육부가 나서서 ‘강사 처우개선사업비’라는 이름하에 학기 당 2주 분의 방학 중 임금과 주 5시간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의 퇴직금을 지원하여 왔다.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 교육부의 노고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개선책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교육부가 2022년도 예산으로 편성한 사립대의 처우개선비를 기획재정부에서 전액 삭감했다. 다행히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예산안이 통과됐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지난 12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립대 강사들이 당장 내년에 대량 해고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등록금이 동결되고 학생 수도 줄어들어 가뜩이나 재정난에 힘든 대학들이 비정규직 강사 수를 줄이는 손쉬운 방법을 택해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 눈에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방학은 22주이므로 임금 또한 그만큼 지급하라거나 5시간 제한을 없애고 모든 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만용이나사치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대학에서 10년, 20년 동안 교육과 연구역량을 축적해 온 강사가 이렇듯 정부와 대학의 무대책으로 속절없이 해고당하는 날만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 고등교육의 현실이라는 점에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무너지면 결국 학문의 다양성은 고갈되고 대학의 교양 교육이 황폐화되고 전임교원의 강의와 연구 부담은 날로 심해져 결국 대학과 학문의 생태계가 뒤죽박죽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강사 없으면 전임교원 부담이 늘어난다

다른 한편으로 교육자인 대학 강사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석박사 과정을 포함하여 십수년 동안 연구 활동을 수행해 왔다. 그들의 연구역량과 자산은 실로 막대하다. 그들이 만약 강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연구자로서의 활동이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9년 강사법 개정 당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요구하여 대학에서 강의 경력이 있는 강사라면 비록 강사로 임용되지 못하였더라도 학술연구교수 지원사업에 응모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긴 했지만 아직까지 제도나 재정 지원의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다. 연구 활동만으로도 연구자의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연구생태계’ 구축이다.

생활 임금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한다면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길 것이고, 이때야 비로소 장기적인 연구 활동도 가능할 것이다. 그럴 때 학문은 살아난다. 기초학문으로서 인문학은 특히 더 그러하다. 연구자로서의 대학 강사의 ‘사회안전망’ 구축은 매우 절실한 과제이다.

강사법에는 불평등과 차별이 없는 대학을 만들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강사들의 땀과 눈물이 그 안에 녹아 있다. 대학과 정부는 그 지난했던 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발전시켜나가는 것, 대학과 정부의 할 일이다. 더 나아가 대학이 어렵다면 국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일 것이다.

 

 

박중렬
전남대 강사・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전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근대소설의 시학과 계몽담론』, 『광주전남문학통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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