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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 데 두려워해야 한다”
“작가는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 데 두려워해야 한다”
  • 윤정민
  • 승인 2021.12.0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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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통일로문학상 제4회 본상 수상작가 '아룬다티 로이'와의 만남
‘제4회·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부대행사로 지난달 26일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된 '아룬다티 로이'와의 만남에서 작가가 현장·온라인으로 참여한 독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윤정민

‘제4회·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부대행사로 지난해 제4회 본상 수상자인 인도의 아룬다티 로이 작가와의 만남이 지난달 26일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하 문학상)’은 서울 은평구에서 50년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온 통일문학 대표 문인 고 이호철 작가의 문학 활동과 통일 염원의 정신을 기리고자 2017년 은평구가 제정한 상이다. 지난해 제4회 문학상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만 열렸고, 이후 지난달 25일에 제5회 시상식과 함께 진행됐다.

로이는 인도 출신 소설가다. 그는 불가촉천민과 여성들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 쓴 데뷔작 『작은 것들의 신(God of the Small Things)』으로, 1997년 영국 부커상을 받았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다.

로이의 이번 문학상 수상은 그의 두 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The Ministry of Utmost Happiness)』(2017)로 비롯됐다. 그는 데뷔작 이후 수필만 쓰다가 20년 만에 두 번째 소설을 썼다. 남녀 성기를 모두 지닌 채 태어나 제3의 성인 ‘히즈라’를 택한 무슬림 ‘안줌’과 카슈미르 분쟁에 휘말린 건축학도 출신 ‘틸로’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는 현장과 온라인(Zoom)에 100여 명의 독자가 참여해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는 박혜영 인하대 교수(영어영문학과)가 맡았다.

 

인도 사회 내 카스트는 여전히 강력해

로이 작가는 인권, 종교, 계급 차별 등 다양한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사회활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제4회 문학상을 수상했을 당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예술(문학)과 정치는 뼈와 피의 관계”라며, 분리할 수 없기에 “작가는 지금의 복잡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를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답게 이번 만남에 참여한 독자들은 소설 밖에서의 작가의 삶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독자들과 로이는 그의 소설뿐만 아니라 인도 카스트, 사회 운동, 작가로서의 가치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도 헌법에는 카스트 제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카스트는 아직 인도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로이 작가는 카스트가 인도의 불합리한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자, 진보주의 운동가, 베스트셀러 작가 모두 판사, 정치인, 기자 등과 같은 소수 집단에 속해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합리한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 할 그들조차 외부 활동 시 카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듯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로이는 인도 사회 다수에 속하는 토착민과 불가촉천민(달리트)의 삶을 소설에 담았다. 그의 소설에는 달리트인 등장인물의 아버지가 채찍을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인물은 카스트의 낙인에 벗어나고자 이슬람교로 개종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를 여전히 달리트로 취급한다. 로이는 이러한 일이 인도에서 흔히 나타난다며, 달리트들이 기독교나 이슬람교, 시크교 등으로 개종하더라도 인도 사회 내에서는 카스트로 그들을 바라본다.

길거리에서의 시민의 탄압, 정부 탄압 못지않아

인도 정부나 힌두민족주의 정당 등 지도층은 사회적 소수자나 카스트를 비판하는 언론, 작가 등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동을 보인다. 로이 작가 역시 그들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아왔다. 그는 2000년 인도 대법원의 나르다 댐 건설 승인 결정을 비판했는데, 이때 법원모욕죄로 2002년 3월에 구금 1일형과 2천 루피의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글에 소신을 지키고 있다. 박혜영 교수는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로이는 정부의 탄압은 걱정하지 않으며, “작가가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로이는 작가, 변호사, 기자, 사회운동가, 교수 등 지인 다수가 사회에 저항하다 대부분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인만큼 구속 수감될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도 감옥에서 이겨내고 있는 동료들이 있기에 더 책임감을 지니고 작가로서 할 역할을 다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인도에서 많은 작가와 기자, 코미디언, 영화인이 정부의 검열보다는 거리에서의 검열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회 비판적인 움직임 때문에 길거리에 지나다니다 시민들로부터 매를 맞기도 하거나 갑작스럽게 살해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일은 무슬림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미묘하게 엮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 의견과 덧붙여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선거 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지난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인도 인민당(BJP)이 1억7천5백만 명인 무슬림 표가 없어도 선거를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해냈다”라며, 사실상 무슬림의 선거권이 박탈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제 달리트의 선거권도 필요하지 않고, 카스트 제도를 더욱 견고히 유지할 수 있는 결과”라며, 지금의 선거 제도가 “카스트 상위층이 달리트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이 탄압할 수 있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아룬다티 로이(왼쪽)가 사회자 박혜영 인하대 교수(영어영문학과·오른쪽)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윤정민

언어 번역은 창작의 일부

인도는 헌법상 22개의 공용어를 둔 다중언어 국가다. 로이가 쓴 작품들에도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 ‘지복의 성자’에는 등장인물끼리 서로 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통번역해주기도 한다. 로이는 인도의 다양한 공용어를 넣는 데에 대해 힌두민족주의가 반가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힌두민족주의자들이 특정 언어, 특정 단어를 사용하는 데 비난한다며, 특히 어떤 단어는 이미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도 그 단어를 쓰는 데 비난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작품이 한국어, 폴란드어 등 전 세계 56개 언어로 번역됐다. 하지만, 내 소설에서 번역은 집필을 마무리한 다음에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 아니라 창작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가 세계를 두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하나의 바다”라고 정의했다. 그 물고기들은 서로 적대적이고 잡아먹기도 하지만, 서로 배려하기도 하기에 어떻게 보면 불완전한 바다다.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이를 두고 하나의 언어, 하나의 종교, 하나의 선거 등 단일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로이는 만약 소설에게 적이 필요하다면 이러한 단일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지복의 성자’ 집필을 마무리할 때, ‘아룬다티 로이가 썼다’가 아니라 ‘아룬다티 로이가 번역했다’라고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등 다양한 언어가 들어간 작품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작품 등장인물 중 왜 소수자만 신기하게 보는가

인도에서는 성 소수자를 ‘히즈라’라고 부른다. 『지복의 성자』 주인공 ‘안줌’도 히즈라다. 로이는 히즈라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유에 대한 독자의 질문에 ‘안줌’은 ‘안줌’일 뿐이라며, “많은 사람이 안줌을 등장시킨 이유를 묻는데, 나는 오히려 정보국 공무원 등 다른 인물 등장에 대해선 왜 묻지 않는지 되묻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작품에 성 소수자 인물을 넣은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소설 등장인물이 대부분 정체성을 구분하는 경계 사이에 위치한 걸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지복의 성자에 등장하는 ‘안줌’은 델리에서 태어난 무슬림으로 남성을 키우려던 부모 곁을 떠나 제3의 성을 택한다. 2002년 구자라트 학살(힌두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중 열차 화재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힌두교 신자들은 무슬림이 방화범이라며 1천 명 이상의 무슬림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에 휘말렸으나 히즈라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히즈라를 죽일 때, 그들이 지닌 저주를 물려받는다고 힌두교인이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이처럼 그는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는다며, 이름이나 종교, 카스트가 여러 번 바뀐다고 말했다.

로이는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두바이를 경유하던 중 가까운 지인이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고립감과 우울감, 최근 친구가 구속된 데에 대해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한국 독자들과 만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그는 “남인도 지역에서 자란 나로서는 다양한 사람과 서로 글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기적과 같다”라며, “한국에서도 내 소설을 지적으로 깊게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luca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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