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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언_삼국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문가 조언_삼국지,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정원기 아시아대
  • 승인 2005.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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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선입견 없이 흥미로 볼 것…비판적 안목 필요

흔히 ‘삼국지’로 통용되는 ‘三國志演義’는 장구한 세월동안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과 전쟁, 그리고 광활한 대륙의 지리적 기후적 악조건을 극복하며 살아온 중국인들의 인생관, 역사관, 가치관이 적절히 용해돼 있는 불후의 고전소설이다. 같은 역사소설이면서도 좌전, 전국책, 사기 등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기만 한 동주열국지나 초한지와 달리, 결코 사실의 원줄기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주제의식도 뚜렷하며, 무수한 등장인물들이 제각기 살아 움직이는 듯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그래서 毛宗崗은 ‘讀三國志法’을 통해 삼국지의 장점을 25가지나 열거했고, 그 중에서도 문장구성이나 문체의 특성을 찬탄하는 데 70%나 할애하고 있다.

시간적 영원성과 공간적 보편성 확보가 고전의 조건이라면, 삼국지야말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췄다. 서기 280년 정사 삼국지가 나온 이래로 소설 삼국지의 소재가 될 고사들이 발아되기 시작했고, 그 후 1천년의 성장기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의 민간예술이 꽃피운 결과, 130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마침내 중국 최초의 역사소설로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결코 단순치 않은 성서과정을 감안한다면 삼국지는 그야말로 중국 민중의 정치적 이상과 국가적 소망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편의 완벽한 문학작품으로 탄생된 삼국지는 ‘四大奇書’로 호칭되며 지금까지 7백년이 넘도록 꾸준히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국내만 하더라도 1500년대 중반 처음 도입된 이래 4백50년 동안 끊임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본고장인 중국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일본에서는 가히 ‘삼국지산업’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삼국지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와 영미, 유럽까지 널리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삼국지에 대한 열기가 우리만의 이상현상이라든가 동아시아만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담론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삼국지는 어떻게 읽어야할 것인가. 기존의 삼국지독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삼국지를 역사적 선입견 없이 흥미위주로 읽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전혀 역사적 지식 없이 왕왕 소설 그 자체를 정사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는 방법이다. 과거의 지식인들이 通鑑을 읽은 선입견 때문에 소설 삼국지를 지나치게 황탄한 책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포함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장단점은 있겠지만 문학작품 감상에는 전자의 방법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감동을 받는 대상은 사서 가운에 박제돼 있는 1천8백년 전의 역사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책만 펼치면 금방이라도 눈을 부라리며 뛰쳐나올 것 같은 살아 숨쉬는 소설 속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동대 쉬츠안우 교수는 기존의 ‘七實三虛’라는 통념을 깨고 ‘三實七虛’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지적할 것은 역사적 지식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역사적 지식이 문학감상에 방해자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삼국지 가운데는 동아시아 세계관의 근원이 된 중국 고대사상이 백과전서라 부를 만큼 다양하게 녹아들어 있으므로 중화지상주의라든가 여성폄하사상 등 비판적 안목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통 도덕관념인 충효와 절의도 공존하고 있다. 그 속에 묻힌 사상은 객관적 감상이나 이해의 대상일 뿐 주관적 개혁이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판단해 어느 한쪽에 치우친 평가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변화무쌍한 정치·군사·외교 투쟁을 통해 통일과 仁政을 갈망하고 분열과 폭정을 거부하는 기본 흐름을 꿰뚫어 볼 혜안이 필요하다. 역사상 害惡論이나 非古典論 등의 비평이 여러 번 있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가끔 ‘이상 열기’라고들 하지만 수백 년 이어온 이상 열기는 바로 정상 열기다. 난세의 소설, 모략의 지침서라면서 왜 끊임없이 삼국지를 찾는가. 현실은 언제나 난세이고, 정치·경제·외교를 비롯한 인간관계에는 어쩔 수 없이 모략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삼국지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한 마디로 단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무수한 서적이 금서로 지정된 적은 있었지만 삼국지가 단독으로 금서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원기 / 아시아대·중문학

필자는 현재 삼국지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최근 삼국지연의 연구동향’이, 역서로 ‘삼국지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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