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 영원성과 공간적 보편성 확보가 고전의 조건이라면, 삼국지야말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췄다. 서기 280년 정사 삼국지가 나온 이래로 소설 삼국지의 소재가 될 고사들이 발아되기 시작했고, 그 후 1천년의 성장기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의 민간예술이 꽃피운 결과, 130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마침내 중국 최초의 역사소설로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결코 단순치 않은 성서과정을 감안한다면 삼국지는 그야말로 중국 민중의 정치적 이상과 국가적 소망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편의 완벽한 문학작품으로 탄생된 삼국지는 ‘四大奇書’로 호칭되며 지금까지 7백년이 넘도록 꾸준히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국내만 하더라도 1500년대 중반 처음 도입된 이래 4백50년 동안 끊임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본고장인 중국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일본에서는 가히 ‘삼국지산업’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삼국지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와 영미, 유럽까지 널리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삼국지에 대한 열기가 우리만의 이상현상이라든가 동아시아만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담론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삼국지 가운데는 동아시아 세계관의 근원이 된 중국 고대사상이 백과전서라 부를 만큼 다양하게 녹아들어 있으므로 중화지상주의라든가 여성폄하사상 등 비판적 안목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통 도덕관념인 충효와 절의도 공존하고 있다. 그 속에 묻힌 사상은 객관적 감상이나 이해의 대상일 뿐 주관적 개혁이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판단해 어느 한쪽에 치우친 평가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변화무쌍한 정치·군사·외교 투쟁을 통해 통일과 仁政을 갈망하고 분열과 폭정을 거부하는 기본 흐름을 꿰뚫어 볼 혜안이 필요하다. 역사상 害惡論이나 非古典論 등의 비평이 여러 번 있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가끔 ‘이상 열기’라고들 하지만 수백 년 이어온 이상 열기는 바로 정상 열기다. 난세의 소설, 모략의 지침서라면서 왜 끊임없이 삼국지를 찾는가. 현실은 언제나 난세이고, 정치·경제·외교를 비롯한 인간관계에는 어쩔 수 없이 모략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삼국지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한 마디로 단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무수한 서적이 금서로 지정된 적은 있었지만 삼국지가 단독으로 금서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원기 / 아시아대·중문학
필자는 현재 삼국지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최근 삼국지연의 연구동향’이, 역서로 ‘삼국지사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