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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정치가 섞일 때…의미는 변질되고 왜곡된다
과학에 정치가 섞일 때…의미는 변질되고 왜곡된다
  • 유무수
  • 승인 2021.12.03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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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겸손한 목격자들』 김연화 외 3인 지음| 에디토리얼 | 336쪽 · 『리센코의 망령』 로렌 그레이엄 지음 | 이종식 옮김 | 동아시아 | 268쪽

학문적 경쟁자들을 숙청 당하도록 사주한 리센코
민주국가에서 태어났더라면 그토록 지지 받았을까

히로시마를 초토화시킨 원자폭탄은 조선의 통쾌한 해방을 의미하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원자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들의 일각은 참담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1969)에서 물리학자인 동료 오토 한이 죄책감으로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1945년 8월 6일 카를 비르츠가 내게 오더니 방금 라디오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전해주었다… 내가 25년간 몰두해온 원자물리학의 발전이… 대도시와 대도시의 수많은 주민들, 전쟁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끔찍한 종말로 내몰았으니… 오토 한은 깊은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서 자기 방에 틀어박혀 버렸고…”

도대체 과학기술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겸손한 목격자들』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저자들이 제기한 질문이다. 저자들은 브뤼노 라투르가 민족지 연구라는 인류학의 방법론을 미국의 생물학 연구소에서 약 2년 동안 적용했던 것처럼 과학기술의 현장에서 참여관찰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대상은 조류탐사가 이루어지는 야외, 경락을 연구하는 물리학 실험실, 자폐증을 공부하는 엄마들 그리고 강남 성형외과였다. 겸손한 목격자로 내부의 상황을 폭넓게 파악하면서 연구가 구체화되고 정교하게 발전했다. 낯설었던 현장에 점점 더 깊게 소속되어갈 때 연구자들은 내부자를 점점 호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MIT공대 과학기술학 및 하버드대 과학사 명예교수인 로렌 그레이엄은 『리센코의 망령』에서 자신이 50여 년 간 연구했으며 직접 인터뷰까지 했던 러시아 과학자 리센코(1898~1976)에 대해 중립적인 관찰자와 냉철한 평가자의 관점을 견지했다. 

리센코는 스탈린 집권기에 정치권력의 지원을 받으며 러시아 생물학계를 석권했고 자신이 주장하는 ‘획득형질의 유전’에 이견을 제시하는 학문적 경쟁자들이 비밀경찰에 의해 숙청을 당하도록 사주했다. 그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반박했던 바빌로프는 옥중에서 굶어죽었다. 리센코가 소련학계에서 몰락한 이후 미국국립아카데미 정식 파견교환연구원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던 저자는 리센코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다수 러시아 생물학자의 숙청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제기했을 때 리센코는 자신은 공산당 소속도 아니었으며, 숙청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동안 리센코가 인정하지 않았던 분자생물학과 후성유전학의 발전과 더불어 획득형질 유전의 개념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스탈린 시대를 그리워하는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서구학계와의 대립구도 속에서 “리센코가 옳았다!”고 외치며 리센코의 견해를 대변하는 10~11학년용 생물학 교과서를 제작하고 일선학교에 채택압력까지 넣고 있다. 

그레이엄은 획득형질의 유전을 지지했지만 리센코를 부정하는 러시아의 곤충학자 류비셰프(1890~1972)가 리센코에게 맞서는 이유를 소개했다. 리센코의 불관용과 독단주의, 재현가능성에 입각한 기초적인 연구 표준에 미달,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목적 추구 등은 패악이었다는 것이다. 리센코의 방법 중 오늘날 러시아에서 널리 활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자는 리센코가 민주국가에 태어났다면 그처럼 강력한 지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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