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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역사 인식
흔들림 없는 역사 인식
  • 이지원
  • 승인 2021.11.29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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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자네 야스노리 지음 | 전은옥 옮김 | 삶창 | 288쪽

일본인 피폭자와 조선인 피폭자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가사키에서 평생을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연행과 조선인 원폭 피해 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2017년 4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건립하고 운영해온 다카자네 야스노리이다. 다카자네 야스노리는 1939년 일본의 식민지였던 서울에서 태어났다.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간 다카자네는 “조선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억압 민족이었던 일본인이라는 자신의 태생을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그런 자의식 때문인지 다카자네는 조선인 강제 연행과 원폭 피해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일본인도 원폭의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조선인 피폭 문제는 일본인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질적인 차이”란 “일본인 피폭자는 침략전쟁을 자행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입장을 비껴갈 수 없지만, 조선인 피폭자는 아무런 전쟁책임도 없는데 원폭 지옥에까지 내던져진 완전한 피해자다”라는 고(故) 오카 마사하루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면서 다카자네 야스노리는 조선인의 강제 연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실증적으로 파고든다. 

조선인 강제 연행은 1939년의 각의(閣議) 결정 ‘노무 동원 실시 계획(勞務動員?施計?)’ 안에 포함된 ‘조선인 노무자의 내지 이주에 관한 건(朝鮮人?務者內地移住に?する件)’(같은 해 7월, 내무성·후생성 양 차관 통첩)에 따라 개시되었으나 중일전쟁의 격화로 인해 노동력 부족에 빠진 산업계가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인 청년을 대량으로 전장에 보내는 한편, 그로 인한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국가권력과 기업이 결탁해 조선인 청년을 강제 연행하고 탄광, 광산, 철강, 조선, 토목, 건설, 군사 등의 시설에서 강제 노동을 시킨 것이다.

일본의 양심답게 다카자네 야스노리는 조선인의 원폭 피해도 강제 연행으로 인한 결과였음을 거듭 지적한다. 다카자네는 단지 강제 연행과 원폭 피해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선인 ‘위안부’ 문제와 일제가 저지른 난징 대학살, 나아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동아시아 이웃나라에 대한 일본의 반인륜적이고 몰역사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또 센카쿠 열도와 독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역사적 기원을 냉철하게 따지는가 하면, 일본제국주의의 사상적 초석을 놓은 요시가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비판도 빼먹지 않는다. 

다카자네 야스노리의 이러한 역사 인식은 일본 국내에서 벌이는 투쟁의 사상적 토대가 되면서, 동아시아 민중연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이러한 다카자네 야스노리의 실천과 사상에 대해서 서승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은 다음과 말한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이영훈을 비롯한 ‘친일파’처럼 오늘날에도 일제와 한 몸이 되어 일제의 부흥과 영광을 꿈꾸는 자들이 행세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다카자네 선생은 참으로 일본과 동아시아의 연대, 평화의 미래를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제시하고 매진한 분으로서 한일 갈등이 거론되는 지금이야말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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