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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걸프 아랍국과 이란, 갈등의 역사적 기원
[글로컬 오디세이] 걸프 아랍국과 이란, 갈등의 역사적 기원
  • 정진한
  • 승인 2021.12.01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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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중동 해양사를 통해 들여다보는 걸프 아랍국과 이란이 갈등을 빚는 이유
중동과 지중해 일부 지도. 반도 남해안은 밥 알-만답 해협에서부터 동쪽으로 소말리아 반도를 따라 아덴만이 펼쳐진다.  출처=위키피디아(편집=윤정민 기자)

중동의 구조는 육지보다는 바다와 강을 기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일례로 같은 아라비아 반도 내에 있지만, 반도 서부에 위치한 예멘은 동부의 걸프국가들과의 정체성이나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반면, 홍해 건너의 이집트,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등과의 동질성은 여러 눈에 띈다. 중동의 경계 역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홍해를 건너 아프리카의 이집트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펼쳐진다.

한반도와 반대로 아라비아 반도는 동해안이 얕은 반면 서해안이 깊다. 반도 서편의 홍해는 최대 수심이 3,000m 이상 깊고 폭이 335km까지 넓어지는 거친 바다이다. 홍해는 나일강, 지중해, 인도양을 통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가 만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기에 고대에는 유향이나 몰약과 같은 향료들의 운송이 활발했고, 지금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배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이 지역은 대체로 나일강이나 지중해 패자들의 영향권 아래 놓였다. 반도 서해안에서는 동서 교류보다는 산맥과 사막 사이 오아시스를 남북으로 잇는 좁고 긴 길을 따라 주로 물산과 사람들이 오갔다. 이슬람 역시 이곳에서 발흥해서는 먼저 남북으로 전파되었다.

반도의 남해안은 동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남해안의 서부는 에리트레아와 불과 26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밥 알-만답 해협에서부터 동쪽으로 소말리아 반도를 따라 아덴만이 펼쳐진다. 동아프리카와 매우 인접한 예멘은 과거 악숨 왕국이나 쉬바 왕국과 같은 국가들이 양 지역을 정복하려 들기도 했으며,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계통의 원주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비중이 매우 높다. 반면 남해안의 동부는 인도양으로 바로 나아갈 수 있는 아라비아 해다. 이 바다는 인도와 아프리카로의 접근성이 매우 좋아 한때 오만이 아프리카 동해안을 섭렵하고, 하드라미들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이슬람화하는 것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만인들에게서 우리는 아프리카 대신 남아시아의 언어적·유전적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반도의 동쪽에 자리한 페르시아만에는 얕은 바닷속을 잠수해 진주조개를 채취하는 산업이 발달했고, 지금은 넓게 펼쳐진 대륙붕에서 풍부한 석유와 가스 자원을 채굴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은 북쪽으로 ‘아랍의 강’인 샤트 알 아랍을 통해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카룬강 등의 큰 강과 연결되어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일대를 운항하는 배들이 들락거렸다. 대략 이 수로들의 동쪽 사막을 경계로 중동의 역사는 동서로 양분되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사라진 후 고대 중동 세계의 양대 패자는 로마와 페르시아였다. 지중해를 호수로 만든 로마와 그 후손 동로마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경계로 페르시아의 왕조들을 밀어내고 또 밀려 나갔다. 이후 남쪽에서 세력이 왕성한 이슬람 제국은 두 거인을 몰아내고 이 일대를 전체를 장악했지만, 다시 이를 경계로 나뉘었다. 이슬람의 세 번째 칼리파 오스만은 시리아의 총독 무아위야를 후원한 반면, 오스만의 사후 칼리파로 등극한 알리는 이라크 일대에 강력한 지지 세력을 갖추었다. 알리 세력을 제거한 무아위야는 로마의 지중해권 주요 도시였던 다마스쿠스에 수도를 두고 우마위야조를 창건했다. 90년 후 동쪽에서 몰려와 우마위야조를 멸한 압바스조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구도(舊都) 크테시폰 인근에 수도 바그다드를 세우고 앞선 제국과 차별화를 추진했다.

순니의 맹주 압바스조 칼리파의 장악력이 약해지면서 지중해권에는 쉬아파로서 칼리파를 자처하는 파티마 조가 등장했다. 파티마 조는 튀니지의 초기 수도에서 카이로 인근으로 천도 후 지중해 일대를 쉬아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이 동 순니-서 쉬아 구도는 몽골의 침공을 전후로 완전히 뒤집어진다. 쉬아인 파티마 조는 순니인 아유브조에 멸망한 반면, 순니인 압바스조를 집어 삼킨 몽골 군주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순니 아유브 조와 대립하는 쉬아 군주가 되었다. 즉 동쪽은 쉬아, 서쪽은 순니 세계가 된 것이다. 맘루크, 오스만 투르크, 사파비, 카자르 조 등을 거치며 이 동-쉬아, 서-순니 구도는 점차 안정되었다.

오늘날 페르시아 만 일대의 아랍국가들의 아랍어에는 페르시아어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고, 이곳에는 무수한 이란인과 이란 자금들이 흘러 다니며, 국가별로 10%에서 절반 이상에 육박하는 쉬아 무슬림들이 정주해있다. 오늘날 걸프 왕정국가들이 이란에 극심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단순히 이란의 영토와 인구가 크고 무력이 강해서도 아니고, 수십 년 전까지 페르시아 만 일대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무력 점령을 시도해서만도 아니다. 어느덧 석유를 통해 세계에서 내놓으라는 부국이 되었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척박한 농토 위에서 빈약한 인구부양력을 가졌던 시절 동부 아라비아인들에게 이웃 페르시아는 너무도 거대한 제국이었다. 그 기억은 이들의 뇌리에 이미 뿌리 깊게 각인되었기에, 이란이 강성해지는 것은 언제고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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