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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위기의 이공계 대학원
진단: 위기의 이공계 대학원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5.10.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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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위기’가 말뿐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메이저급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학문 이외의 고민이 넘쳐나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해외 대학으로 나가거나, 고된 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을 고민하다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고 취업을 하는 분위기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인데. 학문적 관심사가 아닌 연구실적을 위해 전공을 바꾸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어느 공학 전공의 경우 이학계열 전공이 네이처誌 게재가 쉽다는 이유로 공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는 메이저급 이공계 대학원간의 ‘먹이사슬’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일단 먹이사슬이 조금 복잡하다. 인문·사회 계열의 대학원들처럼 미국 대학이 최정점에, 지방대가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지만 한국 이공계를 이끌어 가는 대학원들 사이에서는 조금 더 복잡하다. 예컨대, 지방대→연세대·한양대→포스텍·한국과학기술원→미국대학, 지방대→연세대·한양대→미국대학, 또는 지방대→서울대→미국대학 순으로 학생들이 연쇄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풍경은 BK사업이 본교 출신 대학원생들의 비율을 제한하면서 더욱 빈번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사실 연구 환경의 차이가 ‘학생 밀어내기’의 주 요인이다. 예를 들어 포스텍의 경우 대학원생들에게 풀스칼러십에 가까운 장학금 지원을 하고, 미혼자는 물론 기혼자에게까지 아파트를 제공하는 등 미국 대학 못지않은 지원을 하면서 국내 대학의 우수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을 하지 못하는 국내 대학에서는 미국 대학은 물론 포스텍에게 까지 본교 출신 학생들을 ‘빼앗기고’, 그 자리를 BK사업을 통해 들어온 타 대학 학생들로 채우고 있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한국과학기술원·포스텍, 연세대·한양대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

하지만 사정이 나은 대학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공계 교수들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수학능력 저하에 고심하고 있다. 이용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물리학과)는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세계 유수의 연구진 보충이나 인프라 구축 등 교육여건은 좋아지지만 학생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전기공학을 공부하려면 물리와 화학을 기본적으로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중 2개의 과목을 선택하는 7차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물리와 화학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러한 상황은 대학원으로 이어져 대학원 수업수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같은 대학원 내에서 우수학생이 이동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대학의 경우에는 이중고를 겪는다. 박홍이 연세대 교수(물리학과)는 “영문 아티클을 제대로 읽지 못해 한국어로 된 교재를 사는 학생들이 있는 상황에서 수업이 제대로 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물론 이런 학생들을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는 게 사실. 현동석 한양대 교수(전기제어생체공학부)는 “학부 3, 4학년 수업내용을 대학원 1학기에 가르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고, 결국 부족한 점은 학생 스스로 메워 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력없는’ 학생들을 아예 선발하지 않을 수도 없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가는 대학원생을 거의 선발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희 교수는 “대학원 입학과정을 강화화면 우수한 학생을 뽑겠지만 연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의 고민은 더욱 깊다. 풀 스칼러십은 고사하고 진득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만이라도 마련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각 학과마다 전담 행정직원 한 명 없어 잡다한 행정업무나 대학종합평가 실무에 동원되는 현실에서는 늘 해외 유학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나마 연구환경이 좋다는 연세대 공과대학의 경우에도 단과대학 사무실에만 행정직원이 8명이 있을 뿐 각 학과마다 배치돼 있지 않고, 한양대 공과대학의 경우에는 행정직원이 아닌 학생 행정조교가 2~3명이 있을 뿐이다.

또 연구의 주축인 박사과정생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석사과정생들이 대신하며 연구를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공부에 몰두 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김호성 중앙대 교수(전자전기공학부)는 “미국의 경우 박사과정이 연구의 중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석사과정생들이 학부수준만큼 강도 높은 교육을 받는데 비해, 우리나라 석사과정생들은 행정업무와 프로젝트를 맡으며 학부만도 못한 교육을 받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런 점에서 1996년도부터 도입된 PBS(Projet Based System)는 현재 이공계 대학원 교육 문제의 한 축이다. 능력만 있다면 풍부한 자금을 기반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겠지만, 프로젝트를 확보하기 위한 과도한 경쟁으로 대학원 교육을 등한시 할 수 있는 요소가 된 것. 도입 10년째를 맞는 PBS의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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