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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 중국 노동자 18명, 왜 자살을 시도했나
폭스콘 중국 노동자 18명, 왜 자살을 시도했나
  • 이영석
  • 승인 2021.11.2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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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아이폰을 위해 죽다』 제니 챈 외 2인 지음 | 정규식 외 3인 옮김 | 나름북스 | 410쪽

아웃소싱 물결을 타고 번창한 서구 거대기업들
자살금지서약 등 규율을 이행해야 하는 노동자

이 책은 타이완의 초국적기업 폭스콘의 노동실태에 관한 탐사보고서다. 폭스콘은 중국 여러 곳에 대규모 공장단지를 운영한다. 선전 등 대도시 공장단지에서 100만 명 이상의 농민공 노동자들이 전자제품 조립공정에 종사한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노동자 자살로 서방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폭스콘은 개혁개방 이후 현대 중국과 세계경제, 중국과 미국 간의 관계를 압축해 보여주는 지형도다.

타이완 사업가 궈타이밍이 설립한 이 회사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당국의 경제정책에 부응해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주로 애플사의 아웃소싱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자산업의 여러 분야에 생산기지를 확충해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했다. 

폭스콘은 디지털혁명 이후 서구 거대기업들이 주도한 아웃소싱 물결을 타고 번창했다. 그동안 애플사 아이폰 대다수는 폭스콘의 중국 내 조립공장에서 생산됐다. 아이폰 판매가에서 애플사의 수익이 절대적이며 중국 내 조립공장 노동자 임금으로 돌아가는 몫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애플사의 경이적인 자본축적이 가능했다. 

 

애플 자본축적에 희생한 중국 노동자들

폭스콘 공장단지의 농민공 노동자는 거대중국이 직면한 사회문제의 본질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자본축적 구조의 상호의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대국굴기’에 서구세계가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지난 40년간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과 서구 소비사회의 번영을 동반했던 것이다.

2010년까지 폭스콘 중국 내 공장단지에서 18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한다. 이 책은 자살시도 끝에 하반신이 마비된 텐위라는 농촌 출신의 소녀와 인터뷰로 시작한다. 텐위는 선전의 조립공장에 취업했지만, 회사 담당자의 업무 소홀로 급여통장을 개설할 근거서류가 작성되지 않아 입사 후에도 급여를 받지 못했다. 회사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수중의 돈이 떨어진 그녀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자살시도였다. 

중국 선전의 생산 현장. 사진=위키백과

텐위의 사례를 읽으면서 나는 젊은 시절 연구했던 19세기초 영국 면공장 노동문제가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장시간노동과 가혹한 작업환경이 두 세기의 시차를 넘어 비슷하게 보였던 것이다. 궈타이밍 어록의 핵심은 ‘규율의 이행’이다. 노동자는 그 규율에  복종해야 한다. 농민공 노동자들의 투신자살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를 막기 위해 폭스콘은 숙소에 자살방지 그물망을 설치하거나 신입사원에게 자살금지서약서 서명을 받는 소극적인 대책으로 일관했다. 

폭스콘 작업장의 병영화와 군사화는 중국 감시체제의 기본 성격에 부합하며, 그 때문에 현대 중국사회와 충돌 위험도 없다. 폭스콘은 개혁개방을 통한 시장경제와 공산당 지배체제의 공고화라는 중국의 두 가지 지상목표가 중첩된 상황의 형성물이다. 그러나 앞으로 미-중 패권경쟁과 중국-타이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새로운 국제정치 속에서 폭스콘이 어떻게 적응해나갈 것인가. 이는 한 기업의 차원을 넘어서 21세기 세계경제의 향방을 묻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미시적인 탐사보고서는 중국 사회의 이면에서 초국적기업들이 지배하는 세계경제의 축적구조, 심지어 오늘날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국제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안들을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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