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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료상황에 맞는 황금열쇠는 없다
모든 의료상황에 맞는 황금열쇠는 없다
  • 유무수
  • 승인 2021.11.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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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모두를 위한 윤리』 김준혁 지음 | 휴머니스트 | 396쪽

암투병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 친구에게
징역 구형한 법정은 정말 최선을 다했나

저자는 「진주만」(2001) 영화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분류했던 간호사의 장면에 다양한 관점을 적용시켜 논의를 전개했다. ‘사회적 공헌도’에 따라 자원을 나눠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의하면 계급이나 전투의 공적에 따라 치료 순서를 정할 것이며, 벤담의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논리를 따른다면 치료 후 가장 오래 살거나 다시 전투 수행할 사람이 우선치료대상이며, 롤스의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가장 심하게 부상을 입은 자부터 치료해야 한다. 어느 방식이 옳은가? 

의료현장에서 ‘최선의 윤리적인 선택’은 무엇인가? 의료윤리학자이며 연세대 교수(치과대학)인 김준혁 저자는 중대한 결정일수록 결정의 순간, “아마도 머뭇거릴 것”이라고 말한다. 암투병하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살해했다가 징역 2년 6개월 선고받았다는 뉴스(「“죽여달라” 암투병 동거인 부탁받고 살해한 40대 실형」, <YTN>, 2021년 10월 22일자 참조)가 있었다. 이 판결은 정의로운가? 환자도 친구도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으나 법정의 심판에 의하면 고통 밖에 없는 환자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지 말았어야 한다.

이 책은 안락사, 임신중절, 치매, 감염병, 유전자조작, 건강세, 개인정보 보호, 환자-의료인 관계 등 의료 현장의 쟁점을 다뤘다. 이 책의 결론은 “모든 상황에 다 들어맞는 황금 열쇠는 없다”이다.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며 “해석과 상상의 능력을 풍부하게” 하는 서사윤리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리타 샤론은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서사적 작업은 일종의 캠프파이어이며,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접촉을 통해 공감과 연대를 심화하며 결정을 다듬어간다고 제안했다. 

손녀는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한지 날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확인했다. “할머니! 나 누구게?/몰러, 기억이 안나, 정희여?/이럴 때는 많이 슬프다.” 손녀의 이름은 정희가 아니었다. 이러한 서사에는 공감과 연대, 널리 권장할 수 있는 윤리가 깃들어 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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