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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청공: 남송대 조리서
산가청공: 남송대 조리서
  • 김재호
  • 승인 2021.11.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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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가지가 넘는 조리법, 남송대를 대표하는 식보
『산가청공: 남송대 조리서』 | (남송) 임홍 지음 | 정세진 역주 | 학고방 | 244쪽

‘식보’는 ‘음식의 족보’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해당 음식의 계통과 역사를 아우르는 것은 물론, 다양한 식재료 및 조리법까지 기술되어 있다. 『산가청공』은 남송대를 대표하는 식보로서 100여 가지가 넘는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리서로서의 특징과 가치

첫째, 이 책에는 다양한 식재료가 소개되어 있다. 쌀, 밀가루, 미나리, 거여목, 가지, 홰나무 이파리, 무, 순무, 토란, 부추, 구기자, 연근, 귤 이파리, 목부용, 죽순, 닭, 쏘가리, 토끼, 게, 원앙, 우미리牛尾狸, 검정깨, 밤, 감람, 콩, 팥, 녹두 분피, 콩나물, 두부, 산초, 후추, 생강, 파, 꿀, 회향, 소회향, 홍국, 차, 술, 지황, 감초, 마, 둥굴레, 비자 열매, 시트론, 오렌지, 도꼬마리, 칠면조 등이 그것이다. 임홍은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던[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林逋의 후손이라고 자부했는데, 이 때문인지 매화와 관련된 음식의 조리법이 유독 강조되어 있다.

둘째, 이 책에 실려 있는 조리법은 구체적인 경우가 많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비슷한 시대에 나온 어떤 식보보다 『산가청공』에는 상세한 조리법이 실려 있다고 여겨질 뿐만 아니라 조리 관련 용어들도 다양하게 실려 있다. 예를 들어 재료들을 먼저 반 조리한 후 밥 위에 해당 재료를 뚜껑처럼 덮어 뜸 들이는 조리법인 암반盦飯, 불 위에서 건조시키는 배건焙乾, 바싹 졸이는 전오煎熬, 양념장 등에 담그는 것을 의미하는 잠蘸, 액체를 가만히 두어서 분말 부분과 맑은 액체 부분을 분리시키는 징澄, 국물에 가루나 곡식을 넣어 끓이는 삼糝, 짐승의 털 등을 뽑아 손질하기 위하여 뜨거운 물에 담그는 것을 의미하는 심燖, 불에 지지는 박煿, 굽는 것을 의미하는 람爁 등이 있다. 

셋째, 실제로 해당 음식을 먹을 사람에게 대접하는 것을 상정하고 작성한 기록이다. 『산가청공』을 상세히 읽으면 다른 식보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손님, 즉 ‘식사를 할 사람’과 제공[공供]하는 사람, 즉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산가에서 어느 시점과 상황에서 해당 음식을 제공하면 최고의 맛과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실제 경험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음식에 관한 지식을 나열하느라 그 음식이 실제로 음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여타 기록들과는 달리 『산가청공』은 소박한 식사를 실제로 제공할 때의 정보를 담고 있기에 조리서로서의 가치가 더욱 높다고 생각한다.

넷째, 임홍은 식사와 양생을 연결 짓고 있다. 식보는 대체로 양생을 위한다는 효용론적 명분을 가지고 저술된 경우가 많다. 『산가청공』에도 해당 음식과 건강 사이의 관계를 밝혀둔 부분이 많다. 의학적 진료의 혜택을 누리기 힘들었던 시기에 식사를 통해 미연에 질병을 예방하고 이미 고질이 된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산가청공』에는 이런 음식의 약효를 설명할 때 『본초』나 『해상집험방』과 같은 의서를 근거자료로 기록한 경우가 많다. 다만, 어느 종류의 『본초』를 참고했는지 출처를 찾기 어려운 경우, 『본초』의 문장을 요약해 대강의 내용만 인용한 경우, 해당 식재료와 관계없는 『본초』의 다른 항목을 잘못 끌어온 경우 등, 부정확한 인용이 많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다섯째, 이 책에는 상당히 다양한 채식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북송 시대 이후 선종의 영향으로 채식을 선호하는 식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 책에는 각종 채소 요리는 물론이고 대체육으로 만든 음식의 조리법도 소개되어 있어 당시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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