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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가] 신종표절 급증에 고민 많은 미국대학
[해외대학가] 신종표절 급증에 고민 많은 미국대학
  • 박재선 / 미주통신원
  • 승인 2001.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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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3 10:28:37
박재선 / 미주통신원

인터넷과 함께 도래한 정보화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신종 학문 범죄’, 표절 문제가 미국 대학가에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간단히 ‘오려두기’와 ‘복사하기’ 버튼을 눌러 손쉽게 보고서를 불법 복제하는 학생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1백22명의 학생들이 인터넷에 게재된 자료를 무단으로 표절해 물리학 개론 중간고사 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를 받아 퇴교를 당하거나 이미 수여한 학위마저 박탈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 사건은 중간고사 보고서 성적에 불만을 품은 한 학생이 담당교수인 루이스 블룸필드 교수에게 다른 학생들의 보고서를 베낀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표면에 떠오르게 됐다. 마침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블룸필드 교수인 터라, 표절 보고서를 가려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내기에 이르렀다. 이 프로그램은 6개 이상의 연속된 동일 단어로 이루어진 문구를 검색하는 것으로, 보고서의 분량과 상관없이 손쉽게 표절 여부를 가려낼 수 있게 돼 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이메일로 제출된 보고서 1천5백개를 검색한 결과, 1백22개의 보고서가 유사한 문구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이 중 60개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개단어 동일하면 표절로 인식

블룸필드 교수의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인터넷을 통한 학생들의 표절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 애용하는 표절행위는 책이나 다른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화된 이후 학생들은 여러 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을 무단으로 복사하거나 아예 보고서 전체를 다운로드 받아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인터넷에서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것만큼 쉬워졌다는 얘기다. 각종 모범 보고서들을 확보한 가운데, 손쉽게 보고서 내용을 ‘퍼갈 수 있도록’ 한 인터넷 사이트도 덩달아 활기를 띠고 있다. schoolsucks.com과 같은 사이트는 2만5천여개의 주제를 담은 보고서를 검색, 자료를 제공하는데 한 페이지 당 8달러, 보고서를 대리 작성해 주는데 한 페이지 당 35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이 같은 신종 표절은 비단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게만 국한되고 있지 않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솔루션 매뉴얼스’는 수학과 화학 전공 학생들에게 손쉽게 ‘학문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부 교과서 제작사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각종 문제들을 기입하면 자동으로 정답을 제시함으로써 시험을 출제한 교수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한 신종 표절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그려내고 있다. 학생들이 간단히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남의 보고서를 자신의 연구 결과물인양 그럴 듯하게 꾸밀 수 있듯이, 그것을 적발해 내는 일 또한 컴퓨터를 통해 어렵지 않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인터넷 표절이 늘어나는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검색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교수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버클리대의 알렉스 에이켄 교수가 지난 97년 고안해 낸 표절 보고서 적발 프로그램은 교수들 사이에 무료로 보급돼 애용되고 있다. ‘MOSS’라고 불리우는 이 프로그램 역시 블름필드 교수가 개발해 낸 것과 비슷하게, 동일한 단어들이 연속해서 이루어진 문구들을 적발해 낼 수 있도록 고안돼 있다. 온라인 상으로 시험을 치를 때 이용되는 ‘Securexam’이라는 프로그램은, 시험을 치르는 동안 학생들이 인터넷이나 다른 파일을 열어 정답을 ‘퍼올 수’ 없도록 고안해낸 오퍼레이팅 시스템이다.
최근에는 보고서 내용상의 일부 핵심 단어뿐만 아니라 문서 전체를 검색해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최신 검색용 소프트웨어도 개발되는 등 표절 방지용 도구도 갈수록 지능화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내 10여개 주정부도 온라인 보고서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승인, 학계와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학생들의 표절행위를 막기 위한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학생들 ‘범죄’인식 결여 심각

그러나 일부에서는 학생들의 표절행위 급증 원인이 인터넷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룻거스 대학의 도널드 맥카베 교수는 최근 실시된 연구의 결과를 인용, 인터넷 때문에 학생들의 표절행위가 급증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맥카베 교수는 지난 3월 미 전역의 25개 고등학교에서 4천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인터넷이나 서적 등의 서면 자료를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 결과 30%의 학생들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답변했으며, 48%는 인터넷과 서적 등의 서면자료 모두에서 몇 개의 문장을 발췌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16%는 인터넷이 아니라 서면 자료에서만 표절을 했다고 답했으며, 6%만이 서면 자료가 아니라 인터넷에서만 표절을 했다고 답했다. 맥카베 교수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또 다른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중 46%만이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터넷에서 몇 개의 문장을 발췌하는 것을 부정행위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76%만이 보고서 전체를 인터넷이나 보고서 대리 작성 업체의 자료에서 상당 부분을 발췌하는 것을 부정행위로 간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듀크 대학에서 ‘인터넷과 윤리’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웬디 로빈슨 교수는 학생들의 표절을 검색하는 프로그램 개발보다는 학생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쉬워진 표절의 유혹으로부터 학생들을 완전히 해방시키지 못할 바에야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처럼 남의 지적 재산을 훔치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깊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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