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2:35 (토)
매년 학과 바꿔 … ‘기초’ 버리고 ‘응용’에 경도
매년 학과 바꿔 … ‘기초’ 버리고 ‘응용’에 경도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5.09.05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점 : 대학구조개혁 1년 … 임시방편책에 몸살 앓는 대학들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가 작년 8월 31일 ‘대학구조개혁방안시안’을 발표한 지 1년이 흘렀다. ‘강도 높은 구조개혁’이라는 말이 대학을 겨냥했을 때, 교수들은 ‘대증요법’이 아니라 대학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을 기대했다. 교육부는 발표 당시부터 “대학이 구조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과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면서 “재정지원시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 방식을 적용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립대만이 신경쇠약 직전의 병자처럼 비명을 지를 뿐이었고, 지방사립대에서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재정지원사업과는 상관없는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특성화’보다는 ‘학생모집’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광경을 연출하면서 말이다. 지방대의 한 교수는 “정말 그렇게 어렵냐, 라고 교육부 관계자나 수도권 대학 교수들이 물을 때 화가 나기도 하고, 머리도 뜨거워진다”라며 지방대의 숨막힐 듯한 어려움을 말하고자 했다. ‘학생 미충원’을 머리로만 이해하면 결코 지방대의 현실을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는 지방대 위기와 괴리되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교육부 정책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기도 했다.

대구 소재 ㄷ대학에서 2003년에 철학을 가르치던 김 교수와 조 교수는 2004년에는 ‘문화학과’에서, 올해부터는 ‘관광레저학부’에서 중국문화와 인도문화 강좌를 맡고 있다.

충남 ㄱ대의 이 교수와 라 교수는 학과 개편으로 문학영상정보학부의 미디어문예창작학 전공이 없어지자, 올해는 공연미디어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중이다.

지방대들의 학과 개편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정도가 지나쳐 불과 3~4년 전의 일이라도 대학의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학과 현황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대학들이 명칭을 바꾼 후 학과 성격과 교육과정까지 바꾸었기 때문. 얼마 전까지는 경찰행정경영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쳤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튜어디스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식이다.

화학·물리학전공,  응용·실용 중심 학과로
그렇다고 날이 갈수록 대학이 ‘특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구조개혁이 임시방편적이어서 모호해질 때가 더 많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제주 소재 모 대학의 한 교수는 “인문학부의 어학 전공 교수들이 호텔정보학과로 소속이 바뀌는 것처럼, ‘특성화’의 다른 말은 ‘인기학과 중심으로의 재편’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학생이 오지 않으면 ‘특성화’고 뭐고 다 소용이 없고 무조건 학생들만 모집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구상한 학과 구조조정의 방향에 따라 로드맵을 마련하고 시뮬레이션도 해본 다음 구조조정을 해도, 당장 신입생 유치에 실패하면 이듬 해에 또 학과들을 뒤섞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더구나 사립대들은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방안에 대한 기대를 접은지 오래였다. 대학 관계자들은 지난 7월 2백80여 지방 사립대가 대학구조개혁재정지원사업에 대거 불참한 것은 재정지원사업이 지방대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원감축을 하더라도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단기간에 교원확보율을 높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지원액수도 적어 지방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들은 교육부의 정책과 별개로 폐과·신설 등 학과를 바꾸고, 교수들을 타 학과로 옮기고 있는 것.

우려하던 바대로, 학생들이 기피하는 기초과학 계열과 취업률이 낮은 인문·어문 계열의 학과들이 폐과되거나 실용적인 학과로 전환되는 수난을 겪는 중이었다.

전주대의 과학기술학부의 화학전공, 생명과학전공 등은 올해 바이오벤처학부의 발효·기능성식품전공, 허브·생물소재산업전공으로, 배재대의 화학과·유전공학과는 분자과학부의 향장화학전공, 응용화학전공으로 바뀌었다. 호서대의 물리학전공은 응용학문 성격이 강한 광전자디스플레이전공으로 전환됐으며, 우석대의 물리학과는 폐과가 돼 소속 교수들은 반도체공학 분야나 게임학과 등으로 소속을 옮겼다. 하물며 고려대조차 물리학과를 ‘반도체물리학과’로 명칭을 바꾼 상태다.

목원대는 생명과학부의 ‘생물학전공·미생물학전공’을 2005년에는 생명산업학부의 ‘생명과학전공·바이오산업학전공’으로 전환했다가, 내년부터는 바이오건강학부의 ‘생명과학전공, 건강관리학전공’으로 바꿀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3년째 계속 바꾸고 있는 것이다. 호남대의 역사문화학과와 경남대의 응용수학은 올해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우석대 관계자는 “기초과학 분야에 학생을 모집하는 것이 힘들어서 폐과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면서 “올해도 학생 모집율이 낮아서 2006년도 입시를 위해 한방화장품미용과, 대체요법학과, 동물건강관리학과, 재활복지학과, 정보보안과, 스포츠학과를 신설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학의 경우는 올해에도 여러 개 학부를 폐지하면서 디스플레이학과, 관광상품개발학과, 국제레저컨벤션학과, 실버복지학과, 소방안전학과 등을 신설한 바 있다.

교수들, 학과개편시 소속·전공 바꾸기도
배재대의 한 교수는 “학과가 실용적으로 바뀌어 이론담당 교수들이 당혹스러워하기도 하고, 후학들을 길러내지 못한다는 점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는데, 마냥 독야청청할 수도 없고 가만히 있다가는 자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학과가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해도 실용·응용으로의 경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했다. 지방대의 기초학문 연구 토대가 사라져 수도권의 대학만이 맡게 되면 학문의 동종교배 뿐 아니라, 연구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지속적으로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을 바랄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영엽 전주대 교수(화학)는 “학생이 안 오는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지만, 기초학문을 토대로 실용·응용학문이 발전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라면서 “실용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최근 대학가의 추세는 위험스럽게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구·교육’이 아니라 ‘학생모집’이 대학 운영의 최대 관심사이자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구조조정의 기준인 것은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도,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방안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도 일부 찾을 수 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bukhak 2005-09-07 01:36:46
「명」「1」기울어 넘어짐. 또는 기울여 넘어뜨림. 「2」기울여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음. 「3」온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거나 열중함. ¶신식 문물에 대한 경도. §「4」=경균도름〔1〕. 「5」=경균도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