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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머물러 산다는 것
함께 머물러 산다는 것
  • 류연미
  • 승인 2021.11.17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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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재작년 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한국 청년의 주거와 지역 문제에 대해 다루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머릿속을 바로 스치고 간 것은 은수와 재이(이하 모두 가명)의 집이었다.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친구 사이였다. 비슷한 연령대와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가끔씩 만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떨거나 훠궈를 먹거나 공연을 보러 가거나 했다. 그 외에는 학교도, 직장도, 성격도, 자란 동네도 무엇 하나 비슷한 점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이 함께 살아볼 계획이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조금 놀라버릴 수밖에 없었다.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관계의 측면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다. 물론 치솟는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셰어하우스에 살거나, 단기적으로 룸메이트를 구해 함께 사는 공동주거의 사례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다만 30대 비혼 여성인 은수와 재이의 경우에는 이것이 단순한 임시방편이 아니라는 점이 달랐다.

몇 년 전 인류학자 송제숙은 저서 『혼자 살아가기』에서 독립을 위해 홀로 분투하는 비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처럼 결혼을 통한 정상가족을 이루거나 열악한 주거 조건을 감당하며 혼자 살아남는 것이 지금까지 청년들에게 주어진 선택지였다면, 은수와 재이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함께 머물러 살기’를 실천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의 선택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선택이 이들을 어디로 데려가게 될지 보고 싶어서 서울 청년 여성들의 소규모 공동주거전략을 연구주제로 삼았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놀랍게도 은수와 재이의 2인 가구는 또 다른 트위터 친구였던 승효의 합류로 3인 가구가 되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주거형태, 이러한 주거전략을 선택하기까지의 주거사, 주거공간에 부여하는 의미, 앞으로의 주거계획 등 이들이 지금까지 경유해 온 ‘집’의 흔적을 살폈다. 이들의 집에 방문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공동주거 방식을 관찰하고, 이들이 찍어 둔 집의 사진들을 보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지방에서 올라와 거의 매년 사는 곳과 함께 사는 사람이 달라져야 했던 은수의 삶도, 가족의 지원 부재로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제주에서 숙식 제공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재이의 삶도, 다른 수많은 비혼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의 압력 때문에 독립할 수밖에 없었던 승효의 삶도, 모두 어떠한 측면에서는 이들이 한 명의 청년 여성으로서 통과했던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었다. 개인의 서사가 보편의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기록과 해석의 결과물을 최근 단행본 『문턱의 청년들: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에 실었다.

원고를 처음 읽고 연구책임자 선생님은 묘사가 슬프다는 평을 남겨주셨지만, 연구를 진행하는 2년 동안 나는 이것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글은 폭등하는 전월세가와 삶의 다차원적 불안정성 속에서 어떻게든 내 한 몸 뉘일 곳을 찾으려 애쓰는 청년들의 주거 생존기로 읽힐지 모른다. 그러나 연구자로서의 나와, 또 친구로서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수와 재이와 승효의 지속가능한 공동주거라는 선택이 보여주었던 반짝거림에 대해 말하고 싶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궁여지책이기만도, 청년의 모든 주거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대안이지도 않은, 그렇지만 각자가 바라는 집과 가족의 형태를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온 덕분에 이들이 함께 도출해낼 수 있었던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말이다. 결국은 행위자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세계를 아주 약간 바꾸어내는 것이고, 또 결국은 그러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세계에 다다르는 것이 우리가 꿈꾸어야 할 방향일 테니까. 

 

류연미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청년들의 노동, 주거, 정치 등 삶의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실천들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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