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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주름·상처가 길어올린 환희
예술, 주름·상처가 길어올린 환희
  • 장동석
  • 승인 2021.11.19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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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 276쪽

마음에 잔잔히 파문을 일으키는 노래의 아름다움
자본에 대한 저항으로 무료예술인 벽화를 그리다

어떤 예술이든, 거저 얻어지는 법은 없다. 예술이 곧 삶인 그 사람도, 그이의 예술을 알아보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거저 얻었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다. 나희덕 시인은 그 노력들을 일러 ‘주름”’라고 명명한다. 올해 봄 출간된 에세이 『예술의 주름들』에서 시인은 예술가와 그것을 알아보려고 애쓰는 이들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는가.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이 책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예술하는 삶에서 패인 주름에 관한 이야기다. 

프랑스 누벨바그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아네스 바르다의 주름은 ‘벽’에서 비롯되었다. 벽은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시야가 차단되거나 전망을 잃어버린 현상”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벽을 허물어야만 소통이, 혹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벽의 개념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도 있다. 바르다의 영화에는 “벽이나 회화, 사진, 사물 등을 롱테이크로 잡는 숏”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개의 벽은 “세월의 흔적과 낙서와 벽화” 등으로 채워져 있다. 바르다가 생각하기에 많은 벽화들은 “화랑과 자본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녔다. 그런즉 누구나 볼 수 있는 무료 예술인 벽화는 “공동체적 우정과 창조의 산물”이다. 바르다에게 있어 벽은, 그의 예술을 알아보는 우리에게 벽은, 더 이상 “우리를 가두는 장애물이 아니라 즐거운 몽상의 통로”다.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 짧은 생을 바친 화가도 있다. 20세기 초, 남성 화가들도 누드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던 시대에 “여성 화가로서 누드 자화상을 그린” 최초의 화가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반라의 자화상에서 화가는 “불룩한 배에 만삭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실제로 임신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가난과 싸우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포부로 충만하게 차오른 모습”을 화가는 그렇게 묘사했다. 마치 “이게 나야”라고 말하는 듯 담대했지만, 화가는 끝내 제 뜻대로 살지 못했다. 독립하고자 했지만 “출산과 경제적 조건 때문에 남편과 재결합”해야 했고, 딸 출산 직후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며 세상을 떠났다. 평소 절친했던 릴케는 “당신은 당신을 다 써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삶은 유한하지만, 때론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에는 영원히 살아 있을 수도 있다. 한설희의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마』는 작가가 67세 되던 2010년부터 2년 간 노모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시인은 한 작가의 『엄마, 사라지지마』를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와 마주 놓고 비교한다. “사라진 엄마의 부재를 처절하게 살아내는” 스스로의 일상을 기록했던 롤랑 바르트. 하지만 두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한설희 작가는 “딸이 엄마의 나날을 능동적으로 기록”하는 주체였다면, 롤랑 바르트는 “아들이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수동적 애도”의 주체라는 사실이다. 아들과 딸, 혹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엄마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두 작가의 애씀만큼은, 우리 모두의 것임을 시인은 넌지시 전한다. 

여러 예술가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음유시인’이라 불렸던, 지금은 우리 모두가 결국 가야할 곳에 먼저 가 있는 가수 조동진이다. 시인은 그의 노래가 “‘들려온다’기보다는 ‘불어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노래가 일으키는 소리와 진동이 귀뿐 아니라 “몸 전체로 스며들어와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리라. 시인의 말이 아름답다. “그는 청경(聽經)하듯 대기의 기운을 온몸으로 듣고, 그 미묘한 음영을 음악의 형태로 잘 살려내는 음유시인이다.” 이들 외에도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 영화감독 짐 자무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뉴욕 창고극장에서 40년 넘게 실험적 공연을 해온 우스터 그룹 등, 이름만으로도 예술의 아름다움을 경험케 하는 이들이 시인의 밝은 눈에 포착되었다. 시인은 발견의 기쁨과 그들의 미덕을 공교(工巧)한 언어로 풀어내며, 예술의 주름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환희를 노래한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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