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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능력주의’…성실하기만 하면 호구로 전락
뒤틀린 ‘능력주의’…성실하기만 하면 호구로 전락
  • 유무수
  • 승인 2021.11.1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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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능력주의와 페미니즘』 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엮음 | 사월의책 | 284쪽 · 『의무란 무엇인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176쪽

상류층 꼼수가 상식으로 옹호되는 문화
그렇다면 능력주의는 얍삽한 기회주의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이 심화될 때 회의에 봉착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사회연구소의 공식저널 <베스텐트(WestEnd)> 한국판 8호는 ‘능력주의와 페미니즘’을 다뤘다, 이 책 1부 ‘사회적 계층 상승과 몰락’에서 파트리크 자흐베 등은 독일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현재는 독일 사회의 사회적 투명성-과 함께 능력주의적 사회질서의 이상-을 명백히 의심토록 하는 사회 불평등의 형태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국가에서 “상위 10%가 전체 재산의 58%, 하위 50%는 0.1%만을 소유”하는 현실은 다수가 ‘이 결과는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연구에 의하면 독일은 전후 세대보다 젊은 출생 집단에서 사회적 출신과 직업 계급과의 관계가 점점 긴밀해지고 있으며, 능력의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사회구조가 불투명해지는 추세 속에서 귀속적 특징의 역할을 중시하는 주관적 인식이 증가했다. 

한국은 어떤가? 서울대의 미성년 공저자 논문 64건 가운데 22건이 연구부정 판정을 받았다(<교수신문> 10월 18일자 참조). 지식의 최고 능력자 집단으로 소문난 서울대 교수의 수준이 이러하다. 반칙과 특권으로 자녀에게 보태준 스펙이 입시서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데 쏠쏠하게 쓰이면 능력을 발휘한 것일까? 스티븐 J. 맥나미는 『능력주의는 허구다』에서 “우리는 전반적으로 진실성이 상향적인 사회적 이동성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추측한다”라고 탄식했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자들에게 행운의 요소를 인정하고 겸손할 것을 촉구했다. 운의 요소만으로도 교만은 자제해야 하건만 새치기나 약탈에 오염된 배경을 숨기고 능력주의를 떠벌릴 때 그 실체는 무엇인가?

『의무란 무엇인가』에서 독일 철학자 프레히트는 신자유주의의 이기적 능력주의를 비판했다. 공정성과 신뢰라는 최소한의 가치 기준이 없는 개인의 이익 추구와 시장경제가 다수의 행복을 가져오리라는 이념은 이데올로기적 사기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국가가 수많은 사람을 죽게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직무유기이므로 국가의 통제는 필요했다. 개인의 자유가 곧 타인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작용을 하는 상황에서 마스크를 거부하고 국가의 통제를 파시즘의 징후라고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슬픈 코미디다. 공동체의 연대 의식을 훼손할 뿐이기 때문이다. 

프레히트는 시민의식과 공동체 정신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사회적 의무 복무’를 제안했다. 기초연금으로 1200유로(약 164만 원)를 지급하면서, 고교졸업 후 1년, 은퇴 후 1년으로 총 2년의 사회봉사를 의무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프레히트는 이 제안이 불합리하게 여겨진다면 더 훌륭한 제안을 내놓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불량정치』(노정태 지음, 인물과사상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조국사태는 한국 사회의 상층 엘리트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일반적 관행에 비추어볼 때 대개 상식 범위 안에 있는 일이었다.” 이런 식의 혼미한 주장에 대해 상당수의 무리가 응원했다. ‘진실, 공정, 합리, 신뢰성 등’을 외면한 반칙과 특권의 능력주의가 권세를 부릴수록 ‘사회적 공공선’의 기강은 더욱 훼손되고, 열린사회는 파괴된다. 담백하게 성실한 사람들은 호구신세로 떠밀린다. 떳떳하지 못한 상류층의 꼼수가 상식으로 옹호되는 문화에서 ‘능력주의’는 ‘얍삽한 기회주의’에 불과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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