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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중국 신장에서 부는 바람
[글로컬 오디세이] 중국 신장에서 부는 바람
  • 박현도
  • 승인 2021.11.1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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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터키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이 지난 6월 2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주터키 중국 대사관 밖에서 시위하는 장면이다. 시위대는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인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AP

“중국까지 가서라도 지식을 구하라(Utlub al-‘ilm wa law fi’s Sin, 学问虽远在中国 亦当求之).”

중국과 관련한 말 중 무슬림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표현이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한 말로 알려져 왔지만, 사실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언행록에는 이 말 대신 “지식을 구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라는 말이 나오지만, 무슬림들은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 머나먼 나라 중국까지 가라는 말을 관용구처럼 오늘날 여전히 자주 쓰고 있다. 구당서(舊唐書)에 따르면 651년에 신흥 무슬림 세계의 지도자 칼리파 우스만(Uthman)이 당에 사신을 보내면서 무슬림 세계와 중국이 관계를 맺었다(永徽二年八月乙丑大食國始遺使朝貢). 무슬림의 중국 진출은 오늘날 중국 시안에서 이란 호라산 지역으로 이어지는 육로 비단길과 더불어, 바그다드, 페르시아만, 인도양, 중국 동남해안 도시로 이어지는 해로를 따라 이루어졌다.

오늘날 중국 내 무슬림 인구는 약 2천500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1.8%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무슬림을 총 10개 민족으로 구분하는데, 후이족(回族)이 약 1천50만 명, 위구르족이 약 1천만 명으로 다수를 이루고, 그 뒤를 약 160만 명의 카자흐족이 따르고 있다. 무슬림은 닝샤(宁夏), 신장(新疆), 칭하이(青海) 등 서북부지역에 밀집 거주하고 있다. 윈난(云南)과 동남해안 역시 오랜 무슬림 거주 지역이다. 한자로 굳어진 이슬람 관련 용어를 보면, 중국 이슬람은 아랍보다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았다.

그런데,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하면서 92km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긴장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와한(Wakhan) 골짜기가 무슬림들이 분리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중국의 협력을 얻고자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2002년 신장 위구르 독립을 지향하는 ‘동투르케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테러단체로 지정했다가 지난해 10월 이 조직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테러단체 명단에서 지웠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활짝 열린 와한 골짜기에서 신장 위구르 독립운동이 전개되길 바라는 노림수가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중국의 신경이 곤두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 재집권 한 달 전인 7월 28일 톈진에서 탈레반 대표를 만나 신장 위구르 독립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을 거점으로 삼아 중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반대급부는 물론 중국의 경제 지원이다.

신장 위구르 지역은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영국의 도움으로 청나라가 1884년 점령한 곳으로, 잠시 독립(1933~1934년, 1944~1949년)했다가 1949년 중국 치하로 다시 들어갔고, 1955년 자치구가 되었다. 신장은 중국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고(한반도의 8배), 석유와 가스 매장량의 30%, 석탄 매장량의 40%를 차지하는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을 중앙아시아로 이어주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은 신장의 롭누르(Lop Nur)에서 1964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46번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신장의 위구르족은 중국 한족과 언어와 종교, 문화가 다른 튀르크계 무슬림이다. 1998년부터 중국 공산당 정부는 작전명 엄타(嚴打)를 내걸고 분리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체포, 구금, 처형하며 위구르 분리 독립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했다. 더 나아가 위구르인의 수적 우위를 인위적으로 바꾸고자 한족 이주 정책을 폈다. 식민정책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은 이러한 정책 시행 결과 수도 우룸치는 한족의 도시가 되었고, 위구르인은 한족에 밀려 2등 시민으로 떨어졌다. 이슬람 신앙도 중국 정부의 억압 정책을 피할 수 없었다. 18세가 되기 전에는 종교 교육이나 활동을 할 수 없고, 성인이 되어도 거주지를 벗어난 모스크에 가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다. 중국 정부의 말에 순응하지 않거나, 중국 정부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중국 정부가 ‘직업교육훈련센터(职业技能教育培训中心)’라고 부르지만, 국제사회는 수용소라고 비난하는 곳에서 중국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중국 정부는 위구르 무슬림을 중국 문화에 동화시키고자 위구르인의 언어를 중국어로 바꾸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신장은 한문 그대로 ‘새로운 영토’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은 1884년 청나라가 원래 중국에 속했던 땅을 다시 돌려받았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영토라고 썼다고 강조한다. 물론 위구르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위구르 무슬림 문제에 정작 무슬림 국가들은 침묵하고 비무슬림 국가들이 중국을 비난하는 초현실적 상황에서 국익의 민낯을 본다. 신장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이자 중동산업협력포럼 사무국장이며 주요 저작으로 『신학의 식탁』(공저, 들녘, 2019),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균열과 유라시아 지역의 대응』(공저, 민속원,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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