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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화제] 한국여성문학학회 주최 ‘여성의 눈으로 정전 다시 읽기'
[학술화제] 한국여성문학학회 주최 ‘여성의 눈으로 정전 다시 읽기'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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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3 10:25:38
한국문학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한국여성문학학회(회장 이덕화 평택대 교수)의 여섯 번째 학술대회가 이달 2일 숙명여대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대회는 국문학사에서 부동의 정전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는 ‘스타급’ 작가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는 여성주의 문학비평의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하여 서정주, 김수영, 이상, 염상섭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분석한 네 편의 작가론이 발표되었는데, 서정주論 과 염상섭論이 작가에 대한 비판과 해체를 중시했다면, 김수영論과 이상論은 작가의 문학사적 지위를 견고히 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남성중심주의에 물든 대가들
특히 첫 번째 발표자인 김신정 연세대 강사의 서정주論은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는 서정주 재평가 작업의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적 순간의 체험과 영원성의 성’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발표자는 영원과 합일이라는 지상명제가 ‘여성’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안일하게 구현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비판을 여성성의 대상화와 남성성의 자아도취 등의 계기를 부각시켜 꼼꼼하게 논증한다. 서정주의 시가 현대시의 정전으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서 금기와 일탈의 예술화 경향이 파생되었다는 지적이나 “시와 여성의 탈역사화와 탈윤리화는 정전으로서의 서정주 문학이 남긴 간과할 수 없는 폐해”라는 결론도 흥미로우며, 특히 “여성이 사회적·역사적 매개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으로 형상화되면서 사실상 배제”되는 과정을 다루는 이미지 비평을 현대시라는 장르와 현대시사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가는 논리는 ‘정전 다시 읽기’라는 이번 대회 기획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정전에 대한 여성주의적 반성이 문학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학적 가치가 정치적 입장에 우선하는 여성주의 문학계의 전반적인 경향은 조영복 광운대 교수의 김수영論에서 두드러지는데, 그의 ‘김수영 시의 반여성주의, 혹은 반반의 미학’은 ‘김수영 신화’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을 반박하며 김수영의 문학적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함으로써 정전 논의에 대한 국문학 내부의 자기검열 기제를 암시한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김수영을 논의할 필요성은 존재하지만, 김수영 신화의 전복이 김수영과 김수영 시의 본질을 훼손하는 차원에서 시도된다면 그 또한 허구적 신화를 만드는 성채”라는 것이다. 물론 발표자가 문학성을 핑계로 작품의 반동성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김수영의 위악성이 반여성주의를 강화하는 것 같지만, 시적 수사를 이해하면 반남성주의 텍스트로 드러난다는 주장을 통해서 이번 대회의 기조에 무리 없이 봉합된다.

‘과도한 서구이론 의존’ 비판도
세 번째 발표자 나은진 이화여대 강사의 이상論 역시 이상의 작품이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도 긍정적으로 독해될 수 있으며, 따라서 정전의 자리에 있을 만 하다는 주장이다. ‘이상이 본 여성성의 이해 - 양파 껍질 벗기기’라는 제목의 발표문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이상 소설을 다시 본 연구는 의외로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성역할 전도와 이에 대한 작가의 양가적 태도를 ‘양성구유의 가능성’으로 평가한다.
마지막 발표자인 박정애 서울대 강사의 염상섭論은 가장 공격적인 비평작업을 수행하는 듯하다. 발표문 ‘근대적 주체의 시선에 포착된 타자들 - 염상섭의 ‘만세전’의 경우’에서 발표자는 “만세전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데에 이견을 보이는 기존 연구는 없었다”고 단정하며 그러한 평단의 ‘리얼리즘 정전 숭배’가 남성중심주의에 공모하고 있다는 전면적인 비판을 가한다. 식민지 지식인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정신’을 관음증의 시선과 연결시키는 이 논의는 근대문학 전반에 대한 재평가 작업의 맹아를 엿보게 하지만, 근대적 인식론과 이식된 계몽 프로젝트의 난제를 자연과 여성의 고통에 대한 애도라는 에코페미니즘적 문제틀로 해소한다는 점에서 서구 이론의 전폭적 수용이라는 페미니즘 비평 일반의 문제점을 공유한다.
‘여성의 눈으로 정전 다시 읽기’가 ‘서구 페미니즘 담론으로 정전 다시 읽기’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문학사를 다시 읽는 작업이 영미 비평계에서 진행돼온 정전해체 작업의 답습이 아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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