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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박사와 아이스크림
학이사: 박사와 아이스크림
  • 최광수 경상대
  • 승인 2005.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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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수 / 경상대학교 ~ 환경공학

  세상에서는 박사라고 하면 모든 궁금함에 쉽게 답을 해줄 수 있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요즘 들어 넓을 박 博자 대신에 엷을 박 薄자를 쓰는 게 박사라는 얘기가 박사들 모임에서 나올 정도로 시중의 인식과 박사 학위자들의 인식에는 큰 차이 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자괴감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대한 두려움과 현대 학문의 방식과 내용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환경”이란 용어가 이제 더 이상 전공용어가 아닌 일반용어가 되어버린 지금, 환경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은데, 현대 환경문제의 근본원인과 해결,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지속가능한 “생존”이라는 큰 틀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정말 얇고 제한적이어서 명쾌한 답을 기다리며 내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무식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전공지식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학문의 방법을 몸으로 일깨워주신 스승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시대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오셨을 따름이다. 평생 식당일을 하시면서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가 기초질서를 지키려는 시민의식이 부족하다고 하여 미워할 수 없듯이, 그분들의 덕택으로 오늘의 내가 있고, 지금의 문제는 “내”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최근 환경운동단체와 함께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과 삶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학문은 머리 속에만, 책 속에만 있지 않다. 실천이 함께 해야 한다. 특히 환경은 단순하게 기술개발만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이 변해야 한다. 나는 내 욕구대로 많이 쓰고 버리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부터 변해야 진정한 환경인이다.’ 학생들에게 지행합일을 이야기 하면서 단순한 기능인, 전문인을 뛰어넘어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선구자가 되어줄 것을 당부하는 입장에 서고 보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완벽한 사람이라야만 선생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내가 먹고 쓰고 소비하는 것으로 인해 환경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이 순간 내가 욕구에 끌려 소비하는지 아니면 필요에 의해 소비하는지를 아는 것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아닐까.

  일전에 학생들과 함께 태안반도 파도리 마을로 생태수련을 다녀왔다. 지난봄부터 “에코캠퍼스”라는 주제로 일군의 수도권 지역 대학생들과 경상대학교 학생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생태친화형 캠퍼스 만들기 환경실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핵심일꾼들과 함께 사업논의 겸 생태체험을 다녀온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수련의 주제를 “쓰레기 없는 모꼬지”로 잡아서 2박 3일의 수련기간 동안 음식물쓰레기를 포함해서 쓰레기가 전혀 나오지 않도록 하였다. 과자류는 일절 배제하고 장을 볼 때도 플라스틱 통과 자루를 준비하였고, 조리할 때는 오이 꼭지까지 모두 썰어 넣도록 하였다. 그 지독함에 나도 신나게 동참하였다.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은 마지막 날 내가 일으키고 말았다. 더운 날씨에 학생들이 목말라 하겠다는 생각에 아이스크림을 한 아름 사다가 학생들에게 하나씩 안긴 것이다. 인솔교수로서의 체면은 말도 못하게 구겨졌지만, 현재의 내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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