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7:35 (목)
해외학술동향: DRUID에서 기술경제학의 내일을 본다
해외학술동향: DRUID에서 기술경제학의 내일을 본다
  • 김태억 리즈대 경제학
  • 승인 2005.08.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억 / 리즈대 경제학 박사

슘페터 이후 본격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선 기술경제학은 그 시간적 역사로만 본다면 거의 10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기술적 변화가 생산성, 비용 등에 미치는 효과에만 주목했던 마르크스주의-신고전파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기술의 내적 발전동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마르크스는 물론 케인즈 역시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경제학의 지배적 패러다임, 즉 일반균형 이론적 접근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지속적인 변화의 원천, 기술변화와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변화는 본질적으로 비균형적, 균형파괴적 과정인 반면에 경제학의 주류 패러다임은 모든 경제적 활동을 균형으로의 수렴과정으로 파악한다. 일반균형이론 틀 내에서 기술변화가 외생변수로 취급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결과이자 피할 수 없는 결론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슘페터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변화와 혁신, 다양성의 지속적인 생성, 그리고 다양성간의 경쟁결과로 나타나는 차별적인 보상시스템이라고 파악했다. 그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주장한 이유가 이것이며, 40년대 이후 독점 자본주의의 시대를 거치면서 점점 퇴조해가는 기업가정신을 우려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슘페터는 혁신과 발명을 과감하게 분리하고, 기술혁신으로부터 발생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야말로 경제발전의 원동력, 요즘말로 하자면 가치발생과 성장동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성장(Economic growth)과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을 구분하면서, 경제발전을 일으키는 원동력, 즉 구조변동이야말로 혁신활동을 자극하는 원인이자 기업가 정신을 유인하는 변화의 근원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슘페터 역시 기술변화의 경로와 방식, 기술혁신의 종류, 패턴과 구조형성의 발생론적 과정에 대해서는 다분히 신비화된 개념, 즉 초인적 특성을 가진 기업가 정신을 내세움으로써 설명을 회피했다. 이러한 사정은 지금도 변하지 않아서 기업가 정신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그 표현형태인 창업 및 파산율, 시장진입 및 퇴출, 근본혁신의 발생빈도를 시점과 영역, 기업특성에 따라 상대비교 하는데 집중되어 있을 뿐 기업가 정신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아주 소수의 오스트리안 경제학자들 외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넬슨(Nelson)과 윈터(Winter)가 신고전파의 최적화 의사결정을 대신하는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진화주의 생물학의 적응적 진화 개념에 연결함으로써 루틴, 암묵지, 느슨한 의사결정 등 기업의 기술혁신 행태에 대한 독자적인 미시적 기초를 세운게 70년대라고 한다면, 80년대에는 도시(Dosi), 프리만(Freeman), 페레즈(Perez)가 기술 패러다임과 NIS론이라는 거시적 토대를, 그리고 레빈탈(Levinthal), 코헨(Cohen)은 혁신 흡수역량과 기술 지식의 형성과 전파에 관한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했다. 90년대 들어서는 말레르바(Malerba)와 메카페(Metcalfe)를 거치면서 진화주의 기술경제학의 핵심적인 연구 분석틀(Research framework)이 확립되었는데, 도시가 주창했던 기술 패러다임(Technological paradigm)과 코헨-레빈탈의 지식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모델로부터 도출 가능한, 네 가지 구성요소, 즉 기술기회(Technological opportunity), 전유가능성(Appropriability), 수익성(Profitability), 그리고 지식기반(Knowledge base)을 통해 기술변화의 과정, 방향을 설명하는 학적인 체계, 즉 기술경제학이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첫째, 과학지식과 기술지식간에 시스템적 차이가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으며, 둘째, 과학이론의 발전이 기술발전의 변화와 방향을 결정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고, 셋째, 자기재생산적인 패러다임 동학 내부에서 발생하는 클러스터링 패턴의 창조적 변화에 대해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난점을 가지고 있다. 넷째,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패러다임 전환의 내생적 논리는 진화주의 기술경제학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적 공백으로 남아 있다. 다섯째, 최근 속속 보고되고 있는 부문간 기술융합 및 기술궤적의 전위에 관한 경험적 연구결과는 진화주의 기술변화 모델이 상정하고 있는 안정적인 부문별 기술진화 패턴과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여섯째, 진화주의 기술경제학은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이를 추동하는 해당 사회경제에서의 가치구조 변동이 기술패러다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패러다임 전환기 기업들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가지는 복잡하고 중요한 역할을 분석하는 데 한계를 갖는다.

 

지난 6월 27-29일에 열렸던 DRUID 제1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는 “산업과 혁신의 동학: 조직, 네트워크, 그리고 시스템(Dynamics of industry and innovation: organization, networks and systems)"라는 주제를 가지고 약 100여개의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최근 중요한 경향으로 대두되고 있는 Open innovation, 차세대 기술패러다임인 BT, NT에 관련된 경험적 연구, 그리고 NIS론에 대한 이론적 쟁점 확인을 제외한다면 대개의 발표자들은 진화주의 경제학의 핵심개념을 보완하거나 비판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가 기존의 그것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을 찾는다면 기업가정신, 전략경영, 그리고 필요(Needs)-시장구조의 변화가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들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학술대회 개막 기조발제를 한 메카페 역시 자가조직화 진화과정(Self organizing evolutionary process) 내에서 나타나는 내생적 전환(Endogenous transformation)의 논리를 구성함에 있어서 슘페터적 의미의 기업가정신을 강조했으며, 이 주제야말로 향후 진화주의 경제학의 일보전진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기업가 정신과 창업(Entrepreneurship/Start up)”, “새로운 지식의 출현(Emergence of new knowledge)”, 기술혁신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진입양상(Entry Modes)”, 그리고 기술체제의 전환과정을 분석한 "기술체제(Technological regime)", 클러스터 형성이 집합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논증한 “Cluster", 그리고 지식연결망의 선택성을 강조했던 "지식연결망(Knowledge links)" 세션들은 특히 주목될만하다. 이외에도 기술적 기회(Technological opportunities), 상호 의존적 혁신경로, 창조적 산업부문의 등장, 산업구조의 변화를 동반하는 혁신패턴에 관한 논문들 역시 크게 보면 메카페의 기조발제에서 제기한 논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으며, 전략적 기술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지식기반 기업이론 역시 기업가 정신에 대한 미시이론적 근거 탐색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DRUID 국제학술대회는 진화주의 기술경제학의 이론적 토대와 관련, 흥미있는 새로운 쟁점들을 매년 제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DRUID 학술대회는 지리적 변방인 덴마크에서 개최되고 있지만,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기술경제학의 이론적 첨단, 향후 이론변화의 방향을 진단할 수 있을 만큼 그 권위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신진 연구자들의 경우는 이미 확립되어 있는 진화주의 기술경제학의 근본개념들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과 문제제기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DRUID 학술대회가 기술경제학계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차지한 것 역시 학계의 거물들이 모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신진 연구자들의 도발적 문제제기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의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역시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Schumpeterian Entrepreneurship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다. 2000년대 기술경제학계의 “떠오르는 별”로 인정받고 있는 메카페조차 최근 몇 년 동안 기업가정신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적 파괴를 통한 패러다임 전환의 내생성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는 시장의 역동성, 통계적 분석에 기반한 군집동학(Population dynamics)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미필적 특성(Emergent property)을 구조변동의 논리로 제시함으로서 창조적 파괴를 통한 내생적 구조전환의 메커니즘, 이것을 주도하는 기업가정신의 경제학적 분석에는 실패했다. 메카페의 논리를 전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그의 주장은 사후적 묘사에 불과할 뿐이지, 그 내적 과정의 규칙성을 밝힘으로써 사전적 예측의 기반을 제시할 수 있는 이론적 설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생적 구조변동을 만들어내는 기업가정신과 관련, 슘페터는 그 자신이 충분하게 발전시키지는 않았으나,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그의 책,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제기한 저량균형과 구별되는 유량균형 개념이 그것이다.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슘페터의 유량균형(Flow equilibrium) 개념은 왈라스적인 일반균형을 자동적으로 달성하려는 연속적인 변화의 과정을 지칭함에 반해 저량균형(Stock equilibrium)의 경우는 자기 구조화의 경향을 지칭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내생적 구조변동과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유량균형이라는 지속적인 변화의 흐름이 어떻게 저량균형 혹은 자기구조화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이러한 구조형성의 메커니즘이 언제, 어떤 조건 하에서 창조적 파괴를 저량균형의 유일한 해법으로 강제하는지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메카페를 비롯한 몇몇 기술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러한 방향의 연구가 산발적으로 시도되기는 했으나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는 포괄적인 이론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 간단명료한 모델을 통해 논증하기는 어렵지만, 국지적 수렴(Local attraction)과 분기(Bifurcation)를 만들어내는 국지동학(Localized dynamics), 국지화된 동학시스템간의 불균형을 확대 심화하는 네트워크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 to network),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조건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불확실성 하에서의 전략적 의사결정이야말로 슘페터적 문제설정, 진화주의 기술경제학의 오래된 난점을 해결할 수 있는 3대 핵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