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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논쟁을 읽고: 한 늙은 비평가에게 보내는 편지
김윤식 논쟁을 읽고: 한 늙은 비평가에게 보내는 편지
  • 손종업 선문대
  • 승인 2005.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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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서 시작을 만난 피로한 나그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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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황송하게도, 헤겔이 괴테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저의 정신적 발전의 경과를 바라본다면 곳곳에 귀하가 관련되어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어서, 저는 저 자신을 귀하의 자식 중의 한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저의 속마음은 추상 작용에 대한 버팀목을 굳세게 하는 양분을 귀하로부터 얻어서 귀하의 작품을 등대처럼 믿고 방향을 정해왔습니다”라는. 여전히 선생께서는 아득한 곳에 놓여있는 등대와 같은지라, 선생의 문학을 대할 때 오로지 한없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힐 뿐이라는 점을 먼저 밝히지 않고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겠습니다. 
  교수신문을 통해 선생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저는 그것을 흥미롭게 읽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구경꾼처럼 멋진 게 있을까요? 이에 비하자면 논쟁이란 그 수렁 속에 나를 내던지고도 파편적이며 편파적인 것일 따름입니다. 누구도 절대진리에 이를 수 없는지라,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자신 안의 이성과 술책들을 모두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나 치기와는 다르지요. 하물며 저널리스트도 아닌 연구자라면 논쟁을 바라보면서 ‘음모론’을 이야기하는 일은 없어야지요. 오히려 논쟁은 그 불완전한 대화나 몸짓, 뜻하지 않은 어조 속에 예기치 않았던 어떤 신성한 것들의 현현을 풍요롭게 지니는 것이니까요.
  고백하건대, 1980년대의 어두운 대학시절을 저는 '황홀경의 사상'과 더불어 보냈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선생에 대한 저의 글쓰기는 다른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것은 제 자신의 게으른 책읽기와 빈곤한 글쓰기를 아프게 추궁하는 일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저는 선생의 연구실 제자 중 하나가 쓴 반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그 심정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는 교교한 담론의 연기를 피웠고 우월감 가득한 어줍잖은 신비주의 속에 선생을 감추려고 했다는 점에서 어설픈 ‘교도’처럼 보였습니다. 이는 평생을 근대성이라는 화두와 겨뤄야 했던 선생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사실을 눈앞에 두고 선생께서 껴안고자 했던 한없는 낭만성과 치열한 이성의 대립이란, 그가 펼쳐놓은 신비주의적 초월적 담론들보다 훨씬 더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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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비하자면, 아마도 선생께서는 당신의 비평이 당대 비평담론의 극점에 놓여있지 못했다는 한 소장평론가의 지적을 더 뼈아프게 쓰다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천성(현장성)의 결여라니.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더욱 뼈아픈 것은 기실 이 모든 비판이 선생 자신의 삶과 글쓰기 속에서 이미 오랜 전쟁을 거친 것들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굴곡 많은 삶과 그 모든 책읽기들을 통해서 선생께서는 저 선연한 회색의 세계를 선택했던 것이지요. 선생의 회고를 따르자면, ‘험한 시대를 살아온 후진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선생께 주어진 유일한 숨쉬기 방식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쪽은 틀렸다, 가 아니라 차라리 운명과도 같았던 것, 비유컨대 주사위가 던져지듯이, 발길이 거기로 옮겨졌던 것일 뿐이지요. 비슷한 이유로 송희복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그의 글들은 근대문학 연구자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선생께 대한 찬사들의 다소 어설픈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보’는 무엇이고 ‘인간문화재’는 또 무엇인지. 마찬가지로 그의 비판은 그저 변죽을 때리는 것입니다. ‘토대환원주의’는 그것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드러내지 못할 때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선생의 글들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비판은 오로지 ‘자기’를 사적인 개인으로 읽어내는 그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 것뿐입니다. 선생께서 그토록 공을 들인 평전작업을 예로 들자면, 그것은 그들의 삶을 향하는 것이자 동시에 표현을 갈망하는 선생님의 삶 자체였습니다. 이론가로서의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것은 소위 ‘죽은 자들에게 자기의 육체를 빌려주는 행위’와 같은 것이니까. 바보도 기억의 제1형식을 갖는 바, 이론가라면 언제나 기억의 제2형식이라고 선생께서 부르는 본래적 기억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완결된 글쓰기에 대한 그의 요구도 선생께는 아득히 가닿지 못하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선생께 글이란 영혼과 형식, 이론과 실천, 저자와 독자들이 만나 교향하는 것이지 한낱 문법 따위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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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의 비평행위에는 늘 문학사가가 더불어 눈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운명을 마주할 때 현장과 강단, 문학과 예술, 또는 민예조차가 분간될 수 없을 테니까요. 선생의 비평이 자주 ‘길 떠남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의 비평은 텍스트를 읽어준다기보다는 늘 그것을 빌어 선생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 표현에의 욕구는 활활 타올랐지요. 소설가가 아닌 비평가에게 이 표현에의 갈망은 삶의 구체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유의 절대성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께서는 헤겔의 도상에 기대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헤겔에 따르면 의식이 발전하여 자기의식으로 되고 마침내 정신의 여로에 들면 그 악전고투 끝에 절대정신으로 발전하는 것. 의식의 최종단계. 곧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이 아니겠는가. 헤겔에 따르면 주관적·감각적인 것에 기대는 예술이야말로 표상(기도)으로 하는 종교보다 저질에 속하는 것. 개념으로 하는 철학이야말로 절대정신 중에서도 최고라는 것.”('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 211) 일본의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혼령을 빌긴 했으나, 이는 명백히 선생의 관심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곧장 철학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도 자명한 이치겠지요. 헤겔의 진술이 그렇게 단순화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오로지 철학하기로서의 문학을 염두에 두었을 따름인 셈이고 그러한 생각은 작품 너머/ 혹은 시원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 자체를 향해 선생을 이끌어 갑니다.  “머리에 서릿발이 짙어갈수록 나는 예술보다 작품보다 인간이 한층 매력적임을 깨달았다. 남들이 일찍부터 아는 이 사실을 어째서 나는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을까. 사상이나 작품이란 정신의 장식물이 아닐 것인가. 사상이나 작품이란 언어로 형식에 맞게 잘 다듬은 것. 거기엔 ‘형식’이라는 제약과의 타협, 곧 속임수가 끼어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불순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인공물의 일종이다. 진짜배기일 수 없다. 진짜배기란 무엇이뇨. 인간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 그 자체란 또 무엇이뇨. 간단 분명한 해답이 나온다. 뉘 집 자식이며 어디서 태어나 어느 곳에서 살았고,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셨고 어느 들판의 곡식을 먹었는가.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했으며 어떻게 죽었는가. 이것만큼 절실히 다가오는 것이 따로 있겠는가.”('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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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에 서릿발이 짙어가는 순간에 깨달았다 하나, 실상 선생의 비평은 언제나 작품 자체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진짜배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선생은 또 여전히 환각에 사로잡히곤 하지요. ‘헛것’과 ‘진짜배기’ 사이에서 선생은 율리시즈 모양 모험을 거듭합니다. 이는 정직함이 가져다 준 형벌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헛것’과 ‘진짜배기’ 사이의 이 변증법적 운동의 핵심에는 흔히 선생께서 ‘토대환원주의’ 혹은 ‘리얼리즘’이라고 부른 것과는 다른 작동방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의 비평은 본원적인 그 무엇으로서 그 자체로는 검증되기 어려운 무한 변증법적 논리(김승환 선생의 놀라운 명명에 의하면 ‘변증적 생명체’라 불리는 그 기계의 궁극적인 판관은 바로 ‘자기자신’입니다.)에 의해 개별작품 속으로 하방되는 것입니다. 대화는 언제나 나와 작품 사이에, 서구텍스트 혹은 그것의 아서구적(亞西歐的) 모방체로서 근대 일본의 것이 참조되는 수준에서 이루어질 뿐, 동시대와의 불협화음 속에서 치열한 쟁투를 통해 생성하지는 않습니다. ‘근대문학-되기’ 속에 포함된 잡스러움은 무시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선생의 비평적 틀 내부에서 선생의 비평을 비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되, 그 바깥에서라면 그것은 조금 쉽게 독단론 ․ 본원적인 것들의 영향을 포함하는 표절 ․ 관념의 형태를 띤 현실순응주의로 비판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선생께서 추구하신 바, 절대 정신은 언제나 세부적인 차이들을 넘어서 아득한 높이에 놓여진 전체성을 향하는 것이지 않던가요?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선생께서 늘 강조하셨듯이 헤겔은 괴테에 미달하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젊음이란 온갖 이잡적인 것의 흡혈을 통해 이룩되는 것이자, 이잡성 자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즈음 들어 선생의 비평문에서 자주 거론되는 ‘피로’의 정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절대정신 또는 법화경을 들여다 놓으면 해소될 그 무엇이었던가요? 등신대의 책들이, 어느 순간에 선생께 말을 걸어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오래 전에 길을 떠났지만 그 길은 시작이 끝이며 끝이 시작인 길이었다고. 길가의 표석은 희미했는데 그러자 나그네는 피로에 휩싸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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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여전히 선생께서는 스스로의 비평행위에 대해서, 그 선연한 회색을 오롯이 대하면서, 전체성(또는 가치중립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그렇게 믿었던 그것들이 삶 속에서 공허해지는 순간들에 더 마음 아프지 않을까?  실천이란 게 애초에 일종 무지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걸음이 그렇듯이 스스로 초래한 어설픈 불균형만이 앞으로의 한 발짝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선생께서 선택했던 그 전체성의 길은  소위 지배이데올로기는 아니었으나, ‘찻잔 속의 폭풍’ 모양 현실권력에 속수무책이었을 테니까요. 감히 아무렇게나 선생의 비평을 남근적이라 할 수는 없으나, 선생의 글쓰기가 구축한 철인왕국은 어느 영미이론가가  (M)other 로 표기한 여성적인 것, 타자적인 것, 소수적인 것들이 쉽게 출입할 수 없는 곳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갈매나무 ©

그리하여 자신의 비평이 어떤 거대한 관념에 대한 흉내내기의 일종, 환각으로 여겨지는 어느 어름에, 선생께서는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 앞에서 속절없는 순간에 직면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저 젊고 편파적인 젊은이의 실천이 부러우면서도 여전히 추사의 세한도처럼, 또는 백석의 시구에 나오는 곧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오연하게 몸을 추스르고 있는 것은 아니신지. 1980년대의 어느 날 한 어린 제자의 죽음을 두고 또 다른 제자와 편지를 주고받을 때 선생께서 가슴 아프게 바라보아야 했던 그 두 갈래길 위에서 말입니다.
  선생께서 이제까지 견지해 온 그 냉철한 자의식이야말로 저로 하여금 외람되게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한 늙은 비평가’라 부르게 했음을 밝히면서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린 나그네시여, 부디 강녕하시기를.

손종업/ 선문대 국문학,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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