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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파워 워킹', 혹은 이데올로기의 이상한 귀환
문화비평_'파워 워킹', 혹은 이데올로기의 이상한 귀환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5.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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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이데올로기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무날 저녁 7시, 도시의 공원이나 천변로에서 줄지어 '파워 워킹(power walking)'을 하고 있는 이른바 건강족들을 만나보시라. 다이어트 효과는 기본이고, 근육과 면역력 강화, 지구력 향상, 골밀도의 상승, 감기나 폐렴, 심지어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으며, 그리고 아, (드디어) 남성의 경우 회음부의 근육이 강화됨으로써 정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公園, 혹은 空圓이라는 도시화의 알리바이, 그 귀여운 시뮬라크르로 찾아가 보시라. 사라졌던 갖은 이데올로기들이, 웅성거리는 세속의 건강수칙과 더불어 이 파워 워킹족들의 한겹 피부 위에 내려앉아 있는 것을 끔찍/깜찍하게 보게 될 것이니.

한 때 이데올로기들은 우리들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래서 판단력의 헌데를 타고 기생할 뿐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精神一到何事不成 앞에서는 대체로 무력한 것이었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다가, 마르크스 씨와 만하임 씨 등을 거치면서 그것이 제도와 체계 속으로, 마침내 공기 속으로 퍼져나간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그 다음으로, 지배와 동의가 先판단적 합체를 이루게 된 자본주의적 시민사회 속에서 이데올로기는 '긍정적 문화' 그 자체가 되어 존재와 기능의 야누스화 현상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다가 '그 자신의 꼬리를 보지 못하는 머리의 끄덕임'이 되거나, 온몸으로 습합시킨 사회적 성향과 기질과 역할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최후의 소식으로, 그것이 마침내 물질과 무의식을 점거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는 전언조차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그것이 물질과 무의식의 아래에까지 낮아지는 사이, 나는 그만 우물 속처럼 종적을 놓친 채 가물가물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기술과 이론이 깊어지듯이 우리 삶의 일상이 따라서 깊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토록 깊어졌던 그것이 이미 제도와 자본이 겹치는 도처의 얕은 곳에서 이상한 모습을 띤 채 꾸역꾸역 귀환하고 있는 것이었다.

졸저 ‘보행’(2001)의 풍경이 내비치듯, 내 산행, 혹은 보행의 역사 역시 꽤 오랜 것이고, 원고지 1장마다 족히 1km는 걸었을 법하지만, 내 눈에 잡힌 파워 워킹이라는 이 전투적 건강 보행법은 아무래도 시대의 역류(逆運)가 만든 보행의 파행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보행은 단순히 건강법의 요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인의 기능주의적 약호화 현상 속에서 1차원적 사유의 단면을 읽어내던 마르쿠제의 비판처럼, 건강 보신주의 속에서 약호화, 기능화된 보행의 1차원화가 곧 '파워 워킹'이라는 우스개일 것이다. 步法에 영험한 이치를 새겨넣는 도가의 양생술이나 기공학 따위는 모른 체하더라도, 길 속의 걷기, 혹은 걷기 속의 길이라는 실천과 그 메타포의 심원함은 동양적 사유 체계의 전모를 아우를만하다. 나 역시 공부길의 굴곡을 보행이라는 은유와 환유 속에서 새김질하곤 했지만, 보행은 동서양의 여러 사상가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즐긴 글감일 뿐 아니라, 특히 루소나 니체, 벤야민이나 들뢰즈 등은 이와 관련해서 빼어난 사유의 결실을 남겼다.

가령, 癌은 계통수상 면역체계가 복잡한 척추동물에게서만 생긴다. 인문학적으로 간략히 풀이하면, 암은 곧 자기동일성의 과잉 현상에 다름 아닌 셈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는 나다'라는 고착, 혹은 강화의 생리학적 번역이자 變域인 셈이다. 보행은 곧 이 '자기동일성의 강화와 과잉'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강화-걷기(reinforced walking)', 즉 파워 워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거꾸로 보행은 虛疎이며, 不在의 효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좋은 말(馬)은 되레 잘 서고 좋은 말(言)은 침묵에 능하다는 베이컨의 지론처럼, 좋은 걷기란 약하거나 오히려 '파워'가 없는 것이다. '도시화가 사이비 농촌을 만든다'(기 드보르)고 했지만, 도시의 空圓은 바야흐로 파워 워킹이라는 사이비 보행을 생산하고 있다.  

김영민 / 한일장신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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