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작스런 국립대 법인화 추진으로 각 대학마다 혼선을 빚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백종국 경상대 기획처장 ©
“질문하신 대로 현재 각 국립대들은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국립대법인화’ 논의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교육부의 일개 정책이나 법안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고등교육정책이라는 맥락에서 가닥을 잡아 나가야한다.
이미 수많은 정책 자료에서 지적하였듯이, 한국은 인적자원을 개발하여 미래를 개척해야할 국가이다.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일은 교육의 몫이고 특히 수준 높은 고등교육인력의 양성은 매우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고등교육분야 현황으로 보면 양적 팽창과 질적 저하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 프로그램은 큰 의의가 있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선택과 집중’을 모토로 삼고 특성화와 규모의 경제 달성을 주요 목표로, 통폐합이나 구조조정을 그 수단으로 삼고 있다. 현재 모든 국립대들도 이 구조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 과연 ‘국립대법인화’와 같은 정책이 나와야 하느냐하는 것이다. 특성화와 규모의 경제는 중요한 수단이며 국립대의 재편성과 통폐합 그리고 정원감축은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국립대법인화’는 이러한 맥락과 별로 상관이 없는 정책이라고 보여진다. 현재 특성화와 규모의 경제를 향한 구조개혁도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법인화’와 같은 사실상 다른 모드의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연 국립대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을 신장시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어떤 종류의 법인화인가?”에 달려있다. 예컨대, 특성화와 규모의 경제가 확립되어 있고 효율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보장하는 법인화라면 당연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이라면 엄청난 조정비용을 야기시킬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고등교육은 당분간 국제경쟁력을 가질 생각을 말아야한다. 문제는 국제경쟁력이지 자율성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자율성을 어느 정도 원하기 때문에 국립대 법인화 자체의 당위성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편이다. 그러나 국립대는 국가기관이므로 자율성에 한계가 있다. 또한 자율성은 집단이기주의나 도덕적 해이에 대한 해답도 아니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자율성을 가능하게 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국립대 구조개혁을 위해 선결 과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정책의 일관성이 가장 필요하다. 모든 정책은 최대한 일관된 비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차분히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고등교육정책을 들 수 있다. 1950년대까지 캘리포니아 고등교육도 한국과 같은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 캘리포니아대 총장을 맡은 Clark Kerr의 지도하에서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수 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 정책을 추진해 현재 캘리포니아대학은 미국 내의 여타 사립대들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중간에 자꾸 바뀌는 정책은 불신과 낭비를 초래하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두번째로 필요한 정책은 특성화와 통합을 향한 구조개혁의 지속적인 추진이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5년도는 이 방향으로의 개혁을 추진하는 1차년도이다. 원래 계획처럼 2009년까지 성실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객관적 평가의 확립이다. 국립대의 최대 약점이 바로 체제에 안주하는 것이었다면 객관적인 평가를 통한 비교는 각성과 분발을 촉진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교육부가 추진하는 정보공시제는 필수적이며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수준높은 평가기구의 설립도 바람직하다. 객관적인 평가는 올바른 구조개혁과 상호보완적이라고 본다.
넷째로 대폭적인 고등교육재정의 확충이다. 이미 교육당국은 고등교육재정의 목표 비율을 OECD국가 평균인 GDP 1%로 잡고 있다. 현재 내국세 총액의 7.6%를 고등교육재정 지원에 충당하자는 법안도 진행 중이다. 황우여 국회 교육분과위원장이 지적한 것처럼 최소한 고등교육재정을 초중등교육재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경주해야한다. 국제경쟁이 가능한 지원을 한 다음에 국제경쟁력을 요구해야한다.
만일 국립대의 특수법인화가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이러한 단계를 착실하게 수행한 후에 실시해야 한다. 교육부가 이미 공시했던 구조개혁일정으로 보아 시기적으로는 2010년 정도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립대와의 평등한 경쟁을 위해서도 국립대 법인화는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립대 법인화와 사립대와의 평등한 경쟁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립대와 사립대는 각각의 목적과 수단이 다른 교육기관이다. 국립대에 투입하는 재정을 마치 특정 경제분야에 투입하는 국고보조처럼 불공정행위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비유이다. 어떤 나라도 고등교육을 전부 사적 분야에 맡기는 나라는 없다. 그리고 각각의 재정이 허락하는 하는 한도 내에서 국립기관들을 육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립대의 비효율을 무작정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금 한국의 국립대학들은 49개 기관에서 36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 2020년이 되면 고교졸업자 수가 48만 명 정도로 하락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까지 계속 동일한 국립대 규모를 유지해야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국립대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교육부 정책에 대한 대학들의 불신이 높다.
“불신은 비단 교육부에만 해당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자체가 너무 역동적이기 때문에 사회 모든 분야에 깊은 불신이 깔려있다. 단지 교육부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최대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정책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상호간의 신뢰를 쌓는 첫 단계이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립대와 사립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각각의 특성에 알맞은 육성정책이 필요하다. 엉뚱하게 이 관계를 시장의 비유로 잘못 유추하여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는 정책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