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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루한 다시보기-『구텐베르크 은하계』(마샬 맥루한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刊)
맥루한 다시보기-『구텐베르크 은하계』(마샬 맥루한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刊)
  • 교수신문
  • 승인 200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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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3 14:41:08
김정탁 / 성균관대·언론학

캐나다의 영문학자 맥루한은 급속하게 발전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사람이다. 인간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왜곡시켰던 미디어로서 인쇄기를, 그리고 인쇄기에 의해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미디어로서 텔레비전이라고 규정한 그의 극적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맥루한은 텔레비전 등장으로부터 시작되는 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초래할 변화에 대해 가장 앞서서 예견한 사람이다.
맥루한은 특정 미디어로 인해서 발생하는 감각균형의 재조정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의식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가 발생시키는 개인적·사회적 결과들은 미디어의 새로운 감각비율 규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즉 미디어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특정 감각의 상대적 의존도를 확대하거나, 또는 감소시킴으로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그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새롭게 수용한다. 이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재현 내용을 전달할 뿐 아니라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간에 언설의 새로운 조립품을 만들어낸다.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는 맥루한의 유명한 언설도 가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미디어는 의미의 중립적 전달자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인간의 의식, 그리고 사고를 형성하는 중요한 의미생성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작용한다. 이는 미디어가 인간 정신의 구체적 표현이며, 그 자체가 의미 분석의 핵심적인 텍스트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맥루한도 미디어가 자신의 언어와 문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미디어는 그 자체로서 기능하지 않고,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살아왔던 각각의 시대를 살펴보면 그 시대마다 인간이 미디어를 통해 입수하는 정보형태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인류의 전 역사를 살펴 볼 때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문화 정체성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인쇄문화 지배 하에 있었던 근대사회가 이성적이고, 자율적이며, 중심화 되고 안정된 개인을 길러냈다면 오늘날 사회는 근대적 주체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그것에 대립되는 정체성의 형태들을 길러낸다.
맥루한은 그가 생존하고 있을 당시에도 세인의 관심을 크게 모았지만 그 때도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이 많다. 그렇지만 오늘날 멀티미디어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거의 예외 없이 맥루한 이론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맥루한적 시각의 탁월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디어에 대한 맥루한의 통찰은 지금까지는 신비한 종교의 교리처럼 이해되었다. 그를 믿는 사람에게는 불변의 진리로서, 그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낱 궤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960년대 미국의 저항문화 속에서 잠시 피었다가 사라졌던 맥루한의 통찰력은 21세기 벽두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멀티미디어의 디지털 문화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울프(T. Wolf)는 “만약 맥루한의 주장이 옳다면 맥루한은 뉴턴, 다윈, 프로이드, 아인슈타인, 파블로프이래 가장 중요한 사상가일 것이다”고 주장하며, 디자드(W. Dizard)는 “맥루한은 멀티미디어를 실현시키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기술, 경제, 그리고 정치력의 융합에 의한 정보 및 지식혁명의 시대에 대한 예견을 30년이나 앞서 예견함으로서 오히려 인정받지 못한 학자이다”고 아쉬워했다.
맥루한을 이렇게 평가하게 만든 책이 바로 1962년에 출판된 ‘구텐베르크 은하계(Gutenberg Galaxy)’와 1964년에 출판된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이다. 앞의 책은 구텐베르크 인쇄기를 통해 활자문화가 남긴 유산에 대해 설명했다면 뒤의 책은 텔레비전이 초래할 변화에 대해 예견하고 있다. 따라서 두 책은 물리적으로는 분리된 책이지만 매체발달사라는 측면에서 내용상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전편에 해당하는 저작으로, 후편에 해당하는 ‘미디어의 이해’는 이 책과 같은 출판사에서 이미 출판된 바있다. 맥루한의 저서들은 지적 범위가 매우 광대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기 힘들다. 어려운 원문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매끄러운 점은 이 번역본이 자랑할 만한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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