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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털 커먼즈
피지털 커먼즈
  • 김재호
  • 승인 2021.11.04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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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석 지음 | 갈무리 | 400쪽

플랫폼 인클로저에 맞서는 기술생태 공통장

이 책은 동시대 디지털 기술세계의 확대에 의해 파생되는 ‘피지털’(phygital)계의 등장을 주목한다. ‘피지털’은 ‘피지컬’(physical, 물질)과 ‘디지털’(digital, 비물질)을 합친 조어로, 두 공간 지각이 뒤섞인 혼합 현실을 지칭한다. 『피지털 커먼즈』는 거의 모든 유무형 자원을 포획하고 뭇 생명을 예속화하려는 플랫폼자본주의의 인클로저 질서에 맞서서 지속가능한 공통의 미래 대안을 찾기 위한 시도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피지털’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호혜의 공통장을 기획할 수 있을까? 

오늘날 플랫폼자본주의는 디지털계의 기술 논리를 갖고 물질계의 지형과 배치를 좌우하는 역전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메타버스’에 바치는 숭고와 찬양은 플랫폼 자본이 주도할 피지털계의 인클로저를 알리는 서곡에 해당한다. 이 책은 피지털계의 자본주의적 왜곡을 경고한다. 인간 삶의 조건을 위협하는 이 플랫폼 인클로저 질서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 책은 플랫폼 질서에 맞서 다른 삶의 직조를 위해 그리고 대안 실천의 무기력을 깨우기 위한 방법으로서 ‘커먼즈’(공통장) 운동을 제안한다. ‘인류세’ 국면 인간-기술-생태의 앙상블을 도모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인류세’ 국면 생태 커먼즈의 구성 논의는 동시대 가장 화급한 쟁점이다. 특히 『피지털 커먼즈』는 생태 커먼즈의 구성에 있어서 인간 기술과 뭇 생명과의 공존 문제를 탐구한다. 기술로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지구공학적 낙관론이나 환경근대주의적 기후위기 해결책은 섣부르고 위험하다. 장기적인 생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좀 더 지역과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자원 공동체가 중심이 된 생태 커먼즈의 구상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피지털(phygital)의 부상

‘피지털’은 ‘피지컬’(physical, 물질)과 ‘디지털’(digital, 비물질)을 결합하여 만든 단어이다. 오늘날 물질계와 디지털계의 공간 지각이 뒤섞인 혼합 현실이 출현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오프라인 매장의 상품에 붙은 QR 코드로 상품 정보를 조회하는 경험들이 ‘피지털’을 비즈니스에 적용한 사례로 언론에 소개된다. 이 책 『피지털 커먼즈』에서 저자 이광석이 주목한 ‘피지털’ 현상은 좀더 광범위한 사회적 의미를 띤다. 저자는 ‘피지털’계의 출현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디지털 신기술이 물질계의 지형과 자원의 배치를 좌우하는 현실을 살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피지털 영향력

피지털은 우리에게 디지털 신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플랫폼 기업이 주로 디지털 기술 논리를 무기로 물질계의 지형과 자원의 배치를 좌우하는 오늘날의 닫힌 현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팬데믹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배달 플랫폼을 예로 들어보자. 배달앱의 알고리즘은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을 초 단위, 분 단위로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은 골목상권에 침투하여 자영업자들이 플랫폼에 의존하면서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고서는 영업이 어렵게 만들었다. 별점 평가 시스템은 시민 갈등의 원인이 되며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생존 자체에 위기를 초래했다. 피지털의 휘황찬란함과 함께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굴절 현상들이다. 이 책의 저자 이광석이 책의 여러 곳에서 무수한 사례를 참조하여 강조하듯이, 피지털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다.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자본의 경우에도 콘텐츠를 창조하고 제작하는 일선 노동자들의 과중한 노동,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조건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이와 같은 사례를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배달 플랫폼은 피지털의 휘황찬란함과 함께 우리 사회를 두고 벌어지는 굴절 현상들이다. 사진=라이더유니온 홈페이지

이 책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은 우리가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해왔던 호혜적 행위들을 흡수하여 이익을 낸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호부조와 품앗이 전통은 태스크래빗이, 아는 이들끼리 빈집 잠자리를 함께 나누던 지역문화는 에어비앤비가, 동네 커뮤니티 수준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던 카풀은 우버나 집카가, 하숙집의 거주 문화는 셰어하우스 플랫폼이 흡수하거나 대체한다.”(27쪽) 공동체의 사회 증여 행위들에 사유지의 말뚝이 세워지고, 시장 바깥과 주변에서 호혜에 기반을 두고 유지되던 경제 형식과 공유 자원들이 플랫폼이 강화됨에 따라 점점 사라져간다. 이 책은 새로운 피지털계의 이러한 자본주의적 왜곡에 대해서 경고한다.

공유경제는 자원중개 시장 모델에 불과하다. 도시 커먼즈를 구축해야 한다.

공유경제가 대안일 수 있을까? 저자는 공유경제 모델의 기원, 그리고 해외의 공유경제 열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2010년대 서울시의 공유도시 정책의 역사를 검토한다. 이 책은 “그저 유익하고 선하기만 하다”는 외피를 쓰고 있는 공유경제 모델의 장점과 한계 모두에 대해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하위 범주로서 주목받는 공유경제는 우리가 아는 상호 부조나 호혜적 ‘공유’와는 다른, 승자독식의 자원 ‘중개’ 시장 모델이다. 최근에는 “열렬한 시장주의자조차도 이젠 ‘공유’경제라는 용어 자체를 쓰기가 민망해 이를 버리고 열악한 시장 현실을 지칭하는 용어들, 아예 ‘자원 중개 경제’나 ‘긱 경제’로 솔직하게 기술하자고 말하기도 한다.”(153쪽) 저자에 따르면 공유경제는 물류와 유통, 배송의 알고리즘 기술 혁신을 통해 유무형 자원의 적정한 배치를 효율적으로 이루려는 경제 유형에 해당한다. 

저자는 오피스 공유 플랫폼 ‘위워크’가 공유라는 슬로건에 무색하게 건물주와 임대인 사이에서 지대를 수탈하는 오피스 공유 브로커의 출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저자는 ‘공유경제’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 왔는지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유경제만의 신자유주의 덕목은 줄곧 플랫폼 자본주의 운동 방식의 수탈적 본성을 은폐하는 일종의 알리바이로 기능해왔다.”(155쪽) 무엇보다 공유경제는 생체리듬을 지닌 인간을 여느 물질 자원처럼 하찮게 취급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공유경제에서는 사람이 ‘서비스 노동 자원’으로 취급되면서 노동 인권이 쉽게 생략된다는 것이다. 

『피지털 커먼즈』에서 강조하는 ‘도시 커먼즈’는 이러한 공유경제의 비인간적 기술 효율성 논리를 넘어서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시민이 유무형 자원의 윤리적인 소비자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근거한 수많은 유무형 자원에 대한 공동 생산, 운영, 배분 등의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커먼즈(공통장)는 이처럼 ‘공유(커먼즈)’의 가치를 직접 실현하고 공통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실천 운동이다.

 

피지털 커먼즈(공통장)의 가능성

근년에 우리는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다양한 ‘피지털’ 사회운동들의 출현을 목격한다. 지역에서, 온라인에서, 박물관에서, 학교에서, 광장에서, 공원에서, 시민들이 직접 모이거나, 서명운동을 하거나, 소셜네트워크 포스팅을 공유하거나, 전시를 하거나, 공연을 하거나, 캠페인을 하거나, 줌으로 회의를 하는 등 온오프라인을 활용하여 다채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고 무언가를 생산하고 창조하고 주장을 알리고 대안 전망을 표현하고 발전시켜가는 모습들이 늘어가고 있다. 바쁜 일상을 멈추고 돌아보면 우리의 협력과 관계와 열정의 산물이 주위에 가득하다. 이 움직임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이 책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커먼즈(공통장)일 수 있다.

2016~2017년 촛불은 “민주 정치의 실종과 국가 파탄에 격노한 시민이 열어젖힌” 파토스의 공통장이었다. 당시 다양한 성별과 나이와 직업의 시민들이 함께 광장 공간을 점유하고 국가 소유의 광장을 시민의 공통장으로 재전유했다. 또 이 책에 의하면 “공덕역 경의선 공유지 운동, 민달팽이 유니온 등 청년 주거 공간 실험, 공동체 화폐은행 빈고, 농지 살림 운동, 인천 배다리 공유지, 을지로와 세운상가 일대 도심 제조업 생태계 운동, 예술가 커뮤니티 자립의 공유성북원탁회의, 약탈적 플랫폼 현실에 대항한 ‘플랫폼 협동주의’(platform cooperativism), 성미산 마을공동체 실험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지만 시민 다중 스스로 호혜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구성한 커먼즈 단위들”(116쪽)이다.

저자에 따르면 ‘피지털’계의 출현 그 자체는 커먼즈를 지지하고 돌보는 사람들(커머너들)에게 기회이다. 하지만, 피지털계의 주도권을 플랫폼 빅테크 기업이 쥐면서 이는 빠르게 재앙이 될 수 있다. 『피지털 커먼즈』는 ‘4차 산업혁명’ 이후 불어오는 ‘메타버스’ 열풍이 플랫폼 기업이 주도하는 피지털계 논리의 극한 양상이 될 것이라 내다본다. 메타버스의 구상에는 기업들의 사유화된 시장 질서만 존재할 뿐, 시민 권리와 공통의 호혜 관계에 대한 가치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이 책은 미래 피지털계나 메타버스가 재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커머너들 스스로 일구는 커먼즈적 공생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의 자유문화적 속성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안 기획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문화 커먼즈를 옥죄는 지식재산권 체제

이 책에서 문화 커먼즈는 인간 의식의 소산이며, 공통의 정보, 지식, 예술 등 인류의 문명을 풍요롭게 만들어왔던 문화 유산을 확장하는 실천을 뜻한다. 인터넷의 복제와 전유 문화는 문화 커먼즈의 확산에 중대한 거름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지식 재산권 체제는 기업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각종 기술적 코드를 통해 저작물을 과잉보호하고 있다. 닷컴 기업과 문화 산업의 논리가 확산되면서 인간 의식의 거의 모든 결과물이 지식 재산권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문화 커먼즈를 옥죄는 지식 재산권 체제를 의식과 문화의 ‘인클로저’라 부른다. 궁극적으로 의식의 인클로저는 문화 생태계에 창작과 지식 생산의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기업 법인체들에 의한 창작물의 독점적인 소유 권리의 주장만이 아니라 개인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문화 커먼즈는, 아마추어 시민의 자유로운 창작 문화와 지식 생산의 활동이 보장되는 공통의 인터넷 자유문화가 발산되는 토양을 마련해야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 “사적 플랫폼 내에서 담론과 재현의 문화정치를 반복하기보다는 이들 영향력 바깥에서 어떤 호혜의 대안 플랫폼을 구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역발상을 할 때다.”(93쪽)

커먼즈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삶의 가치와 관계를 생성하는 관점이자 실천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까지 ‘사람 중심’과 ‘포용 국가’의 위상을 언급해왔다. 하지만 현실 사회 약자의 공적 돌봄은 거의 공백 상태라 할 수 있다. 시장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 또한 노동자의 안정된 삶과는 무관하게, 집단 해고, 노동 불안, 끊임없는 산재라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코로나 충격은 이와 같은 상황을 더 악화하였다. 기술 물신성도 더 커지고 있다. 국가의 공적 역할의 방기와 기업의 성장 중심의 논리로 인해 사회 타자와 생명 약자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들 스스로 함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자율적인 사회적 돌봄의 대안 기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책은 동시대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척박한 현실과는 다른 길, 다른 삶을 직조하기 위한, 커먼즈(공통장)에 기댄 약자와 타자의 연대 기획을 강조한다.

‘인류세’ 국면 생태 커먼즈의 구성 논의는 동시대 가장 화급한 쟁점이라 할 만하다. 특히 『피지털 커먼즈』는 생태 커먼즈의 구성에 있어서 인간 기술과 뭇 생명과의 공존 문제를 다룬다. 기술로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지구공학적 낙관론이나 환경근대주의적 기후위기 해결책은 섣부르고 위험하다. 기술-생태의 공생적 사유와 상상이 중요하다. 오늘날 기후 위기 등 ‘인류세’ 국면에서는 변화를 위한 행동 구호나 국가 탈탄소 전환 정책이 실천적으로 유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태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이 책에 따르면 장기적인 생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좀 더 지역과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자원 공동체가 중심이 된 생태 커먼즈의 구상이 필요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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