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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인류학의 초석을 다진 故 강신표 교수를 추모하며
한국 문화인류학의 초석을 다진 故 강신표 교수를 추모하며
  • 최협
  • 승인 2021.11.03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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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협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한국 인류학 선각자 故 강신표 교수를 기리며'
故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

한국 인류학계의 1세대로 생소했던 학문의 정착과 성장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강신표 선생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새로운 길을 간 모든 이가 그러했듯이 강신표 선생은 당대에 아무도 가지 않았던 인류학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간 선각자였다.

선생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그리고 미국 하와이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전공을 사회학에서 인류학으로 바꾼 이유는 그의 스승 이상백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상백 선생은 한국인의 사고방식에 관한 연구가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이해에 가장 핵심적임을 지적하고, 그의 접근 방법으로 비교연구 방법을 제안했다. 강신표 선생께서 인류학과 인류학적 방법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강신표 선생은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 사회학의 수많은 경험적 사회조사에 참여하면서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의 이해 없이는 그러한 사회조사들이 단순한 숫자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1967년 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고, 이상백 선생이 그의 유고에서 제시했던 한국인의 사고방식에서 중요한 ‘天’의 의미분석을 통해 한국문화의 이해에 접근하는 목표를 세웠다.

강신표 선생이 오랜 노력 끝에 도달한 결론은 결국 하늘(天)은 땅(地)의 ‘짝’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동시에 음양의 논리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심리인류학 분야의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된 그의 박사학위 논문 「The East Asian Culture and Its Transformation in the West: A Cognitive Approach to Changing World View among East Asian Americans in Hawaii」는 그가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대대문화문법(待對文化文法)’의 출발이었다.

2016년 ‘임석재 학술상’의 영광을 안긴 강신표 교수의 저서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적 민족지: 대대문화문법과 한국문화 전통 연구』(2014)는 저자가 스스로 밝혔듯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일생에 걸친 인류학적 성찰의 기록이다.

저자는 인류학을 ‘인류’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닌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하고, ‘인류학’이라는 용어를 대신해 인류학을 ‘인학(人學)’이라 명명하면서, ‘토착적인 인류학’의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식민통치와 해방, 그리고 전쟁과 근대화라는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여 살아온 그는 한국의 인류학, 또는 인학은 궁극적으로는 한국사회의 내일을 위한 청사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사상과 대면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강신표 선생의 성찰적 인류학은 서구인류학의 방법론적 모방을 넘어서 새로운 방향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세계인류학계를 향한 대안적 목소리의 역할을 해냈다.

강신표 교수는 또한 그의 긴 학문적 여정을 통하여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많은 공헌을 해온 인류학자로도 기억될 것이다. 특히 1988년 개최된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그가 전개했던 올림픽 문화 학술 운동은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했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인류학계에 그 선례가 드문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토착적 인류학의 모색과 동시에 한국 인류학의 국제화의 길을 열어준 강신표 선생의 남겨놓고 가신 자리가 이제 후학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백으로 남았다. “한국의 인류학은 앞으로 어떠한 학문이 될 것인가?”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최협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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