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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아줌마 과학자들의 힘
나의 연구실: 아줌마 과학자들의 힘
  • 이연희 서울여대
  • 승인 2005.08.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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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교수(서울여대·생명공학)

1990년에 서울여대에 임용돼 들어왔을 때 참으로 낯설고 막막했던 생각이 난다. 학과가 생긴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학부 실험실만 있어, 대학원생을 데리고 연구할 수 있는 실험 공간이 없어 쩔쩔 매던 일, 학과 설립 초기라 기본 기자재는 물론 유리 기구가 없어 모교 실험실에 가서 후배들이 닦지 않고 쌓아둔 기구를 받아와서 씻어 썼던 기억이 난다.

▲왼쪽 부터 신은주 홍현진, 이학미, 남혜란, 이기은(이상 연구원), 이연희 교수, 이민영, 정다혜 (이상 석사과정생) ©

첫 1회 졸업생이 대학원에 진학하던 해까지 2년간은 다른 과 교수님 학생을 조교로 활용하면서 지냈다. 첫 1회 졸업생중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 대학원에 진학해서 첫해 5명의 석사과정 학생들을 맞이하였고, 선배님들 조언대로 3년간 월급으로 배양기 등 기본 미생물 실험을 위한 기기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성장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졸업한 대학원생들이 동경대와 RIKEN에서 NMR로 구조분석을 하는 세계적인 과학자로, 일본 암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훌륭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학자로써 즐거운 일이다.

점차 우수한 학생들이 다른 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연구원으로 남는 학생이 없어 쩔쩔매어 힘든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젊은 엄마 연구원들을 만나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내 자신 두 아이를 기르면서 외국 유학생활 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마 과학자가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이해할 수 있어 항상 연구원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점심때마다 같이 아줌마 수다도 떨고 실험에 관한 토론도 하면서 모두 한 식구로 지내는 것이 우리 실험실의 강점으로 생각된다. 마침 1999년도부터 과학기술부·과학재단 지정 특수연구소재은행으로 우리 실험실이 항생제내성균주은행으로 지정 받아 엄마 연구원들이 꾸준히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특히 여성의 꼼꼼함이 요구되는 항생제 내성 균주 분리, 보관, 관리 등이 더욱 항생제내성균주은행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다. 더구나 작년부터는 국가지정연구소재은행으로, 올해부터는 국가지정미생물거점은행으로 발전하여 앞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나는 물론 엄마 연구원들이 직장을 옮겨야 되는 걱정 없이 일 할 수 있어 너무나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우리 실험실은 항생제 내성 균주의 특성상 학위 과정의 학생들은 기전 연구를 하여 논문을 쓰는 일에 주력하고 있고 연구원들은 기전 연구는 물론 위탁 검색, 분양, 소식지 발간 등 각종 은행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근자에는 내 나이 때의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평가와 외부 회의로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많은 데 수년간 동거동락하는 연구원들이 실험실의 모든 일을 챙겨주어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어찌 보면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실험실 식구인데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서로를 아껴주는 진실 된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후배 교수들에게는 상위 대학에 속하지 못하는 대학에서도 열심히 하면 연구에 필요한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고, 대학원생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연구원들을 활용하여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한 예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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