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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상반기 주요작을 통해본 한국영화의 문제점
진단: 상반기 주요작을 통해본 한국영화의 문제점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8.1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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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뉴웨이브 감독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영화의 위기론’을 둘러싸고 그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 영화시장을 안으로 곪아들게 하는 산업적·구조적인 요소에서부터 ‘영화의 질’, ‘작품이 갖는 호소력’ 등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올 상반기 개봉됐던 영화를 향해 평론가들이 던지는 목소리를 모아본다면 한국영화의 가능성, 그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총 36편이 관객들을 찾아왔는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세편의 영화 ‘말아톤’, ‘마파도’, 그리고 ‘댄서의 순정’, 1백억원 대의 대규모 제작비가 투여된 ‘역도산’과 ‘남극일기’ 그리고 ‘혈의 누’, 나아가 기대주였던 ‘주먹이 운다’, ‘달콤한 인생’, ‘연애의 목적’ 등을 살펴보자.

자기식 스타일에 대한 ‘강박증’ 읽혀

단적으로 말해,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는 “비전은 달라졌지만, 교과서적 모범답안은 찾지 못한” 상황이며, “자기 식 스타일을 요즘 감각에 맞춰 창조한다는 건 지난한 과제”라는 것을 올 상반기 대중영화들을 본 소감으로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남극일기’를 들 수 있다. 모든 관객과 평론가로부터 ‘최악’으로 꼽혔던 이 작품에서 김영진 씨는 ‘요즘 유능하다는 말을 듣는’ 감독들의 강박증을 읽어낸다. 즉, 임필성 감독은 대중영화의 틀로 잡혀있는 ‘남극일기’에 자꾸만 자신의 작가의식을 심어놓으려 한다는 것. 때문에 이야기는 선형적인, 근대적 서사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애매한 방향으로 삐져나간다. 결국 1백억원이나 들여 첫작품을 내놓은 이 감독은 “탈근대적 시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영화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서 작품을 내놓음으로써 관객을 설득하지 못했다.

‘자기식 스타일’은 사실 요즘 유망주 감독들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박찬욱은 물론이고 이른바 ‘박찬욱 패밀리’라 일컬어지는 김지운, 류승완, 봉준호 감독 등이 그 범주안에 든다. 이들 감독이 낳은 웰메이드 작품들은 ‘박찬욱 효과’로도 불리우는데, 이들 중 류승완과 김지운이 신작을 내놓았다.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는 그의 네 번째 작품으로 평론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전에는 류승완 감독의 재능을 높이 사지 않았던 영화평론가 문일평 씨는 ‘주먹이 운다’를 두고 “그의 세계가 완결성을 얻고, 비로소 관객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법체계를 확립했음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단언한다. 영화평론가 이상용 씨 또한 “‘아라한 장풍대작전’ 같은 판타지보다 훨씬 기본기에 충실했다”라며, “류승완 감독의 전환점”이라 평한다. 둘 다 액션이라는 장르적 요소와 결합된 휴먼드라마가 성공을 불러왔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반대로 김영진 씨는 “류승완은 여전히 장르의 관습과 자신의 예술적 의지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점을 찾아내지는 못한다”라고 본다. 아직은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자기의식을 뚜렷이 찾지 못해 ‘애매하다’는 말로 풀이된다. 영화평론가 허문영 씨 역시 “스트레이트 스토리가 너무 강해서 대단원의 육체적 격돌은 그 매혹이 반감된다”라고 본다. 즉 드라마와 액션의 ‘기묘한 동거’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는데, 앞으로 그 ‘딜레마’를 “끝까지 밀어붙일 것인가”에서 류승완 감독의 가능성을 엿본다.

‘반칙왕’, ‘장화, 홍련’ 등 흥행작들만 내놨던 김지운 감독의 신작 ‘달콤한 인생’은 철저한 장르적 영화다. 그만큼 시선을 끌었는데, 이를 두고 ‘한국 최초의 느와르 영화’인가, 아닌가를 두고 평론가들이 설전을 벌였다. 어쨌든 ‘한국 최초의 느와르’로 규정한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장쾌한 액션과 세련된 영상은 빼어나지만”, “과잉과 모자람이 교차하고 드라마적 리얼리즘이 떨어져 눈에 거슬리며, 무엇보다 극중 주인공은 물론 보스와 보직 전체를 파멸로 이끈 동기가 너무 약하다”라고 평한다. 김지운의 이번 작품은 결과적으로 관객을 실망시키거나 혹은 기대를 꺾어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흥행순위에 들었지만, ‘최악’으로 평가됐던 작품은 ‘댄서의 순정‘이다. 문근영이라는 스타가 등장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어색한 연변사투리를 써 관객들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었고,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춤을 췄던 이 작품은 하나의 스타 소비성 영화로만 전락하고 말았다. 

올 상반기 최고 흥행작은 5백17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말아톤’이었다. 정윤철 감독의 첫 장편이었는데, “신인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찍었다”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전찬일 씨는 “장애인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쿨하게 그려낸 ‘부담없는 감동’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했다”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이는 다소 안일한 평가로 보인다.

단지 ‘휴먼드라마’의 감동적 요소로 ‘부담없이’ 다가온 점을 높이 산다는 것은 “장애인의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보다는 너무 평이하게 감동을 주는 수준에 머물렀다”라는 평가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용 씨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장애인에 관한 단편영화들이 이뤄낸 성과들을 간과해 실제 장애인의 삶을 담아내는 데 균형감을 상실했다”라고 평가한다. 사실 ‘오아시스’ 등에서 보여줬던 장애인의 처절한 삶이 여기선 드러나지 않는다. 김영진 씨 역시 “정교하게 연출된 마무리 장면의 감동에 수긍”한다고 하면서도 결국 “안전한 경계선 안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작품”으로 평가한다. 진일보한 관점에서 휴먼스토리를 다뤄보고자 했으나 단지 그걸 정교하게만 다듬는 지점에서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뉴웨이브’ 감독들,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스타일 추구

지금 논의되는 ‘한국영화의 가능성’은,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연일 신기록을 세워 민족주의 논리에 기댄 한국영화가 흥행한다는 공식이나, 홍상수·김기덕 감독의 작가주의적 영화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그 아류를 탄생시켰던 맥락과는 다르다. 이제 영화 2~3편 정도는 만들어본 감독들, 특히 대중성과 작가의식을 겸비한 이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현재 한국영화의 ‘뉴웨이브’라 불리우는데, 장르적인 것에 철저히 기대며 스타일의 변주를 추구하는 감독들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박찬욱이 서 있다. 이들의 성공가능성과 함께 한국 대중영화의 앞날을 예견한다는 건 좀 이르지만, 어쨌든 전망이 꼭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이상용 씨는 “이들이 현재 한국영화산업의 상황과 예술가적 욕망이 결합될 수 있는 최선의 상태이지만, 아직 뚜렷한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특히 “감독 개개인을 놓고 볼 때 특성이 조금씩 보이나, 이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라고 진단하며, 지난 3~4년간 흥행작들은 ‘아직 예외적인 현상’이라 간주한다.

또 하나의 이슈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이다. 1백억원 넘게 투여된 ‘역도산’이 “설경구의 1인극”이라며 그 연출력에서 ‘0점’을 얻는 것이나, 78억원이 투여된 ‘혈의 누’가 졸작이라 평가받은 건 여전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의심케 한다. 어쨌든 평론가들은 모두 “할리우드식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그 가능성을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올 하반기에 수편의 블록버스터들이 막이 올라가길 고대하고 있다. 80억을 쏟아넣은 ‘웰컴투 동막골’과 조선시대 느와르 액션사극을 표방하는 ‘형사’가 말을 올렸고, 각각 1백억원과 1백50억원이 들어간 ‘청연’과 ‘태풍’의 개막이 올연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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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ly 2005-08-14 00:58:36
내노라하는 '영화광'은 아니지만
<씨네21>과 <필름2.0> 정도는 매주 열독하는
'영화팬' 정도는 되는 사람인데요
<혈의 누>가 졸작이라는 평가는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 기억으로는 거의 대부분 호평 일색이었고
단점을 지적하는 언급들은 기본적으로 이 영화를 지지하면서
더불어 들려오는 경우였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최소한의 현장 감각 정도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혹여 졸작이라 평한 비평가가 있다면
전거라도 밝혀주든가 말이죠.

교수신문의 문학(문단) 관련 기사가
특히 무책임한 주관적 에세이에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아서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는데
(고종석을 첫 대상으로 한 '문체비평'이라는 코너 말인데요
과연 이런 글에다'기사'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되는 걸까요? )
이 영화 기사 역시
아마추어리즘과 무책임함이 매우 보기 안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