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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간 마음의 때 묻은 詩들"
"2천년 간 마음의 때 묻은 詩들"
  • 최석기 경상대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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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언_시경,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경은 중국 고대 시모음집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風?雅?頌으로 분류된다. ‘풍’은 민간의 노래로 15개국 민중들의 노래다. ‘아’는 바르다(正)는 뜻으로, 지배층 지식인들이 조정의 정치를 찬미하거나 비판한 사대부 문학이다. ‘송’은 선왕의 덕을 찬송한 종묘제례악이다. 

시경은 공자 이후 약 2천여 년 동안 경전의 지위에 있었다. 그러므로 시경을 대할 때 경전으로 어떻게 성립되고, 어떻게 전해지고, 어떻게 읽혀 왔는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전하는 시경에는 3백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주나라 전반기의 작품이다. 주나라는 기원전 1100년경 처음으로 황하 전역을 통일해 세운 왕조다. 이 나라에서는 민간의 실정을 살피기 위해 민간의 노래를 채집했고, 그것을 정리해 국민교화용으로 보급했다. 그러나 춘추시대로 접어들어 왕실이 쇠약해지자, 주나라는 천자 나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공자는 ‘시가 망했다’고 탄식했다. 공자는 주나라 초기부터 수집된 약 3천 편의 시를 정리해 시경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시경에는 공자의 사상이 깊이 침투해 있다. 즉 시경은 단순한 중국 고대 시선집이 아니고, 공자에 의해 새롭게 편찬된 경전인 것이다.

중세에는 이념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 이념이 바로 도이고, 그것은 경전으로 성립된다. 전통시대 사람들은 시경을 경전으로 대했다. 따라서 언어표현의 이면에 담긴 도를 읽어내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는 민간가요가 성덕을 가진 남녀가 만나 새로운 교화를 펼치는 내용으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시에서 도를 찾으려 함으로써 정치교화의 원리를 읽어내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런 전통적 해석에 반해, 현대 학자들 가운데는 시경의 시를 단순한 남녀의 사랑 노래로 보는 경우가 있다. 민간의 솔직한 노래를 너무 정치 사회적 관점으로만 보아 이런저런 이념을 덮어씌우고 말았으니, 이제는 시 자체로 보자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시경이 2천 년 동안 경전의 지위에 있었는데, 이를 모두 무시하고 이제 와서 시 자체로만 읽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그렇게만 보면, 시를 경전에서 해방시킬지는 몰라도, 2천 년의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시경의 역사를 모두 무시한다면, 시경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그 시를 지었든, 그것이 경전에 실리고 나면 도를 내포하게 된다. 따라서 후대 사람들은, 시인의 생각보다는 시경을 만든 공자의 마음을 얻고자 했고, 그것을 통해 자기 시대의 이념에 맞는 해석을 시도했다. 이런 역사를 버리고 나면, 시경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경은 2천 년 동안 경전으로 군림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이념화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국풍 첫머리 ‘관저’를, 성덕을 가진 문왕이 그의 덕에 배합되는 후비를 얻을 때의 노래로 보는 것은, 남녀의 순수한 사랑노래마저 성인이 독점을 하는 꼴이 되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관저’를 남녀상열지사로만 보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해석이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로 ‘시경은 시경답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전으로서의 시경을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공자는 ‘관저’를 ‘즐겁되 넘치지 않는 시(樂而不淫)’로 평했다. 즉 ‘관저’가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지만, 그 속에서 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 않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절제된 감정을 읽어낸 것이다. 우리가 시경을 읽을 적에도 이런 것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관저’를 단순한 남녀의 사랑노래로만 보아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독자들에게 ‘시경을 이렇게 읽어라’라고 말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시경의 시를 경전에 실린 시로 보고 싶다. 즉 이런저런 사람들이 쓴 것을 모아놓은 시선집이 아니라, 경전이 된 시경의 시로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2천 년 이상 그 시를 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이 살던 시대를 보고 싶은 것이다. 시경을 시경답게 보자는 것은 경전으로서의 역사성을 중시해 순수시로만 보지 말고, 시해석에 담긴 수많은 정치 사회적 함의를 읽어내자는 것이다.

최석기 / 경상대 한국경학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성호 이익의 시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경학가사전’, ‘유교경전과 경학’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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