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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문지시인선 3백호 비평('쨍한 사랑노래'-박혜경 외 엮음, 문지 刊)
특집: 문지시인선 3백호 비평('쨍한 사랑노래'-박혜경 외 엮음, 문지 刊)
  • 고현철 부산대
  • 승인 2005.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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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얼마나 어렵고 독한 것인가"

 

 

왜 ‘사랑’인가?

“매일같이 배달돼오던 우유가 갑자기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루하루 배달돼오는 우유병을 손에 쥐고서야 가까스로 숨쉴 수 있었다”(연왕모, '흰 우유에게 - 사랑이 나를 덮치다').

사랑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 속에 더 존재한다. 사랑은 언제 식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교감을 확인할 때 안도하면서 그 실재를 가까스로 느끼는 정서적 양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가 사랑을 꿈꾸지 않으랴.


  그런 ‘사랑’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호를 덮치다. 300호 '쨍한 사랑 노래'는, 100호·200호와 달리, 특정한 주제인 ‘사랑’을 먼저 내세워 그 주제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된 시들이 선정되어 묶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1997년부터 2005년까지의 99권 시인선에서 ‘사랑’의 시를 각 1편씩 선정하여 묶어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기간 동안 시단의 핵심 주제는 ‘사랑’이었는가? 가장 오래 지속되었으며 여전히 가장 보편적인 주제는 ‘사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인가?


  엮은이 이광호의 '쨍한 사랑 노래' 해설에서 엮은 의도를 살펴보면, 이 마지막 이유에 가장 가까이 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토록 끊임없이 사랑의 시가 쓰여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략)… 사랑이란 아주 보편적인 정서적 양태이며, 시간을 뛰어넘은 그 보편성이 끊임없이 사랑의 노래를 만들게 한다.” 그런데, 사랑의 형태는 시대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광호도 “연애의 발명은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 긴밀하게 연루되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쨍한 사랑 노래'는 근대와 그 이후의 제도 속에서의 사랑(연애)에 대한 시선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1997년부터 2005년까지의 특정한 시기의 특징이 드러나는 시선집이라고할 수 있는가? 1990년대부터 거대담론보다 미시담론이 중시되며 그 속에서 일상성과 개별성의 영역이 새롭게 조명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세계를 새롭게 재인식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사랑’은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서 일상성과 개별성 영역의 한 극점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쨍한 사랑의 노래'는 이 시대의 특징을 대표하는 시선집이 아니라 그 극점을 보여주는 시선집이 될 것이다. 이 시선집에 엮인 극히 일부의 시가 사랑의 시라 하기 어려운 것도 이들이 이 극점을 표현한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호가 ‘사랑’을 포착한 것을 시의 대중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집은 "한 사람을 사랑했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등 이른바 ‘낭만적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시집인데, 이런 시집은 사랑의 절대성·비현실성·감상성을 주조로 하고 그 외곽을 키치적인 양식으로 포장하고 있어 평단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 300호 '쨍한 사랑 노래'는 무엇보다 ‘사랑’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독자에게 사랑의 실재와 그 진정성에 다가설 수 있도록 기획된 시선집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쨍한 사랑의 노래'가 시적 형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사랑의 모습은 어떠하고, 이 시대 사랑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이광호는 '해설'에서 “‘지속 가능한’ 육체와 영혼의 결합은 없다. 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저 난폭한 시간 앞에서 막막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에 관한 노래들은 단지 쾌락을 향해 있지 않으며, 사랑이라는 상처를 지속적으로 후벼 파면서 쾌락과 고통이 구별되지 않는 ‘향유’의 지점을 향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랑의 어쩔 수 없는 유한성은 인간존재의 유한성과 사랑의 구체성이란 면에서 볼 때 그럴 수밖에 없는 사항이 된다. 그렇더라도 “왜 사랑을 둘러싼 시적 담화들은 ‘당신의 부재’라는 상황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라고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명확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보다 제한점이 가해져야 명확해지는 성질의 것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제한점은 다름 아닌 시의 장르적 특성이라는 제한점이다. 앞에 언급한 사랑의 ‘유한성’과 이에 따른 ‘쾌락과 고통의 이중성’이 사랑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이라면, ‘당신의 부재’의 상황 속에서 발화하는 형식은 시 장르의 특성에 따른 사항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만남-사랑-이별’이라는 사랑의 구체적인 변화 과정을 담는 형식을 드러내어 사랑에 대한 인식을 하는 것이라면, (현재의) 집중을 보여주는 ‘서정’은 당신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압축적인 형식을 통해 그 사랑에 대한 인식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적’ 존재방식은, 당신의 부재 가운데 이루어진 나의 발화 형식 속에 있는 것이다.


  "쨍한 사랑 노래" 역시 이러한 사랑의 시적 존재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시적인 것의 속살은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붉은 눈을 서로 피하며/멍을 핥아줄 저 상처들을/목발로 몸둥이로 후려치는 마음”(김중, '사랑')은 살면서 부대낄 때 서로 모자란 점을 들어 상처를 주면서도 슬며시 몸과 마음을 감싸안는 부부의 사랑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랑은 얼마나 어렵고 독한 것인가?”의 진정성은 바로 이것이다. 사랑은 또한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그냥 설거지일 뿐”(황동규, '버클리풍의 사랑노래')처럼, 일상생활 가운데 해주는 사소한 배려가 힘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그만큼 현실 속에서 이루어가는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와 만나/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함성호, '이 가벼운 날들의 생'). 첫사랑은 왜 마음에 오래 남아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첫사랑은 대개 사랑의 방정식을 잘 풀지 못해 헤어진 사랑이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헤어진 사랑이다. 나중에 사랑의 방정식을 잘 풀 수 있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어설픈 첫사랑이 마음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는 것은 사랑의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눈보라처럼 흐느끼는 바이러스 같은 것!”(김혜순, '사랑은'). 사랑은 바이러스와 같이 전염되어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면서 눈보라처럼 앞길을 알 수 없고 헤쳐나가기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랑의 묘한 이중성은 사랑의 실체를 간파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랑은 인간존재의 깊은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사랑할 때는 말없이 교감할 때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사랑의 실체는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언어를 통해 사랑의 실체에 접근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 된다. 다른 어떤 현상을 구체적이고 객관화된 방식으로 말할 수 있어도 사랑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사랑을 말로 하면 ‘사랑’인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다는 말이다.”(김연신, '차가 막힌다고 함은').


  ‘사랑한다고 말할 때 이는 사랑한다는 말이다.’라는 이 당연한 말이 그렇게 들리지 않는 데에 이 시대 사랑의 다른 존재방식이 놓여있다. “시작도 끝도 경쾌”한 방식, “사랑은 짧게 이별은 더 짧게”(최영철, '세기말 이별') 하는 방식. “첫눈이 내릴 때 연인들은/만날 약속한다” “마지막 눈이 내릴 때/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문충성, '마지막 눈이 내릴 때'). 이는 (후기)현대 문명의 속도주의에 침윤된 사랑의 존재방식이라 할 수 있으리라. 시인은 아이러니와 회의의 형식으로 사랑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 듯이/사랑은 그렇게 왔다.” “미처 못다 읽은/책장을 넘겨버리듯이/사랑은 그렇게 갔다.”(채호기, '사랑은'). 갑자기 찾아와 한동안 지속되다가 헤어지고 나서야 그 실체를 깨닫게 되는 사랑. 사랑이 유한성이라는 본질적인 한계에도 오래도록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진정성을 확보할 때일 것이다.


  이 책은 1997년부터 2005년까지에 집중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후기)현대의 ‘사랑’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사랑의 진정성을 고민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쨍한 사랑 노래'를 통하여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인간 관계인 사랑의 시적 존재방식을 알고 그 폭과 깊이를 느끼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고현철/문학평론가. 부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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