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2:40 (금)
여름-(3) 미니멀 음악과의 만남
여름-(3) 미니멀 음악과의 만남
  • 김기영 국민대
  • 승인 2005.08.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적 긴장감 배제한 '음악적 반복'의 미학

‘미니멀’이란 말은 요즈음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중 하나다. 미니멀 디자인, 미니멀 의상, 미니멀 건축 …. 하지만 20세기 이후 음악만큼 미니멀 형식의 영향을 받은 장르도 드물 것이다. 소위 말하는 ‘클래식’이란 수백년 동안 유럽에서 발전되어 온 여러 가지 양식의 음악을 우리는 통틀어서 지칭한다. 그 중에서도 독일음악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미니멀 음악은 1960년 미국 서부에서 태어난, 아주 새로운 양식의 미국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의 중심이 드디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쇤베르크가 말년 미국으로 이주해 L.A에서 1950년대까지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 중에 존 케이지는 동양철학의 영향 아래 새로운 개념의 소리와 시간을 실험하던 때였다.

그 당시 젊은 뮤지션들은 라디오에서는 온갖 재즈와 락 등 대중음악을 듣고, 기본적인 유럽 음악의 기조를 배우면서 거침없는 음악적 충동을 과감히 실천하며 사는 분위기였다. 미니멀 음악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중요한 양식의 하나인 것이다.

미니멀 음악, 소재·작곡상의 방법 최소화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미니멀 음악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음악적 반복’의 새로운 개념일 것이다. 그 이전 유럽의 현대음악에서 쓰는 반복의 의미와 아주 다른 반복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에서 쓰이던 반복은 음악을 극적으로 도달해 정점으로 이루는 하나의 방식으로 반복기법을 사용했다. 반복은 음악적인 클라이막스에 도달할 때 쓰는 아주 적절한 기법이었다.

미니멀 음악에서 반복은 그와 정반대다. 소재나 작곡상의 방법을 최소한으로 한정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면서 그 구성법의 변화나 위상의 밀접에 의해 효과를 내는 음악이기에 ‘반복 음악(Repetitive and Systematic Music)’이라 불리며, 결코 클래식 음악처럼 긴장감과 이완을 조장하지 않는다.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클래식에서 시간의 개념은 철두철미하게 음을 조직하는 데 있다. 동기의 구성, 발전, 그리고 반복을 통해 음을 형성하고 극대화시킨다. 감상자는 그런 계획된 구조의 묘미에 의해 감동과 소리의 체험을 얻는다.

그러나 미니멀 음악에서 시간의 개념은 형성하고 발전하는 개념이 아니다. 미니멀 음악 작곡가들은 음악의 과장된 감상의 표현이나 극대화된 긴장감 조성을 더 이상 음악적 미학의 아름다움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지나친 감성의 비약을 비현실적이고 진부하게 느꼈던 것이다. 오히려 미니멀 작곡가들의 관심은 재즈나 락 같은 대중음악 혹은 인도의 라가, 인도네시아의 감멜랑, 서아프리카 드럼 등 민속 음악에 심취했다. 미니멀 작곡가들은 음악을 더 이상 구성하고 분석하고 발전시키는 아주 주관적 의욕을 배제하고 오히려 객관적인 이완을 더 선호했다. 벌써 이 세상의 주관적 의욕에 의한 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된 주관적 카타르시스보다 ‘이완’ 선호

시간의 길이 역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을 구성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간의 묘미를 자생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짧아도 20분 이상의 길이를 갖고 있다.

국내에서 음악의 ‘미니멀적’ 경향은 그동안 용어로만 유행해왔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피부로 그것들을 느끼는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최근에 LG 아트센터에 스티브 라이히가 내한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 뿐만 아니라, 이미 무용계에서는 미니멀 음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될 정도이다.

영화를 통해서 접한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필립 글래스는 이미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쿤둔’의 음악을 맡으면서 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한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디 아워스(The Hours)’의 음악도 역시 그의 작품이다. 19세기적 낭만주의의 풍부한 표현성과 20세기의 무조주의의 두뇌적인 경질성을 거부하는 미니멀 음악이 이제 국내에서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테리 라일리(Terry Riley): “53개 마디로 자유롭게”
193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시에라 네바다에서 출생. 작곡가 라 몬테 영(La Monte Young)과 함께 제 1세대 미니멀 작곡가로 꼽힌다. 작품 ‘in C’는 1964년 가을 샌프란시스코 Tape Music 센터에서 초연. 모두 C 장조로 된 총 53개의 작은 마디로 한 페이지에 구성된 악보로 때에 따라 시간과 연주자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각자 설정된 2~3개의 패턴을 가지고 각자 들으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인데, 짧게 하면 약 45분 정도이지만, 길게는 7시간까지도 연주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패턴에 즉흥적인 요소가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훨씬 많아, 보다 풍성한 느낌이 전해진다. 마치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을 연상케 한다.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대표작 ‘Drumming’
1936년 뉴욕출생. 뉴욕 중산층 출신으로 동부에서 유럽 교육을 받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미니멀음악 제1세대 작곡가로서 활동, 현대음악의 흐름을 바꿔놓은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은 ‘Drumming’. 서아프리카 드럼 리듬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고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12개의 패턴이 전체 음악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그의 음악은 같은 리듬이라 하더라도 수학적으로 변형시켜, 리듬간에 부딪히는 관계가 느껴진다고 한다. 철학, 음악을 고루 공부한 그는 월드뮤직, 비디오 아트를 적용하는 실험을 해왔다. 꽤 난해한 음악같지만, 팻 메시니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될 만큼 대중적인 면도 있다.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티벳 명상, 유럽 음악 속에
1937년 볼티모어 출생. 스티브 라이히와 함께 미니멀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 파리 콘서바토루움에서 나디아 블랑제 교수에 사사. 반복적이지만 유럽적인 화성으로 음악이 훨씬 감상적이고 애절한 느낌을 자아낸다. 티베트 불교에서 굉장한 영향을 받아 명상적인 풍이 있다. 연출가 로버트 윌슨과 공동작업한 대표곡 ‘해변의 아인슈타인’(오페라, 1976)이 있다. 그 외 미니멀리즘을 응용해 신음악곡들을 내놓았는데, 특히 영화음악에서 활동이 막강하다. ‘갓프레이 레지오’(1983), ‘쿤둔’(1997), ‘트루먼쇼’(1998), ‘디 아워스’(2002), ‘테이킹 라이브즈’(2004)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