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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산행과 오늘날의 산행
옛날의 산행과 오늘날의 산행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5.08.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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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것은 도를 성취하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는 것은 도를 성취하는 것과 같다.” - 남명 조식
“요산 요수는 인성을 기르는 데 큰 뜻이 있다.” - 퇴계 이황

옛 선인들은 산행의 목적을 지금처럼 유람이나 체력단련으로 보지는 않았던 듯 하다.

지리산을 즐겨 찾았던 것으로 유명한 남명 조식 선생이나 청량산을 주로 찾았던 퇴계 이황 선생은 몇몇 기록을 통해 산을 찾는 심경을 표현해 놓았다. 특히 퇴계 이황 선생은 “산에서는 경중과 진은의 참맛을 알며 고요와 정적의 참뜻을 알고 인간의 영욕과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얻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른바 퇴계의 ‘요산철학’의 실체인 셈이다.

그렇다면 옛 선인들은 왜 산에 올랐을까.

선인들의 산행에는 일종의 역사성이 엿보인다. 안대회 명지대 교수(한문학)는 “주자가 무이산을 오르면서 수양하는 마음으로 학문을 완성하고, 산에 다녀온 흔적을 글로 남긴 것이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중기, “선비라면 평생 한 번쯤은 금강산에 다녀와 글을 남겨야 한다”는 불문율이 통용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이혜순 이화여대 교수(한문학)는 “조선 중기 유학자들의 산행 체험은 일종의 학문의 연장으로서, ‘도의 구현’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농암 김창협의 금강산기행을 필두로 산을 미적 대상으로 놓고 즐기자는 의식이 퍼져 나갔다. 기생과 악공을 데리고 가마 타고 산에 올라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도전하는 의미로서의 산행은 같았다. 조선시대까지 백두산행이나 설악산행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종의 탐험이었는데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행 전 선비들은 “부모님께 불효인 것을 아오나”라고 시작하는 긴 편지를 쓰고 집을 나서기도 했다.

남기창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청주대 환경공학과)은 “과거에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자세로 산을 찾고, 한 번의 산행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겼던 것에 비해, 지금은 누구든지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자연에 도전한다는 엄숙한 생각이 결여됐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순택 목포대 교수(식품공학과)는 “산행은 물질 사회에서 자기 정화 기능을 갖는다”라며 “10년간 신입생 엠티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지리산 종주를 했다”라며 최근에는 학생들이 싫어해 함께 오르지 못한다며 “영 서운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 옛날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이끌고 청량산을 올랐던 것처럼, 제자들과 함께 산을 찾는 교수들이 많은 것은 산을 통해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집념을 전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김조영혜 기자 kimj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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