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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블록과 솔직함의 미학
시멘트 블록과 솔직함의 미학
  • 임종엽 인하대 건축학
  • 승인 2005.08.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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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현대건축-4. 건축의 심성 '진아빌딩'

그림으로 보는 현대건축 4. 심성을 가진 건축 ‘진아빌딩’
서울 청담동 1990~1991

[편집자주]
화려하고 첨단의 이미지를 가진 강남구 청담동. 포스트모던한 다양한 건축수법과 이국의 유행을 절대적으로 수용하던 1990년대에 ‘절제의 미’를 발휘한 건축물 하나가 이곳에 들어섰다. 건축가 오택길이 설계한 ‘진아빌딩’이다. 주변의 건물들은 대단히 화려하고 복잡다양하다. 단순함과 솔직함의 미학을 드러내는 이 건축물은 대비적 랜드마크로서의 외관을 도입했다.

건축가는 도시에서 대중을 관찰하며 그들에게 어떤 공간이 요구되는지를 시작으로 하여 심지어는 그들이 사용하는 수저에까지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과 모습으로 제공되어야 적절한지를 궁리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관심과 고민이 때로는 필요 이상의 논리적인 해석과 학구적인 정론 등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건축가들에게 가장 도전이 되는 주제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를 지속하면서도 또 매번 그 변화를 후회하고 두려워한다. 과연 인간을 두고 건축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그것을 어떻게 조율하고 배합하여야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어떤 것도 정확한 답이 될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언어로 묘사되는 건축이 하나있다. 한국 근대건축에서 물성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건축, 텍토닉 구성의 기초이자 핵심인 조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건축, 현대 도시의 이미지인 광택과 기계성으로 부터 거칠음과 아나로그를 통해 인간적인 모습이 표현되는 건축, 그래서 그 솔직함이 미학으로 반영된 건축.

 서울에서 청담동은 변화의 첨단을 도시의 성격으로 지니고자 했던 동네다. 즉 정착보다는 가벼움과 판타지가 무기로 작용되는 것이 이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매우 묵직하고 힘이 있는 건축하나가 들어선 것이 벌써 15년 전이다. 지금은 이미 반 개성주의와 미니멀리즘의 단순성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상업적 무기로 시도되어, 조금이라도 주변의 시선을 받아보고자 하는 얇은 건축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함이 유행이던 당시에 이 건축은 도시에서 진실하고 솔직한 건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목표를 정하였다. 하나는 이 건축물의 도시에 대한 개입(세워짐)을 통해 빈약하였던 주변 도시구조에 틀을 주고자 하였음이고, 다른 하나는 실사용자로 하여금 보다 다양한 이용의 가능성이 도출되게 하고자 함이었다.

▲건축가 오택길은 건축부지에 그 자체가 보여지는 건물이 아닌 그것으로 인해 주변환경이 재정비되는 건축을 그리려 했다. 오택길의 평소 건축철학이기도 했다. © (주)장 건축사사무소
이런 다소 거국적인 목표에는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가 욕심스럽게 접근될 수도 있다. 건축가는 목표 달성을 위한 과도한 디자인을 시작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 건축은 당시 포스트모던의 다양한 건축수법과 과도한 표현의 적용을 과감하게 버리고 최소한의 건축원리만을 활용하며,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과연 절제의 미가 일찌감치 발휘된 긍정적인 작업이었다.

 

90년대 당시 건축동네의 분위기는 이국의 유행을 절대적으로 수용하며 부끄럼 없이 복제하는 수준이었으며 건축의 순수함과 본질이 상실되는 때였었다. 수입된 재료는 물론 새로 개발된 신소재 건축재료가 넘쳐나기 시작하였고 화려한 색채장식 등의 사용으로 도시는 이미 자기 목소리만 내는 시장통이 되었었다. 침묵하며 스스로를 실천하는 건축의 실현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시끄러운 도시에 단순한 벽돌 한 장을 조용히 놓듯이 시작한 배치에서 그 의도는 선명하게 표현되고, 평면 역시 매우 단순하게 절제되어 코아라고 불리우는 필수기능공간의 배열이 집약적이어서 그 외의 공간 활용은 상대적으로 매우 융통성 있는 공간이다.

특히 대지 내 중정을 적극적으로 도로에 면하게 하면서도 실내, 외가 연결 중첩되는 기법으로 다목적공간의 장점이 충분히 활용된다. 입면은 도로 혹은 도시에 면한 부분을 최대한 침묵하게하고 오로지 중정을 향한 부분에서도 정렬된 표정으로 간결함을 유지하여 도시의 얼굴을 정리하게 한다.

무엇보다 건축을 읽는 대중들은 건축을 둘러싸고 있는 마감재에 민감하게 된다. 이 건축의 외부 마감재는 전체가 시멘트 블록 화장쌓기이다. 이 재료는 건축가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이고 친숙하지만 그 투박함과 거칠음 때문에 감히 외장마감재로 사용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재료이다. 건축에서 구조재로나 사용하는 가난한 재료이며 시공역시 원초적인 구축의 방식인 조적구조이다.

그러나 건축가들에게 조적이란 방식과 함께 시멘트라는 재료는 건축을 본질적인 순수함으로 돌아가게 하는 영원히 매력적인 방식이자 소재였다.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현혹적인 시대에서 건축가는 솔직하고 순수한 건축을 통해 스스로에게 엄격하면서 신중한 철학하나를 던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나의 건축이 완성되기 까지 유혹하는 수많은 선택의 과정에서 그 결과가 다소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디자인 방식으로 사용자는 물론 시공자에게도 만족하며 건설되게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진아빌딩은 최소한의 개념과 구축을 통해 도시에서 건축의 입장을 충실히 하겠다는 계획의도가 일관성 있게 마무리된 작업이다.

마치 이탈리아 건축가 그라시(G. Grassi)의 교훈적인 정신이 긍정적으로 실천된 작업이라 느껴진다. 설계자의 말이 다시 기억난다. “설계란 내 꿈을 현실화 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인 결과는 대지에 굳게 뿌리내리는 건축물이다. 건축가는 인간의 정주터를 목표로 근원부터 생각하는 사람이다.”

 

[임종엽 소개] 홍익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밀라노 국립건축대학에서 유학했다. 건축연구소 ‘장’과 이탈리아의 ‘Mario Bellini' 스튜디오 등에서 실무수업 후 숙명여대 미술대학 교수를 거쳤다. 번역서로 ‘헬만의 건축이야기’와 ‘도시경관과 조형의 미래’가 있고, 이탈리아 국가공인 건축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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