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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눈이 답이다
예리한 눈이 답이다
  • 정영기 교수
  • 승인 2005.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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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정영기 교수(동의대·생명응용과학과)

20평이 채 안 되는 실험실에는 각종 실험기기가 빼곡하고 실험실벽을 따라 책상이 있다. 그리고 십수 명의 학생들이 책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것이 우리 연구실 풍경이다. 한쪽 벽에는 ‘천년약속’ 포스터가 붙어 있으며, 그 옆에는 지난 4월 부산과학기술상을 수상 했을 때 실험실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우리 가족들은 이 포스터와 그 옆의 사진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연’이 큰일을 냈기 때문이다. 영국의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할 때도,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할 때도 모두 ‘우연’이었다.

▲윗열-주준영, 정희경, 정경식, 서정남, 정진아 중간열-이혜린, 김지호, 김혜영 아랫열-임학섭 박사, 서민정, 정영기 교수, 김지은, 김태연 ©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우연’을 발견하는 것이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는 예리한 눈 덕택이라는 것을 많은 역사적 사실에서 보아왔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실패의 결과를 절대 예사로 버리지 못하게 한다. 당연한 결과를 예상한 실험이 거듭 실패 할 때는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발견일 수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교육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하던 실험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관찰력을 기르도록 항상 교육한다.

우리 실험실은 ‘기능성 생명 신소재 연구실’이란 간판대로, 다양한 생명체에서 기능성 소재를 발굴해 산업에 응용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러던 중 상황버섯 균사체를 속성으로 액체 배양하여 대량의 항암물질을 얻기 위한 실험을 시작하게 됐다. 생육환경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단시간에 많은 균사체를 얻도록 하는 실험이 계속됐다.

이런 실험 중 어느 균사체 배양액에서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우연’이었다. 그래서 알코올 분석을 해 본 결과, 배양액 중에는 0.5~1%의 에틸알코올이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버섯의 균사체가 에틸알코올을 생산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며 귀중한 논문을 한 편 쓸 수 있는 소중한 발견이기에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실험에 임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최종목표는 버섯균사체 발효주를 만들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최초로 상품화하는 것이 됐다. 거기다 상황버섯 균사체 특유의 웰빙물질이 생산돼 건강 기능성을 더한다면 더 값진 제품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 신나는 연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2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첫째는 효모균의 오염이 아닌 순수 버섯균사체에 의한 에틸알코올의 생산, 둘째는 제품화하기 위하여 알코올농도를 13%이상 생산되도록 배양조건을 최적화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작업들이 쉽게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꾸준히 실험하여 몇 년이 걸릴지, 아니면 정상도달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가족 같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가족의 힘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선후배 동료 간에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고 서로 협조하고 어려움과 기쁨을 같이 나누는 생활을 통하여 가족애가 싹튼다. 실제로 연구실의 학생들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20평 남짓한 실험실에서 긴 시간을 같이 생활한다. 어떤 면에서는 집의 가족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실험실 가족들과 지낸다.

그 후 우리 연구실은 많은 힘든 과정들을 실험실의 가족애로 극복하여 현재 16%이상의 농도로 알코올을 생산하게 됐으며, 이는 바로 상품화로 이어져 ‘천년약속’이란 제품명으로 출시한지 1년이 넘고 있다. 예상대로 이 제품은 간의 손상을 줄이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혈액순환개선 효과를 가지는 등 웰빙 기능을 가지는 기능성 주류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올해의 목표는 부산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에서 ‘천년약속’이 공식 건배주가 되는 것이다. 정말 ‘우연’이 큰일을 냈다. 그리고 실험실 전원의 가족 같은 힘이 이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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