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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삼장법사는 왜 여자일까
일본 삼장법사는 왜 여자일까
  • 유무수
  • 승인 2021.10.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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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서유기」, 텍스트에서 문화 콘텐츠까지』 송정화 지음 | 푸른사상사 | 312쪽

일본에서 높아진 여성의 사회적 위상 반영한 결과
원전은 시·공간과 멀어질수록 변화는 다채로워진다

이 책에서 송정화 저자는 ‘『서유기』와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주제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제1부 ‘텍스트 심층 독해’와 제2부 ‘문화콘텐츠로의 변용’으로 구성했다.

『서유기(西遊記)』는 현장(602~664)의 서천취경(西天取經) 실화를 기반으로 명대(明代)에 완성한 세대누적형(世代累積型) 소설이다. 소설에는 삼장법사의 여정을 방해하는 요괴들이 등장한다. 요괴뿐만 아니라 신, 신선, 왕과 같은 권력자들은 식인으로 불로장생을 시도했다. 명대에는 임금이 여자 아이들을 약용으로 달여서 먹는 문화가 실제로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아이는 중국 고대로부터 최상품의 고기재료였으며 어린 아이 고기를 찾는 고위 관료 미식가들도 있었다. 아이를 닮은 인삼과(人蔘果) 이야기도 식인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이는 당시 왜곡된 시대상과 타락한 권력에 대한 비판의 표현이다. 『서유기』 저작 당시 명대의 황제들은 방종으로 악명이 높았다. 따라서 중국 내 학계에서 『서유기』는 정치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작품의 정치적·철학적 함의를 놓친 것이다. 

청대(淸代) 학자는 오승은(吳承恩, 1500~1582)의 『서유기』는 도교와 관련이 깊다고 보았다. 고판본에 비해 도교의 연단술과 교리를 반영한 삽입시가 많아져서다. 『서유기』에 대해 근대의 호적(胡適)은 해학적인 골계소설이라고 평가했고 노신(魯迅) 역시 우의적(寓意的)일 뿐이며 유불도와 무관한 유희(遊戱)라고 보았다. 이는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중국의 연구자들은 『서유기』를 특정 사상이나 종교와 관련하여 해석하는 것에 조심했다. 식인을 통한 불로장생의 소재가 어떻게 해학이고 유희일 수 있으며, 도교사상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는데 굳이 도교적인 시를 세밀하게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음양오행과 연금술의 해박한 지식을 등장인물과 정교하게 엮어서 묘사한 방식으로 인해 도교와 연관성이 깊다고 분석했다. 

『서유기』는 현대적 각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서구에서도 각 나라의 성향과 조율된 문화콘텐츠로 활용돼왔다. 중국은 고전을 현대화할 때 “원저에 충실하고 각색에 신중하라”라는 원칙을 강조한다. 사오정은 중국 미디어에서는 장신과 거구의 험상궂은 아저씨로, 한국에서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캐릭터로, 일본에서는 고대 영아살해설과 얽힌 일본고유 민속요괴인 갓파(河童)로 각색된 사례가 있다. 

삼장법사의 경우 중국에서는 대체로 원작에 가깝게 불심이 깊은 고승으로 등장하지만 홍콩과 대만에서 삼장은 우스꽝스럽게 변형된 경우가 있었다. 변용이 가장 심한 일본 미디어에서는 삼장법사가 여성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은 급격한 변용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이는 일본이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상향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했다. 문화적 배경과 문화콘텐츠 산업의 수준, 생활환경, 상업적 가치에 따라 변용의 내용과 범위가 달라진다. 상대적으로 표현이 자유로운 인터넷 문학에서는 변용이 더욱 풍부하다. 결국 원전의 시간과 공간에서 멀어질수록 변화가 다채로워진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문화콘텐츠 산업은 국경을 초월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도 잘 변용하여 재창조하면 자기 나라의 자산이 된다. 『서유기』를 토대로 한 일본의 「드래곤볼」이 히트치고 한국과 베트남 그리고 중국까지 역수출된 것은 그 사례다. 각색이 지나쳐 원전과 동떨어지면 원전의 엉뚱한 왜곡일 수 있다. 고전을 각색하고 상품화할 때 원전을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고, 문화적인 각도에서 문화콘텐츠를 분석·비판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인문학자의 몫이라고 저자는 주장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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